[[파일:external/catholicharboroffaithandmorals.com/St.%20Catherine%20of%20Siena%20Weninger%2003.jpg]] [[분류:1347년 출생]][[분류:1380년 사망]] 1347년 [[3월 25일]] ~ 1380년 [[4월 29일]] [[가톨릭]]의 [[성녀]]. [[이탈리아]] 시에나 출신으로 본명은 카테리나 베닌카사(Caterina Benincasa). 신비가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비공식적으로 [[성흔|오상]]을 받은 성인 중 하나다. 축일은 [[4월 29일]]. [[이콘|성화]]는 대부분 가시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썼던 것]을 쓰고 오상으로 고통받거나 [[십자고상]]이나 [[백합]]을 든 모습으로 그려진다. 카타리나는 6살의 나이에 자신의 생애를 미리 보는 체험을 한 뒤, 홀로 기도생활을 하여 16세에 [[도미니코회]] 3회원이 되었다. 그녀는 환시를 자주 보았기 때문에 여러 사람으로부터 모략을 받았으나, 자신의 고향에서 꿋꿋이 봉사활동을 하였다. 1375년 카타리나는 피사에서 [[성흔|오상]]을 받고, 크게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당시 본 환시 속의 [[예수]]가 "지식과 은총의 웅변을 줄 것이니 여러 나라를 다니며 권세가와 지도자들에게 나의 소망을 전하라" 했던 명령을 따라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고위 지도층과 성직자들을 대상으로 "사치와 향락에서 벗어나 평화를 찾아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카타리나는 [[십자군 전쟁]]을 준비하는 [[교황]] [[그레고리오 11세]]를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아비뇽 유수]]에 종지부를 찍는 데에도 기여하였다. 그레고리오 11세의 [[선종(가톨릭)|선종]] 후 대립교황이 난립하며 [[가톨릭]] 교회가 분열하려 하자 [[우르바노 6세]] 교황을 지지하여 교회의 화합을 추구했다. 1461년 [[6월 28일]] 교황 [[비오 2세]]에 의해 시성되었고, 1940년 [[5월 15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와 함께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이 되었으며, 1970년 [[4월 4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카타리나는 [[로마]]에서 33세를 일기로 [[선종(가톨릭)|선종]]했다. 그녀의 시신은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 묘지에 매장되었다가 성당 내부로 이장되었는데, 유해에서 분리된 머리는 부패하지 않은 채 시에나에 있는 산 도미니코 성당에 안치되었다.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4/45/Head_of_Saint_Catherine_of_Siena.jpg|성해의 머리 사진]] 놀랄 수 있으니, 열람시에 주의할 것! [[분류:가톨릭 성인]] [[분류:교회학자]] [[분류:이탈리아의 가톨릭 수녀]] [[분류:도미니코회 수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