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숙신계 종족)] [include(틀:중국의 민족)] [목차] == 개요 == [[중국]]의 [[소수민족]]. 원어로는 시버(Sibe)족으로, 시보(锡伯)는 중국어 음차이다. 인구는 약 19만 명으로, 이 중 약 17만 명이 [[신장 위구르 자치구]] [[일리 카자흐 자치주]]의 찹찰[* Cabcal. 시버어로 곡창지대라는 뜻] 시버 자치현(중국어로는 이리 하사커 자치구 차부차얼 시보 자치현)에 살고 있다. == 역사 == 시버부는 15~17세기 현 [[창춘시]] 솽양구(双阳区) 일대에 거주하던 [[여진족]] 중 하나로, 그 추장은 솬(Suwan)부 괄갸(Gūwalgiya) 씨족의 니아합기(尼雅哈奇)라는 인물이다.[* 니아합기는 다른 사료에서 옥군한(玉军汗)으로도 기록되는데, 이는 그의 후손이 사시한 [[칸|한호]]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여담으로 그의 동생 주찰(珠察)의 8세손 피옹돈은 [[후금]]개국5대신 중 한 명으로 활약했으며, --최후가 안씁인-- 9세손 [[구왈기야 오보이|오보이]]는 [[강희제]]의 섭정을 맡은 바 있다.] 16세기 중반 괄차(Gūwalca)부와 함께 후룬베이얼 지역으로 부터 이주해온 코르친부에 예속되어 간접지배를 받았다. 1636~40년대, 코르친에 대한 지배체제가 확립되면서 시버 씨족들은 좌령으로 편제되어 코르친 10기에 예속됐고, 이후 1692년에야 [[팔기군|팔기]]로 편제되었다. 때문에 시버인들은 구만주와 달리 종족적 정체성을 어느정도 유지할 수 있었다. 그해 이들은 [[치치하얼|치치하르]], 버두너 등으로 사민되었다. 1699년 버두너와 치치하르의 시버인 6만 5천여 명은 [[심양|성경]]에, 그 외의 기린우라의 시버인 6천여 명은 [[북경]]에 이주했다. 이듬해 치치가르 출신 시버인 3만 6천여 명은 [[후허하오터시|후호트]] 일대로 이주됐다. 한편 버두너 일대에 남아있던 시버인들은 코르친 고를로스기 영지에서 살면서 물고기를 황실에 공납했다. [[건륭제]] 때 청 조정은 서북 변경의 국경 방비를 위해 성경 일대에 있던 20~40세 시버인 남성 1,020명과 그 가족 3,275명[* 이훈(2018). "만주족 이야기". 너머북스.]을 뽑아, 고향에서 4천㎞ 이상 떨어진 신강의 천산북로로 사민시켰다. 이 과정에서 생긴 험난한 현지 정착 과정은 현재 시버족들 사이에 슬픈 역사의 기록으로 남아 있고, 많은 전설과 민요의 원천이 되었다. 마치 [[이오시프 스탈린]]의 소수민족 강제 이주 정책을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다. [[일본 제국|일제]]가 1930년대에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이듬해에 [[만주국]]을 설치하자 동북 시버인들은 동북항전에 동참하여 만주군과 [[관동군]]에 맞섰다. 한편 신강에 주둔한 팔기만주 시버영은 신강성자치정부가 하남현(河南县)을 설치한 1938년까지 유지됐는데, 이들은 1944년에 [[소련]]의 지원을 받은 위구르인이 수립한 [[동투르키스탄 제2공화국]]과 일부 [[러시아계 중국인]] [[백군]] 난민 등과 협력하여 [[국민당]]을 적대했다. == 기원 논란 == 만주족, 우데게족, 나나이족과 같은 숙신계 민족이라는 주장과 선비족의 후예라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거주지역 및 풍습과 문화, 언어 체계는 만주족과 유사하나 청초[* 청초 여행가이자 서예가인 양빈(楊賓)의 《유변기략(柳邊紀略)》에 의하면, 시버인들이 자신들이 만주와 같은 조상이라고 말하였다고 하며, 《[[만주원류고]]》에 의하면 [[숭덕제]]가 눈강의 시버인에게 동일한 선세라 말한 바 있다.]와 달리 현재에는 만주계임을 부정하고 대다수가 스스로를 [[선비족]]의 [[현실 도피|후손이라고 믿고 있다.]] == 언어 == 학자에 따라 [[만주어]]의 방언으로 봐야 한다고도 하지만, 정설에 따르면 [[퉁구스어족]] 남퉁구스어파 [[시버어]]라는 만주어와 유사한 언어를 쓰는데, 음운 면에서는 만주어보다 복잡한 [[모음조화]] 규칙을 지녔다. 현재 동북에 있는 시버족은 한어를 사용하고, 내몽골 지역의 시버인은 몽골어와 몽골 문자를 사용한다고 하는데 자세히 알려진건 없다. {{{#!html <iframe width="42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m8q8-KmHuok"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 시버어와 만주어의 의사소통 정도를 알 수 있는 영상. 퉁구스어 계통의 역사를 추적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신강으로 강제이주된 덕택에 [[여진어]]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설도 있을 만큼 그 모습을 그대로 보존할 수 있어서 만주계 언어들의 연구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문자는 [[만주 문자]]를 살짝 변형해서 쓴다. 현재는 [[일리 카자흐 자치주]]의 일리사범학교에서 제2언어로 가르치고 있으며, 사용 인구는 약 3만 명으로 만주어보다 훨씬 많다. 또한 [[신문]]도 발행되고 있다. {{{#!html <iframe width="420" height="315" src="http://www.youtube.com/embed/rRlJooc-wH8?rel=0"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 신장위구르자치구 안에 있는 찹찰 시버족 자치현의 2008년 11월 25일자 뉴스 영상. == 여담 == 전통 음식 중에 만두에 해당하는 음식이 있는데, 특이하게도 [[소(동음이의어)#s-10|소]]로 '''호박'''을 넣는다. 시버족 출신 유명인으로는 배우 퉁리야가 있다. [[분류:중국의 민족]] [[분류:퉁구스]] [[분류:동아시아의 민족]] [[분류:중앙아시아의 민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