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도1전경2.png]] || 이름 || 숭의야구장 || || 공식 명칭 || 인천광역시야구장 || || 별칭 || 인천야구장, 도원야구장 || || 개장 || 1934년 (원 완공일) [br] 1964년 (확장 공사 완공일) || || 폐장 || [[2008년]] [[9월 5일]] || || 소재지 || [[인천광역시]] [[중구(인천)|중구]] 도원동 7 || || 홈구단 || [[삼미 슈퍼스타즈]] (1982~1985.5) [br] [[청보 핀토스]](1985.5~1987) [br] [[태평양 돌핀스]] (1988~1995) [br] [[현대 유니콘스]] (1996~1999)[br][[SK 와이번스]] (2000~2002)[br][[SK 와이번스 2군]] (2000, 2006~2008) || || 크기 || 좌우펜스 91m [br] 중앙펜스 110m [br] 펜스높이 5~8.5m[* 펜스가 낮아 여기에 철망을 덧댄 방식으로 경기를 치렀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 참조.] || || 잔디 || 인조잔디 || || 좌석규모 || 12000석 || [목차] == 개요 및 역사 == [[파일:external/ojsfile.ohmynews.com/IE000800485_STD.jpg]] [[인천광역시]] [[중구(인천)|중구]] 도원동에 있었던 [[야구장]]. 2002년 [[인천SK행복드림구장]]이 개장되기 이전까지 [[인천광역시|인천]]에서 사실상의 정식 야구 경기를 치를 수 있는 유일한 경기장이었다. [[중구(인천)|중구]] 송학동 자유공원 자락의 웃터골(현 [[제물포고등학교]]) 자리에서 인천 야구의 역사가 시작됐다면, 숭의야구장은 해방 이후 [[인천고등학교 야구부|인천고]]와 [[동산고등학교 야구부|동산고]]가 주도했던 인천 야구의 전성기와 [[삼청태]]로 대표되는 인천 프로야구의 암흑기를 거쳐 [[현대 유니콘스]]의 [[1998년 한국시리즈|첫 우승]]과 [[연고지 이전]]의 쓰라림, 꼴찌로 시작된 [[SK 와이번스]]의 초창기를 동시에 경험했던 인천 야구 역사의 1.5~2.0세대 공간이라 할 수 있다. 1920년 숭의종합운동장이 완공된 후 1934년에 [[야구장]]이 건립되었다. 한동안 인천 지역의 아마야구 팀들을 위해 쓰이다가 전국체전을 맞아 1964년에 새롭게 단장했다. 그 뒤 프로 출범 전까지는 아마야구 위주로 야구장이 쓰였다. 1982년 [[야구 월드컵|세계야구선수권대회]] 당시 보조 구장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흔히 "도원야구장"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는 야구장이 도원동에 있었고 1994년에 [[수도권 전철 1호선]]([[경인선]]) [[도원역]]이 지나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식 명칭은 인천구장. 당시 대부분의 인천 시민들은 ‘공설운동장’으로 불렀다 1982년 [[KBO 리그]] 출범과 함께 인천 지역 연고 팀들의 홈 구장으로 이용되었지만, 후술하게 될 보수공사로 인해 개막 후 3개월이 지난 1982년 7월에서야 처음으로 프로야구 홈 경기를 치르게 된다. 과거의 영화를 안고 인천 연고 팀이 창단됐지만 이 곳을 홈으로 쓰던 인천 지역 야구팀들의 역사는 워낙 [[안습|안구에서 쓰나미가 차오를 정도로 처절한지라]] 가을잔치의 영광을 많이 누리지는 못했다. 이 경기장에서 포스트시즌이 치러진 것은 20번의 시즌 동안 딱 4번에 불과했다. [[한국프로야구/1989년 포스트시즌|1989년]], [[1994년 한국시리즈|1994년]], [[1996년 한국시리즈|1996년]], [[1998년 한국시리즈|1998년]]. 그래도 [[1998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이 곳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도원전사|만년 꼴찌 시절부터 숭의야구장을 지키던 팬들]]을 환희의 눈물에 젖어들게 했다. 이 구장의 특징은 높은 철망 펜스였다. 팀의 전력이 워낙 약했던 데다 무엇보다 인천을 연고로 했던 팀들은 하나같이 투타의 불균형이 심각했다. 투수 쪽은 [[KBO 리그]]에서 손꼽힐 정도로 수요가 풍부했지만, 타선은 KBO 리그 역사상 가장 흐물흐물한 물방망이였다. 애초에 구장이 작아도 홈런을 제대로 못 치는 타선이었다. 그래서 투수가 9이닝 1실점으로 완투를 해도 타선이 상대 투수를 털지 못해 0-1 완투패를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대표적 피해자가 좌완투수 [[최창호]]였다.[* 1989년 방어율 3위를 기록했음에도 승수는 단지 10승, 오버패...] 구장 크기도 작고 펜스까지 너무 낮아서, 구단의 주인이 바뀌고 감독이 바뀔 때마다 구장 활용 방안을 새로 마련했다. 특히 구장 크기를 넓힐 수 없어서[* 특히 좌중간 쪽의 관중석 외벽은 옛 공설운동장 주경기장과 벽을 맞대고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 콘크리트 펜스 위에 철망을 덧대고 그 철망의 높이를 조절하는 형태로 대책을 세웠다. 1989년에 [[김성근]]이 [[태평양 돌핀스]] 감독으로 취임했을 때는 "어차피 홈런 못칠거 맞지도 않겠다" 라면서 펜스 높이를 철망 포함 4.5m에서 7.5m까지 올렸다.[* [[김성근]] 감독은 1996년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으로 부임한 직후에도 [[전주종합운동장 야구장]]의 펜스를 비슷한 형태로 바꿨다. [[전주종합운동장 야구장]]도 숭의야구장과 마찬가지로 홈플레이트에서 중견수 쪽 담장까지의 거리가 110m에 불과할 정도로 작았고 콘크리트 펜스 높이가 2m 남짓에 불과했다.] [[박영길]] 감독 재임 당시에도 7.5m의 철망 펜스를 유지했으나 박 감독의 후임으로 들어온 [[정동진]] 감독은 철망 높이를 낮춰 6.5m로 바꾸었고 팀 간판을 [[현대 유니콘스]]로 바꾼 [[김재박]] 감독 시절에 최종 펜스 높이가 4.5m 가량이 되었다. 그래도 감당이 안되어서 해태나 삼성같이 타력이 강한 팀과는 당시 제2홈구장이자 숭의야구장보다 규모가 훨씬 컸던[* 1999년 [[김재박]] 감독의 요청으로 홈에서 펜스까지의 거리를 5m씩 줄이기 전까지 수원구장은 [[잠실 야구장]]과 동급 규모인 좌우 100m-중간 125m, 펜스 높이 4m의 초대형 야구장이었다.]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수원 야구장]]에서 홈경기를 자주 치렀다. 좌 91m-중 110m-우 91m으로 1960~70년대 스타일의 [[로스앤젤레스 메모리얼 콜리세움|극단적으로 작은 규모의 야구장이었으나 철망의 힘으로 그나마 버틴 사례.]][* 홈런성 공도 철망을 맞고 튕겨 인플레이가 되기도 했고 라이너성 타구가 높은 철망에 맞아 2루타, 단타로 처리되기도 했다.] 사실 이 경기장은 프로야구 경기장으로도 많은 ~~[[안습]]의~~ 기록을 세웠지만, 인천에서 야구를 배우고 선수로 성장한 야구인들에게는 [[동대문야구장]]급의 가치를 지닌 곳이다. 특히 인천 지역의 수많은 학생 야구선수들은 동대문에서 열리는 [[고교야구]] 및 [[한국대학야구|대학야구]] 전국대회에 출전하려면 무조건 이 경기장에서 지역 예선을 치러야 했기 때문에 인천 출신 야구선수들에게는 그야말로 배움의 성지였다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인천 야구의 대부인 [[박현식]] 선생이나 [[김진영(1935)|김진영]] 선생부터 1980~1990년대 야구 스타였던 [[임호균]], [[양승관]], [[김경기]], [[정민태]], [[송지만]], 오늘날 [[류현진]], [[이재원(1988)|이재원]] 등에 이르기까지 국내외 리그에서 이름을 알린 인천 출신 스타들에게 숭의야구장은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 현대 유니콘스 시절(1996~1999). 도원 구장의 혁명적 변화 === [[현대 유니콘스]]의 등장과 함께 구장은 대대적인 변화를 맞이했다. 현대가 돈을 들여 구장을 개보수했는데, 먼저 비만 조금 오면 경기를 치를 수 없던 배수 시설을 완전히 뜯어 고치고 잔디보다 모래가 더 많아 흉해보였던 외야 그라운드에 인조잔디를 깔았다. 도원 구장은 프로 초창기에도 외야 잔디의 질은 인정받았으나 80-90년대 초반의 열악한 지원 환경과 무관심 속에 외야수 자리는 흙이 노출되었었다. 내야는 산뜻한 황토로 변경되었으며 1997년부터는 일본에서 들여온 회색 흙(배수성이 좋은 화산석 흙)을 내야에 깔았다. (1996년과 1997년 이후의 내야 흙 색이 다르다.) 무엇보다 획기적인 것은 구장 광고판과 전광판의 변신. 천연색의 내외야 광고판이 난무하던 국내 야구장에 처음으로 녹색배경의 노란색/흰색 글씨의 외야 펜스 광고를 도입했다.[* 1996년 후반부터는 다시 천연색 광고판이 등장하긴 한다. 백스톱 광고판은 잠실에서 이미 녹색배경의 노란색 광고판을 운영했었다.] 구장은 낙후했으나 방문한 관중들에게 색다른 산뜻함을 제공하였다. 1998년부터는 4색 전광판을 도입하여 애니메이션까지 나오는 것으로 새롭게 고쳤고,[* [[1997년]]까지 사용한 기존 전광판은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수원야구장]]의 리모델링 전 전광판과 같았다.] 관중석도 새단장했다. 하지만 새롭게 단장해 봤자 너무 낙후되어서 그리 티가 안 났다는 것이 문제였다. [[파일:도원 중앙석.jpg]] 이렇게 열악한 곳이 무려 중앙 지정석이었다. [[파일:도원 3루.png]] 3루쪽 좌석. 경기장 입구는 총 3곳으로 1루, 3루 내야 1곳씩, 중앙 1곳(지정석용)이었는데 입구의 옆에 협소하게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었다. 워낙 비좁은 탓에 현대 시절에 화장실 수리를 했음에도 옛 고속도로 휴게소 타입의 뻥 뚫린 수세식 소변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파일:숭의야구장 변소.gif]] 당시의 숭의야구장 화장실. 오른쪽은 [[무등 야구장]] 화장실이다. 작은 규모라서 그런지 구장으로 들어올 수 있는 소위 '개구멍'이 있었으며, 심지어 구장 벽을 타고 올라가 구장에 출입했다는 [[도시전설]]이 있기도 하다. --도원전사-- 거기에 우측 펜스 뒷편 [[광성고등학교(인천)|광성고교]] 쪽 언덕배기와 중앙여상 건물과 그 옆에 교회가 있는데 이 곳에서 야구장을 바라보는 조망이 좋은지 여기서 공짜로 경기관람을 하던 야구팬들이 있었다. --[[리글리 필드|어어?!]]-- === SK 와이번스 시절(2000~2002) === [[현대 유니콘스]]가 서울로 [[연고지 이전]]을 발표하고 야반도주한 뒤에는 [[SK 와이번스]]가 들어왔다. SK 와이번스는 이 구장에서 2000년 4월 8일 [[한화 이글스]] 전을 시작으로 홈 경기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21세기 이후 [[한화 이글스]]가 막장 투수진을 가지고도 깨지 못한 기록이 있는게, 그게 피[[홈런]] 기록이다. 2000년 195피홈런을 기록했는데 그 때 인천에서 115피홈런을 기록했다.(원정80) 홈경기 115피홈런도 당분간 깨지기 힘든 기록. 얼마나 친 타자 구장인지를 알게 해주는 대목. 그러나 광주의 234홈런[* 2017년 '''144경기 체제'''에서 SK 와이번스가 친 홈런 수와 동일하다. 참고로 당시에는 133경기였다.]을 깨지는 못했다. 당시 SK 타자들이 외국인 타자 [[틸슨 브리또]]를 제외하면 모두 막장이었으니.. 2002년 초 [[인천SK행복드림구장|문학 야구장]]이 완공되어 그 해부터는 문학 야구장을 홈 구장으로 쓰게 되었으나,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월드컵]]과 일정이 겹치는 관계로 [[문학경기장]]에서 월드컵 경기가 있던 날에는 SK가 숭의야구장을 쓰기로 하여 정규리그 홈경기 중 6경기를 숭의야구장에서 치렀다. 2002년 6월 9일 현대전을 끝으로 더이상 1군 경기는 열리지 않았지만 시범경기로 폭을 넓히면 2004년 3월 14일에 열린 롯데와의 시범경기가 마지막 경기였다. 그 뒤 [[미추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와 [[SK 와이번스 2군]] 경기장으로 사용되었다. [[파일:도원 정규 막경기.jpg]] [[무등 야구장]]처럼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관중들이 경기장에 들어 올 수 있게 하였다. === SK 와이번스 2군 구장 시절(2000, 2006~2008) === 2000년 [[SK 와이번스]]가 창단되어 한 시즌 동안 1군 경기가 없을 경우 2군 홈 구장으로도 사용되었다. 2001년 용현동 드림파크가 완공된 후에는 2군을 용현동으로 이전했다가, 2006년 용현동 일대 재개발로 드림파크가 철거된 뒤에는 다시 숭의야구장을 철거 직전까지 2군 홈구장으로 사용하였다. [[파일:도원 전광판.jpg]] 2006년 당시 전광판인데, SK가 도원을 떠나고 나서 개 보수가 잘 없었기 때문에 전광판에 적힌 이름이 밝기가 낮아서 잘 보이지 않는다. 특히 CH 아래 II는 보이지 않는다. 자세히 보면 [[심재학]], [[송산]], [[조동화]], [[이재원(1988)|이재원]], [[김재현(1987)]], [[임훈]], [[김성현(1987)]]등의 이름을 볼 수 있다. 철거 후에는 한동안 송도 LNG 야구장을 이용했다. === 숭의야구장이 남긴 기록들 === 초창기 숭의야구장의 홈팀인 [[삼청태|삼미, 청보, 태평양]]은 상대적으로 약한 전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 경기장에서 [[안습]]의 기록을 적지 않게 양산했다. 물론 팬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초특급 기록도 간혹 탄생했다. 예를 들어 밑에서 후술할 [[임호균]]의 최소투구 완봉승 등의 기록이 그렇다. 더불어 [[KBO 리그]] 최초의 기록이 숱하게 탄생한 기록의 산실이기도 하다. * [[1982년]] [[7월 17일]]: 숭의야구장에서 열렸던 첫 번째 [[KBO 리그]] 경기. 상대팀은 [[MBC 청룡]]이었다. 물론 예상했겠다시피 이날 경기도 [[삼미 슈퍼스타즈]]가 [[오늘도 졌다|어김없이 패배를 적립하면서]] 후기리그 개막 6연패를 이어갔다.[* 참고로 1982년 후기리그에서 삼미가 거둔 성적은 40경기 5승 35패, 승률 0.125였다. 물론 [[KBO 리그]] 사상 기별 성적으로는 최악의 기록.] 삼미는 5일 뒤인 7월 22일 인천 해태전에서 7-4로 승리를 거두면서 창단 이후 첫 번째로 인천 홈경기에서 승리를 기록했다. * 그 해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서울]]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 당시 숭의야구장이 보조경기장으로 지정된 탓에 조명탑 설치 등의 공사를 해야 했고, 공사가 끝난 후기리그부터 인천에서 홈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 그 전까지는 제2홈구장인 구 춘천야구장(온의동 소재)에서 홈경기를 7경기 치렀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동대문야구장|서울 동대문야구장]], [[구덕 야구장|부산 구덕야구장]],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시민야구장]] 등 다른 팀 홈구장을 빌려서 '특별 홈 경기'라는 이름으로 홈 경기 같지 않은 홈 경기를 11경기(더블헤더 포함)나 치러야 했다.[* 이는 삼미에게만 해당된 얘기는 아니어서 다른 팀들 역시 '특별 홈 경기' 명목으로 다른 지역에서 경기를 치렀다. 단적인 예로, [[박철순]]이 연승 행진을 22연승에서 마감한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는 잠실구장에서 열렸는데, 이 경기의 홈 팀은 롯데였다. 참고로 당시 OB의 연고지는 서울이 아닌 충청도였다.] 물론 다들 알다시피 이 당시 삼미는 대부분의 경기에서 패배했다. 그래도 MBC에게는 우세. 당시의 '특별 홈 경기' 일정은 다음과 같다. ||<:> 연도 ||<:> 일자 ||<:>구장 ||<:>상대팀 ||<:>결과 ||<:> 홈팀 경기 || ||<|12><:> [[1982년]] || [[4월 8일]] || 부산 구덕야구장 ||<|2><:> [[해태 타이거즈]] || 7:4 (패배) || 롯데 대구원정 || || [[4월 14일]] ||<|2><:> 서울 동대문야구장 || 10:2 (패배) || MBC 경기없음 || || [[4월 15일]] || [[OB 베어스]] || 9:3 (패배) || MBC 광주원정 || || [[6월 5일]] ||<|2><:> 대구 시민야구장 ||<|2> [[MBC 청룡]] || 4:11 (승리) || 삼성 부산원정 || || [[6월 6일]] ||10:11 (승리) ||삼성 부산원정 || || [[6월 12일]] ||<|2><:> 부산 구덕야구장 || [[삼성 라이온즈]] || 20:1 (패배) || 롯데 광주원정 || || [[6월 16일]] || [[OB 베어스]] || 5:4 (패배) || 롯데 경기없음 || ||<|2> [[6월 20일]] ||<|2> 대구 시민야구장 ||<|2> '''[[삼성 라이온즈]]'''(!) || 4:1 (패배) ||<|2> 더블헤더 || || 10:3 (패배) || || [[6월 23일]] ||<|2><:> 부산 구덕야구장 ||<|2><:> [[해태 타이거즈]] || 13:4(패배) || 롯데 대전원정 || || [[6월 24일]] || 5:7 (승리) || 롯데 대전원정 || * [[1983년]] [[9월 26일]]: '[[너구리]]'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삼미 슈퍼스타즈|삼미]] [[장명부]]가 [[해태 타이거즈]]를 상대로 완봉승을 거두면서 한 시즌 개인 최다승인 '''30승'''을 기록했다. 이 기록은 2018년 7월 29일 기준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은 투수 개인 시즌 최다승 기록이며 장명부가 기록한 28선발승 또한 KBO 최다 선발승 기록이다. * [[1985년]] [[4월 30일]]: 무려 '''18연패'''에 빠졌던 [[삼미 슈퍼스타즈]]가 [[최계훈]]의 완봉 역투와 8회말 [[양승관]]의 싹쓸이 3루타에 힘입어 [[MBC 청룡]]을 상대로 4:0 승리를 거두며 길고 긴 연패를 끊어냈다. 그러나 이날 승리 다음날 삼미그룹은 야구단 매각을 발표했다. * [[1986년]] [[7월 15일]]: [[KBO 리그]] 최초로 두 명의 투수가 합작해 매 이닝 삼진아웃을 잡아낸 경기. 주인공은 [[최계훈]]과 [[조병천]]. * [[1986년]] [[7월 27일]]: [[해태 타이거즈]]와 [[청보 핀토스]]의 경기에서 [[KBO 리그]] 최초로 '''15이닝 0-0 무승부'''가 나왔다. 더 무서운 것은 이날 양팀에서 등판한 두수는 총 2명. 해태 선발 [[차동철]][* 현 [[건국대학교]] 야구부 감독. 'SF볼의 마술사'로 불렸으며 [[해태 타이거즈]]와 [[LG 트윈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과 청보 선발 [[김신부]][* 재일교포 출신의 언더핸드 투수. [[청보 핀토스]]와 [[태평양 돌핀스]]를 거쳐 [[LG 트윈스]]에서 은퇴했다.]는 서로 '''15이닝동안 혼자 피칭을 했다.'''[* 참고로, [[차동철]]과 [[김신부]]는 나중에 [[LG 트윈스]]에서 한팀으로 만나서, [[1990년]]에 우승을 경험했다.] 토미넌트 스타트에 퀄리티 스터트 플러스를 합친 것을 한경기에 두 투수가 보여준 것. * [[1987년]] [[8월 25일]]: [[청보 핀토스]]의 [[임호균]]이 [[해태 타이거즈]]를 상대로 [[KBO 리그]] 역대 최소투구 완봉승('''73구''') 기록을 세웠으며 이 기록은 2018년 7월 29일 기준 현재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 [[1992년]] [[8월 19일]]: [[스위치 히터]]인 [[OB 베어스]]의 [[장원진]]이 [[KBO 리그]] 최초로 양쪽 타석에서 멀티히트를 기록했다. 기록은 안타와 2루타. * [[1994년]] [[10월 23일]]: [[1994년 한국시리즈]]에서 [[LG 트윈스]]가 [[태평양 돌핀스]]를 4승 무패로 꺾고 두 번째 우승을 기록했다. 이것이 지금까지 LG 트윈스의 마지막 우승. * [[1996년]] [[10월 20일]]: [[현대 유니콘스]]의 [[정명원]]이 [[해태 타이거즈]]를 상대로 [[KBO 리그]] 역대 최초로 '''[[한국시리즈]] [[노히트 노런]]'''의 대기록을 세웠다. * [[1998년]] [[5월 14일]]: [[해태 타이거즈]]의 이대진이 [[KBO 리그]] '''역대 최다 연속타자 탈삼진(10개)'''를 뽑아냈다. 일명 '[[스캇 쿨바|쿨바]]에서 [[스캇 쿨바|쿨바]]까지'로 일컬어지는 기록. * [[1998년]] [[10월 30일]]: [[1998년 한국시리즈]]에서 [[현대 유니콘스]]가 [[LG 트윈스]]를 4승 2패로 꺾고 [[삼청태현|인천야구]] 사상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 [[2000년]] [[10월 11일]]: [[현대 유니콘스]]가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KBO 리그]] 역대 최초로 한 시즌 90승의 위업을 달성한다. 이 해 현대는 91승을 거뒀는데 이는 [[KBO 리그]] 사상 단일 구단의 한 시즌 최다승 기록이다. 2016년 두산의 93승 으로 기록이 깨지기 전까지.[* [[현대 유니콘스|현대]]의 91승은 16년간 독보적인 기록으로 남아있었지만 [[두산 베어스]]가 2016년 9월 28일 대전 한화전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91승을 기록해 타이기록이 됐다. 그 후 2승을 더 기록해 KBO 리그 한 시즌 팀 최다승리 기록은 두산 베어스가 가져갔다.] * [[2001년]] [[9월 22일]]: [[SK 와이번스]]의 [[페르난도 에르난데스]]가 [[KBO 리그]] 외국인 선수 사상 최초로 '200이닝-200탈삼진'의 기록을 달성했다. === 철거 === 2008년 [[인천광역시]]의 도시재생사업 추진 과정에서 이 지역이 재개발 대상이 되자, 한국 야구사와 오랜 세월을 함께한 숭의야구장은 옆의 숭의종합운동장과 함께 철거되었다. 이후 이 지역은 [[인천축구전용경기장|숭의 아레나 파크]]라는 [[축구장|축구전용구장]]으로 변신해 [[인천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으로 활용 중이다. 2013년 이후 건설경기 불황으로 주상복합 건설은 지지부진하다 도원서희스타힐스라는 지역 주택조합 아파트로 변경되어 2016년 8월 분양에 들어가 2017년 6월 조합 설립인가가 완료되었고 2020년까지 주상복합아파트 47층 7개 동 오피스텔 1동을 건설할 예정이다. 2017년 10월에 공사를 준비 중이다. [[인천광역시]]는 숭의야구장 철거 과정에서 인천 지역 아마야구 대체 구장 마련을 약속했는데, 인천대공원 근처에 짓는다는 말만 있을 뿐이다. 대체구장이라고 지은 것이 바다 한가운데 LNG 기지에 지은 것이니... 거기다 2019년 12월 말까지 된 계약 기간이 지나면 철거하고 물류창고를 만든다고 한다. 물론 대체 야구장 10곳을 조성한다지만 2곳을 제외하곤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그 사이 [[SK 와이번스]]가 [[강화군]] 길상면에 [[SK 퓨처스 파크]]를 지었지만, 숭의야구장의 대체 경기장과는 무관하다. 야구장은 완전히 사라졌지만, 숭의야구장의 흔적은 [[도원역]]에서 [[인천축구전용경기장]] 앞 썬큰광장으로 이어지는 지하보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천축구전용경기장]] 건축 과정에서 철거된 야구장의 옛 의자와 덕아웃 등 일부를 보존해 별도 공간에서 전시하고 있으며 역대 인천 연고 야구단의 역사도 기록하고 있다. 참고: [[인천 도원구장 연고팀의 사건사고]]--도원전사-- == 여담 == * [[1998년]] [[안재욱]]이 [[김재박]] 당시 [[현대 유니콘스]] 감독에게 [[펑고]]를 받은적이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t=348&v=iYMgnpSaB5Y|당시 영상]], [[https://youtu.be/7QFJ9DdGz5w|당시 영상 2]] [[분류:대한민국의 야구장]][[분류:현대 유니콘스]][[분류:SK 와이번스]][[분류:대한민국의 없어진 건축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