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신라 추존 국왕)] ||<-2><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4A2D5B><tablebgcolor=#4A2D5B> '''{{{#FFD700 [[신라/왕사|{{{#FFD700 신라 고허촌 촌장[br]박혁거세의 양부}}}]][br]{{{+1 文烈王[br]문열왕}}}}}}''' || ||<-2><bgcolor=#fff>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소벌도리공기적비.jpg|width=100%]]}}} || ||<-2><bgcolor=#fff,#1F2023> {{{-1 경주시 탑동에 있는 소벌도리공기적비.}}} || ||<width=80> '''[[시호|{{{#FFD700 시호}}}]]''' ||<colbgcolor=#fff,#2d2f34>'''충선(忠宣), 문열왕(文烈王)'''[* [[법흥왕]] 3년, 충선(忠宣)이란 시호가 주어졌으며 [[태종 무열왕]]에 의해 왕으로 추존되며 문열왕(文烈王)이란 시호를 받았다.] || || '''{{{#FFD700 별호}}}''' ||<bgcolor=#fff>소벌공(蘇伐公) || || '''{{{#FFD700 생몰연도}}}''' ||?~? || || '''{{{#FFD700 출생지}}}''' ||?[* 삼국사기 에서는 고조선의 유민, 삼국유사 에서는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되어있다.]|| || '''{{{#FFD700 능묘}}}''' ||<bgcolor=#fff>미상 || || '''{{{#FFD700 재위}}}''' ||?~?[* 대략 양부로서 혁거세 거서간이 12세 때 까지 재위 하였다고 나와있다.][* 촌장이니 만큼 재위보다도 왕이 어리니 양육을 해주었던 것에 가깝다.]|| || '''{{{#FFD700 성씨}}}''' ||최(崔) || || '''{{{#FFD700 휘}}}''' ||소벌도리(蘇伐都利)[*삼국유사]소벌공(蘇伐公)[*삼국사기] || || '''{{{#FFD700 자녀}}}''' ||양자 [[혁거세 거서간]](赫居世 居西干, 朴赫巨世) 친자 최대벌리(崔大伐利), 소해리(蘇解理), 소계양(蘇桂陽) || [목차] [clearfix] == 개요 == [[신라]] 건국기의 인물. [[소(성씨)|소씨]]와 [[최(성씨)|최씨]]의 조상이다.[* 하지만 경주 최씨 대종회에서는 소벌도리공을 소씨의 조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삼국유사]]에서는 소벌도리, [[삼국사기]]에서는 소벌공(蘇伐公)으로 나온다. == 상세 == 신라가 공식적으로 건국되기 전 [[경주시]] 지역의 6촌 중 돌산 고허촌(高墟村)의 촌장이었다. 훗날 신라 6부 중 사량부의 시조가 됐다. 이름의 '소벌'은 신라의 옛 이름인 [[서라벌]]과 같이 '''쇠벌'''을 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유사에서는 6촌 촌장이 될 사람들이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는데, 삼국사기에서는 6촌의 구성원이 [[고조선]]의 유민이라고 쓰고 있다. 학계에서는 앞서 멸망한 [[고조선]] 유민 세력들이 [[한반도]] 남부로 남하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준왕]]을 따르는 세력이 한반도 서남쪽으로 내려갔듯 동남쪽에도 유민 유입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사로6촌의 촌장들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것으로 전해져온다. [[박혁거세]] 탄생 설화에서는 소벌도리가 [[나정]]에서 혁거세의 [[알]]을 처음 발견하고, 10살까지 집에서 키우며 나중에 왕으로 추대할 때도 주도적 역할을 한다. 설화적 윤색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혁거세 집단이 즉위하고 신라의 원형이 만들어지는 데서도 6촌 중 가장 큰 공을 세운 후원세력의 우두머리로 볼 수 있다. >어느 날 고허촌장 소벌공(혹은 소벌도리)이 양산 기슭을 바라보니 [[나정]] 곁의 숲 사이에 말 한 마리가 무릎을 꿇고 울고 있었다. 그래서 가 보니 갑자기 말은 보이지 않고 큰 알이 한개 있어 깨뜨려보니 한 아이가 나왔다. 소벌공은 그 아이를 데리고 와서 잘 길렀는데, 10여세가 되자 유달리 숙성하였다. 6부 사람들은 그 아이의 출생이 신기했으므로 모두 우러러 받들어 왕으로 모셨다. 진한 사람들은 [[표주박]]을 박(朴)이라고 하였는데, 혁거세가 난 커다란 알의 모양이 표주박 같이 생겨서 성을 박으로 하였다. >---- >《삼국사기》 그의 아들 최대벌리(崔大伐利) 혈통으로 25세손 [[최치원]]이 [[경주 최씨]]의 시조가 되고, 다른 아들 소해리(蘇解理)의 24대손 [[소경]]([[알천]])이 진주 소씨의 시조가 됐다고 한다. 다만 알천은 [[태종 무열왕]]의 형이라는 이야기도 있어서 다소 불확실하다. [[분류:신라의 군주]][[분류:신라의 인물]][[분류:추존된 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