園祥子 [[1867년]] [[12월 23일]] - [[1947년]] [[7월 7일]] (향년 만 79세) [목차] == 개요 == [[일본]] [[메이지 덴노]]의 측실([[후궁]]). 소노 모토사치(園基祥) [[백작]]의 딸이다. == 생애 == [[메이지 덴노]]의 정실인 [[쇼켄 황후]](하루코)는 허약하여 아이를 낳지 못했다. 대신 메이지 덴노는 많은 측실들을 거느렸고, 그녀들로부터 5남 10녀를 낳았다. 하지만 대부분은 1~2살 안팎으로 일찍 죽었다. 살아남은 아이들은 1남 4녀뿐으로, [[야나기하라 나루코]] 소생의 하루노미야 요시히토 친왕(후의 [[다이쇼 덴노]])[* [[다이쇼 덴노]]는 꽤 오랫동안 [[쇼켄 황후]]를 자신의 친어머니로 알고 있었고, 나중에야 [[야나기하라 나루코|자신의 생모]]가 따로 있다는 걸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과 소노 사치코 소생의 내친왕([[공주]])[* [[일본 황실]]에서 덴노의 딸과 손녀까지는 내친왕, 증손녀부터는 여왕이라 한다. 다만 1947년 현행 [[황실전범]]이 제정되기 이전에는 4대손까지를 내친왕, 5대손부터를 여왕이라 했다. 남자의 경우 친왕/왕.]들뿐이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들인 요시히토 친왕이 황태자가 되었고, 훗날 덴노로 즉위했다. 사치코는 [[메이지 덴노]]의 총애를 받아 2남 6녀라는 많은 자녀를 낳았으나, 4명의 딸만이 살아남았다. 사치코의 딸들은 모두 방계 황족 가문에 시집가 황족 부인이 되었지만, 그 중에서 2명은 어머니 사치코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나머지 2명은 패전 이후 [[신적강하]]로 황족의 신분을 잃고 평민이 되었다. 1915년 [[데이메이 황후]](사다코)가 막내 [[다카히토]] 친왕을 낳을 때 [[출산]]을 도왔다고 한다. 메이지 덴노 치세기의 극초반에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과 일본의 패전, 그리고 [[일본 제국]]이 일본국으로 바뀌는 것까지 목격했기 때문에 상당히 오랫동안 살면서 많은 걸 지켜본 일본 근대사의 산 증인이다. == 자녀 == * 장녀[* [[메이지 덴노]]에게는 5녀] 히사노미야 시즈코(久宮靜子) 내친왕(1886-1887) * 장남[* 메이지 덴노에게는 4남] 아키노미야 미치히토(昭宮猷仁) 친왕(1887-1888) * 차녀[* 메이지 덴노에게는 6녀] 츠네노미야 마사코(常宮昌子) 내친왕(1888-1940) - 다케다노미야 츠네히사(竹田宮恒久)[* 츠네히사 왕의 여동생 호시나 다케코(保科武子)는 [[기타시라카와 하츠코]]의 고모할머니이며, [[쇼다 미치코]]가 하츠코를 제치고 황태자비가 된 후로는 [[나가코 황후]]의 [[시녀]]장(侍女長)을 지내며 [[미치코 황후/갖가지 시집살이 에피소드|미치코 황태자비 시집살이 시키기]]에 한 몫을 했다.] 왕에게 시집가 1남[* 이 아들인 다케다 츠네요시는 [[731 부대]]에서 생체 실험을 한 --[[천하의 개쌍놈]]-- 전범이다. 그리고 츠네요시의 손자는 [[극우]], [[혐한]] 논객으로 유명한 [[다케다 츠네야스]]이다. --막장 집안-- ] 1녀를 낳았다. * 3녀[* 메이지 덴노에게는 7녀] 카네노미야 후사코(周宮房子) 내친왕(1890-1974) - 기타시라카와노미야 나루히사(北白川宮成久) 왕에게 시집가 1남 3녀를 낳았다. 1947년의 [[신적강하]] 때 황족의 지위를 잃고 평민으로 전락했다. 후사코의 차녀인 사와코(佐和子) 여왕은 [[이우]] 왕자의 신붓감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박영효]]의 손녀인 박찬주에 밀려 탈락했고, 후사코의 손녀인 [[기타시라카와 하츠코]]는 태어난 직후부터 장래의 황태자비 후보로 물망에 올랐으나, 평민 출신 [[쇼다 미치코]]에게 밀려 탈락[* 이 무렵 후사코는 [[이세신궁]]의 [[신관]]이었다. [[아키히토]] 황태자와 [[쇼다 미치코]]가 결혼식을 올리기 전 이세신궁에 참배하러 왔을 때, 후사코는 미치코를 홀대했다고 한다. [[시마즈 하츠코|자신의 손녀]]를 제치고 황태자비로 정해진 미치코가 미웠던 것이다.]한 후 [[시마즈]] 가문으로 시집갔다. * 4녀[* 메이지 덴노에게는 8녀] 후미노미야 노부코(富美宮允子) 내친왕(1891-1933) - [[아사카노미야 야스히코]] 왕[* [[난징 대학살]]의 총 지휘관이자, 극악무도한 전쟁범죄자이다.]에게 시집가 2남 2녀를 낳았다. * 차남[* 메이지 덴노에게는 5남] 미츠노미야 테루히토(滿宮輝仁) 친왕(1893-1894) * 5녀[* 메이지 덴노에게는 9녀] 야스노미야 도시코(泰宮聰子) 내친왕(1896-1978) -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 왕에게 시집가 4남을 낳았다. [[장남]]인 모리히로(盛厚) 왕은 [[쇼와 덴노]]의 [[장녀]]인 [[데루노미야 시게코]] 내친왕과 결혼했다. 1947년 [[신적강하]] 때 평민으로 전락. * 6녀[* 메이지 덴노에게는 10녀] 사다노미야 타키코(貞宮多喜子) 내친왕(1897-1899) [각주] [[분류:일본의 후궁]][[분류:1867년 출생]][[분류:1947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