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쿠바의 인물]][[분류:1925년 출생]][[분류:2003년 사망]] [include(틀:미국 국가 예술 훈장)] ---- [include(틀:역대 그래미 평생 공로상 수상자)] ||<-2><tablealign=right>[[파일:external/d39ya49a1fwv14.cloudfront.net/celiz-cruz.jpg|width=300]]|| ||이름||Celia Cruz|| ||출생||[[1925년]] 08월 21일[BR][[쿠바]] [[아바나]]|| ||사망||[[2003년]] 07월 16일 뇌종양|| '''[[살사]]의 여왕''' 셀리아 크루즈(본명 Úrsula Hilaria Celia de la Caridad Cruz Alfonso)는 쿠바 출신의 살사 가수이다. 무대에서 노래를 할 때 [[스페인어]]로 [[설탕]]을 뜻하는 아주카!(Azucar)를 외치며 흥을 돋우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에서 [[노동자]] 계급[* 다만 쿠바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국민 대부분이 노동자 계급이다]으로 태어났다. 원래는 교사가 되려고 했으나, 워낙 노래 실력이 뛰어난 덕분에 각종 노래대회에서 상을 받자 가수의 길을 모색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교사의 한달 월급[* 쿠바는 교사, 의사 등 전문직보다 자영업자들이 훨씬 더 많은 돈을 번다고 한다.]보다 가수로 하루 일해서 버는 돈이 더 많을 것"이라는 학교 선생님의 충고도 한 몫했다고... 셀리아는 그저 그런 쿠바의 이름모를 여가수의 삶을 살 뻔했으나,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일으킨 [[쿠바 혁명]] 때문에 정국이 불안해지자, 남편 페드로 나이트(Pedro Knight, 남편이자 음악적 동료)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해 [[시민권]]을 취득했다. 다만 셀리아의 초창기 가수 활동은 썩 평탄치 않았는데, 그 당시 미국의 [[인종차별]]적인 환경 때문에 예정되었던 녹음 일정이 일방적으로 취소되거나 관계자로부터 무시당하는 등의 불이익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차별에 굴하지 않고, 꾸준히 음악을 발표하며 점차 명성을 얻는데 성공한 셀리아는, 1980년대 경 높은 인기를 바탕으로 라틴아메리카나 유럽 몇몇 국가에서 투어를 진행하는 등 성공가도를 달렸다. 1990년대에는 [[그래미 어워드]]에서 Best Tropical Latin Performance을 비롯한 총 7개의 상을 받는 등 대중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듣는이를 들썩이게 하는 [[살사]] 아티스트인 셀리아는, 평소 "전 항상 행복해요. 슬픈 말들은 굳이 할 필요가 없답니다!"라고 말하며 많은 이들에게 신나는 음악과 함께 긍정적인 에너지를 퍼뜨리며 많은 팬들을 감동시켜왔다. 셀리아 크루즈는 살사음악의 상징적인 인물인만큼 트리뷰트 무대 역시 여러차례 꾸며졌다. 그녀 생전에는 [[리키 마틴]], [[글로리아 에스테반]] 등과 함께 무대를 선보인 바 있으며, [[2013년]]에는 그녀의 사망 10주기를 회고하며 <American Music Awards>에서 [[제니퍼 로페즈]]가 무대를 선보였다. 또한 [[2015년]] <Latin American Music Awards>에서는 [[멕시코]] 출신의 라틴팝 디바 Yuri, 살사 프린세스로 불리우는 La India, 쿠바 출신의 가수 겸 배우 Aymée Nuviola, 주목받고 있는 남성 신인가수 Maluma 등이 함께 화려한 무대를 선보이는 등 그녀의 노래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다. 여담으로, [[콜 오브 듀티 블랙옵스]]의 첫 번째 미션인 'Operation 40' 초반의 술집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그녀의 노래 'Quimbara'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