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erhiy_Konovalov.jpg]] 코치가 된 코놀 || '''이름''' || 세르히 보리소비치 코노발로우[br](Serhiy Borisovich Konovalov / Сергій Борисович Коновалов) || || K리그 등록명 || 코놀 || || '''생년월일''' || 1972년 3월 1일, [[소련]] [[우크라이나 SSR]] [[폴타바]] || || '''국적''' || [[소련]] [[우크라이나 SSR]] → [[우크라이나]] || || '''포지션''' || [[공격수]] || || '''신체 조건''' || 180cm || || '''소속 클럽''' || [[드니프로 드니프로페트로우시크]] (1990-1994) [br] [[디나모 키예프]] (1994-1996) [br] [[포항 스틸러스]] (1996-1998) [br] [[디나모 키예프]] (1998-2000) [br] [[드니프로 드니프로페트로우시크]] (2000-2001) [br] [[디나모 키예프]] (2001-2002) [br] [[베이타르 예루살렘]] (2002-2003) [br] [[아르세날 키예프]] (2003) [br] 보리스펜 보리스필 (2004) [br] 칭다오 중넝 (2004) [br] [[아르세날 키예프]] (2004-2005) [br] [[인테르 바쿠]] (2006) || || '''국가대표''' || 우크라이나 22경기 3골 || || 별명 || 사이비라데 || == [[포항 스틸러스]] == 1996년 여름 [[디나모 키예프]]에서 포항으로 이적했다. 당시 현역 우크라이나 국가대표팀 멤버였으며 자국 명문인 디나모 키예프에서 뛰던 젊고 유망한 선수였다. 당연히 몸값이 엄청났는데 이적료 60만 달러, 계약금 5만 달러, 월봉 6000달러로 수원의 [[바데아]] 다음으로 비싼 용병이었다. 하지만 영입 당시에는 시즌이 한창이었고 한국의 무더운 여름 날씨에 적응하지 못하여 잉여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에 열받은 포항 선수단도 많이 열받았는지 '''사이비 라데'''라고 불렸다. [[라데]] 또한 본인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코놀이 더 좋은 대우를 받자 포항에 섭섭해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라데는 1996시즌을 끝으로 K리그를 떠났다. 그런데 라데가 떠난 1997시즌에는 라데의 번호였던 10번을 물려 받고 환골탈태하여 26경기 12골이라는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펼치면서 [[자심]], [[싼더]]와 함께 1997 포항의 든든한 기둥이 되었다. 중요한 순간마다 골을 터뜨려 포항의 [[AFC 챔피언스리그]] 2연패에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했다. ACL 통산 4골 기록. 1998년 다시 디나모 키예프로 복귀했다. 평가가 상당히 갈리는 선수이기도 한다. 딱 일년 반짝하고 제대로 뛰었기 때문에 [[먹튀]]라고 보는 축구팬들도 있지만 첫 시즌의 어려운 환경(우크라이나와는 완전히 다른 기후, 선수단의 조롱)을 겪고도 한국에 남아서 어느 정도 성적을 낸 것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첫 시즌부터 성공했던 용병들보다도 더 대단하다고도 볼 수도 있다. == 관련 문서 == * [[외국인 선수/역대 프로축구]] [각주] [[분류:1972년 출생]][[분류:우크라이나의 축구선수]][[분류:외국인 선수(축구)]][[분류:포항 스틸러스/은퇴, 이적]][[분류:FC 디나모 키예프/은퇴, 이적]][[분류:FC 드니프로/은퇴, 이적]][[분류:FC 아르세날 키예프/은퇴, 이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