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소련군/원수)] ||||<table bordercolor=#FFE400><tablealign=right><#c70125> {{{+3 '''{{{#FFE400 세르게이 게오르기예비치 고르시코프 }}}'''[br]'''{{{#FFE400 Серге́й Гео́ргиевич Горшко́в }}}'''}}}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external/vladregion.info/gorshkovy13.jpg|width=100%]]}}} |||| ||<#CC0000><:>'''{{{#FFE400 이름}}}''' ||[[러시아어]] : Серге́й Гео́ргиевич Горшко́в [br] [[영어]] : Sergey Georgiyevich Gorshkov [br] [[한국어]] : 세르게이 게오르기예비치 고르시코프|| ||<#CC0000><:>'''{{{#FFE400 출생}}}''' ||[[1910년]] [[2월 26일]], [[러시아 제국]] 카메네츠-포돌츠크|| ||<#CC0000><:>'''{{{#FFE400 사망}}}''' ||[[1988년]] [[5월 13일]], [[소련]] [[모스크바]] || ||<#CC0000><:>'''{{{#FFE400 복무}}}''' ||[[소련군]](1927년 ~ 1985년)|| ||<#CC0000><:>'''{{{#FFE400 최종 계급}}}''' ||[[소련 해군|해군]] [[원수(계급)|원수]]|| ||<#CC0000><:>'''{{{#FFE400 주요 참전}}}''' ||[[제2차 세계 대전]]|| ||<#CC0000><:>'''{{{#FFE400 주요 서훈}}}''' ||[[소비에트연방영웅]] 2회 [br] [[레닌훈장]] 7회|| ||<width=450>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D0%90%D0%B4%D0%BC%D0%B8%D1%80%D0%B0%D0%BB_%D0%93%D0%BE%D1%80%D1%88%D0%BA%D0%BE%D0%B2.jpg|width=100%]] || ||<width=400> [[파일:external/img.timeinc.net/1101680223_400.jpg|width=100%]] || || [[1968년]] [[2월 23일]]자 [[타임(주간지)|타임]]지 표지. || [목차] [clearfix] == 개요 == [[소련 해군]] 총사령관직을 1956년부터 1985년까지 무려 '''29년''' 동안 맡았던 [[소련]] [[해군]] [[제독]]. [[니콜라이 쿠즈네초프]] 제독이 소련 해군의 [[아버지]]라면 고르시코프 제독은 사실상 '''소련 해군의 [[어머니]]이며 [[냉전]]시기와 세계 2위 전력을 자랑하는 현대의 소련-[[러시아 해군]]에 결정적 기여를 한 인물'''이다. == 생애 == === 성장 === 고르시코프는 1910년 2월 26일 [[우크라이나]](당시에는 [[제정 러시아]])의 카메네츠-포돌츠크에서 태어나서 모스크바주의 콜롬나에서 자라 1927년 17세에 소련 해군에 입대한뒤 1931년 [[프룬제]] 해군학교를 졸업한다. 졸업 후 흑해[[함대]]의 [[구축함]] 프룬체의 [[항해사]]로 근무하다가 1932년에 [[러시아 태평양 함대|태평양 함대]] 기뢰전 함선 톰스크에 배치되게 된다. 그 이후 [[여단장]]을 역임하며 1937년~1941년 소련 해군 지휘관 코스를 졸업하고 31살에 최연소 제독이 된다. === [[제2차 세계 대전]] === [[독소전쟁]]이 발발한 1941년 10월에 아조프 소함대 사령관에 임명되고, 케르치 반도 [[상륙작전]]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1년 뒤 1942년 9월에 제47군을 임시 지휘하여 노보로시스크를 방어, 1943년 아조프 소함대에 복귀한 뒤 그해 말에 다뉴브 소함대 사령관에 임명되었다가 44년 10월 흑해함대 전대 사령관이 된다. === 전후 === 2차 대전이 끝난뒤에는 1948년~1951년 함대 참모장, 1951년~1955년 흑해함대 사령관, 그리고 1955년~1956년 해군 부사령관을 역임한다. 그리고 대망의 1956년, 니콜라이 쿠즈네초프의 후임으로 소련해군 총사령관과 국방차관에 취임하였다.[* 당시 소련 국방부는 [[국방장관]] - 제1국방차관 - 국방차관으로 이어지는 지휘체계였다. 제1국방차관은 [[소련군]] 총참모장, 바르샤바 조약군 총사령관, 군수산업사령관등 총 3명이었으며, 그 밑에 육군/해군/공군/방공군/전략로케트군 사령관 5명이 당연직으로 국방차관을 겸임하였다.] === 해군 총사령관 시절 ===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서기장의 군비 증강 기조에 힘입어 그야말로 아무것도 별 볼일 없던 소련해군을 그의 --29년이라는 무자비하게 긴 --부임기간 동안 '''2위'''로 만들어놓는다. 고르시코프는 막강한 해군력을 지닌 서구에 대항하기 위한 대양해군을 양성해야 한다고 했고 그 결과 핵잠수함, 탄도미사일 잠수함, 항공기 발사형 대함미사일, 해상작전헬리곱터 등이 포함되었고 소련의 순양함들은 본격적으로 북해와 지중해와 같은 대양으로 진출해 소련 군사력의 힘을 과시했다. 1965년, [[소비에트연방영웅]] 칭호를 받고 1967년에는 소련 해군 최고 계급인 소련함대제독(해군 원수)으로 승진한다. 소련 해군의 균형함대 발전론을 주장하면서 1970년 크반트 연구소를 방문해 소련 해군용 Carat [[컴퓨터]]의 개발을 의뢰하는 등 그야말로 소련 해군을 위해 '''[[신발]]이 닳도록 뛰어다녔다.''' 고르시코프가 폭발적으로 성장시켜놓은 소련 해군은 서방세계에서도 주목을 받았으며 미국 내부에선 [[1975년 순양함 격차 논쟁]]와 같은 정치적 논쟁까지 벌여졌다. 사실상 소련 해군의 교리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으며 냉전 시기 소련 해군, 그리고 현 러시아 해군은 사실상 그가 만들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가 주장한 소련 해군의 전략은 상시 전 세계 바다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불가능한 목표를 포기하고, 필요한 때에 필요한 해역만을 장악한다는 전략이다. 간단히 예를 들어 말하자면 >'''"우리가 이제 영국 본토를 탈탈 털껀데 잠시 [[도버 해협]] 앞으로 애들 죄다 모아서 도버 [[제해권]]만 장악하면 되겠지?"''' 이런 개념이다. 이런 전략을 주장하게 된 이유에는 [[미사일]]과 [[잠수함]]의 발달이 있다. 고르시코프는 미사일과 [[원자력 잠수함]]의 발달로 해상 어디에서라도 기습의 위험을 피할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실제로 이 전략은 냉전 시기 내내 소련 해군의 정식 교리였다. 어찌되었든 고르시코프의 공로로 소련은 냉전시기 미해군을 제외한 나토 해군 전체를 압도하는 수준의 '''수십척의 핵추진 잠수함과 탄도미사일 잠수함을 운용하게 되었으며''' 특히 1972년에 등장한 [[델타급]] 잠수함은 소련의 연안에서도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 체계였다. 소련의 수상함 전력도 기존 2차 세계대전 형 구식 구축함, 순양함, 소형함 위주였다가 [[키예프급]],[[킨다급]] 및 [[크레스타급]] 미사일 순양함들을 비롯한 현대식 함정들로 전력이 증강되더니 1980년대 초반 부터 [[키로프급 핵추진 순양함]], [[슬라바급 순양함]]과 같은 막강한 대형함들도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폭격기 전력도 현대화되어 수백대에 달하는 [[Tu-16]],[[Tu-22M]] 폭격기들이 [[KH-22]] 초음속 대함미사일들을 탑재하고 미국 항모전단을 겨냥했다. 대양 곳곳에는 소련의 정찰기들과 정보수집선들이 미해군을 감시했고 우주 공간에는 소련의 해양정찰위성들이 미해군의 동태를 추적했다. 1982년, 또 한 번 소비에트연방영웅칭호를 받아 2중영웅이 되었고 1985년에 국방부 감찰단장으로 이직한 뒤 1988년 모스크바에서 별세했다. 소련 붕괴 이후 경제도 붕괴되면서 신생 [[러시아 연방]]은 어쩔 수 없이 고르시코프가 남겨둔 유산 상당부분을 스크랩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고르시코프의 유산은 [[러시아 해군]] 전력에 큰 보템이 되었고 그 덕에 소련 해군에 비해 규모가 매우 축소된 [[러시아 해군]]은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중국 해군]]의 급격한 팽창 이전까지 한동안 세계 2위의 해군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 여담 == 저서도 제법 있는 편인데, 일단 가장 우리가 잘 아는 것으론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mallGb=KOR&ejkGb=KOR&barcode=9788970131627&orderClick=JA2|국가의 해양력]]>이 있다. 국내 번역도 되었기 때문에, 해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봐야할 책. 다만 가짜 전쟁의 개념을 몰라 오역을 하거나 영문의 문장구조를 잘못 파악해 독소전 개전 초기 상황에 대한 서술을 엉뚱하게 서술하는 등 곳곳에서 번역이 엉망이기 때문에, 번거롭더라도 역자가 번역한 영역본을 구해 읽는 것을 권한다. 러시아어가 가능하다면 러시아어본을 구해서 읽는다면 한역본에서 나타나는 무의미한 용어 구분에서 오는 혼동을 줄일 수 있다. 물론 소련인이 쓴 만큼 영미까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렇게 대놓고 까진 않는다. 사실 영미보다는 지상군 위주의 국내 전략가들을 더 많이 깐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저서가 있지만 일단은 <국가의 해양력>이 가장 유명하며, 구하기 쉽다. 이 책은 1999년에 번역출판되었으며, 여기저기 도서관에 많이 비치되있고 2016년 현재도 쉽게 구할 수 있다. 소련 해군의 아버지이자 전임자인 쿠즈네초프 제독과는 사이가 무척 안좋았으며, 고르시코프는 쿠즈네초프의 원수 복권을 강력히 반대해 결국 쿠즈네초프의 복권을 막았다. 대표 저서 <국가의 해양력>에 소련 해군의 활약상을 쓴 편에서도 쿠즈네초프가 장관이었음에도 그의 이름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부부싸움]] 돋네~~ 1980년대 [[중국 해군]]의 총사령관으로 재직하며 중국 해군력의 발전을 이끌었던 [[류화칭]] 제독이 1950년대 소련 레닌그라드의 보로실로프 해군사관학교에서 유학했을 당시, 고르시코프의 지도를 받았다. 이 때문인지 류화칭 제독의 별명은 '중국의 고르시코프'다. 그 유명세는 미국에도 알려져 고르시코프는 군사소설가 [[톰 클랜시]]의 출세작 [[붉은 10월]]에 실존인물로 등장한다. 마르코 라미우스 [[대령|대좌]]가 쓴 잠수함 관련 [[논문]]을 주의깊게 바라보고 라미우스의 유능함을 인정해 그를 최신예 [[타이푼급]] [[전략원잠]] [[붉은 10월호|붉은 10월 함]]의 [[함장]]으로 출세시키는 사람으로, 라미우스가 붉은 10월호를 몰고 미국으로 망명하려 하자 결국 붉은 10월을 격침시키기로 결정한다. 러시아 해군은 고르시코프를 기리는 의미에서 [[키예프급]] [[항공모함]] 4번함의 함명을 [[바쿠]] 함에서 아드미랄 고르시코프 함으로 변경했으나, 해당 항공모함이 [[인도]]에 매각되어 [[인도 해군]]의 [[비크라마디티야함]]이 되자, 현재 건조중인 차기 [[호위함]]을 [[어드미럴 고르쉬코프급]]으로 명명하고 있다. == 수훈목록 == * [[소비에트연방영웅]] 2회 수훈 * 1등 우샤코프 훈장 * 1등 쿠투조프 훈장 * 레닌 상 수상 * 소련 국가 포상 * [[세바스토폴]], [[블라디보스톡]] 등 명예 시민 == 관련 문서 == * [[스베들로프급 순양함]] [[분류:소련군 원수]][[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분류:1910년 출생]][[분류:1988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