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명 ||선우완(鮮于琓) || || 생몰 ||[[1925년]] [[2월 2일]] ~ [[1968년]] [[7월 15일]] || || [[출생지]] ||[[평안북도]] [[태천군]] || || 사망지 ||[[중국]] [[충칭]] || ||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선우완은 1925년 2월 2일 평안북도 태천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1943년 8월 중국 안휘성에서 조선민족혁명당에 입당하고 조선의용대 제2지대 제ㅈ대에서 복무했다. 이후 조선의용대가 대한광복군에 흡수될 때 함께 했으며, 1944년 12월 대한광복군 제5전구 유격지역인 호북성 담현을 전방기지로 하여 무한삼진(武漢三鎭) 일대를 지하 공작 대상으로 삼아 활동하던 공작대의 대원으로 활동했다. 1945년 3월, 일본군이 담현, 노하구, 남양 등지를 침공해오자, 그는 김주(金俊), [[권준(독립운동가)|권준]] 등 30여 명의 대원과 함께 제5전구 휘하의 전구 부대인 제5사단과 합세하여 일본군에 대항하여 맹렬한 반격 작전을 수행했다. 이후 1945년 8월까지 충칭에서 한국광복군 제1지대 제1구대에 소속되어 활동했으며, [[8.15 해방]] 후 귀국하지 않고 충칭에 남아 1945년 10월부터 1946년 4월까지 조선민족혁명당 충칭 남안구 당부 조직부장 및 구당부 서기, 분당부 서기, 선전부장 등으로 활동했다. 1968년 7월 15일에 충칭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선우완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2년에 그의 유해를 이경재, 이응선과 함께 국내로 봉환하여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한국 광복군/군인]][[분류:태원 선우씨]][[분류:태천군 출신 인물]][[분류:1925년 출생]][[분류:1968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족장]][[분류: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