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중국의 성도)] ||||<#ac2935><:>{{{#yellow {{{+3 선양시 (랴오닝성)}}}}}}|| ||<-3><:> [include(틀:지도, 장소=랴오닝성 선양시)] || [[파일:B3071B39-471C-4A14-A8D4-45FA74A66BCB_cx0_cy13_cw0_w1023_r1_s.jpg]] [[파일:2017010121085540244.jpg]] [[선양고궁]] * [[간화자]]: 沈阳 * [[정체자]]: 瀋陽[* [[간화자]]에서는 瀋이 沈으로 병합됐는데, 아예 지명이 '''개정'''된 걸로 봐서 정체자로 적을 때도 沈陽으로 쓰는 경우가 없진 않은 것 같다. 선양시 공식 웹사이트의 정체자판 --대강 만든 것 같다-- 에서도 일단 沈陽으로 적고 있다.([[http://www.big5.shenyang.gov.cn/|#]]) 하지만 대륙 본토 밖에서는 대개 예전 표기인 瀋陽으로 쓴다. 선양의 첫 글자가 沈이 된 것은 어차피 《[[https://zh.wikisource.org/zh-hans/%E7%AE%80%E5%8C%96%E5%AD%97%E6%80%BB%E8%A1%A8|간화자총표]]》에 瀋을 폐지하여 沈으로 통합하게 했기 때문이지 별도로 '''지명 개정''' 절차를 밟은 건 아니기 때문에 사실 어떻게 보면 沈陽으로 쓰는 건 근거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참고로 《간화자총표》 부록에는 간단한 글자로 지명을 개정한 케이스들을 표로 나열하고 있으나 선양은 이 표에 안 들어 있다. 대신 표 아래에 한자 간화 과정에서 (자동으로) 변경된 지명들도 있다면서 그 사례 중 하나로 선양을 들고 있다(此外,还有以下两种更改地名用字的情况: (1)由于汉字简化,例如辽宁省瀋阳市改为沈阳市; (2)由于异体字整理,例如河南省濬县改为浚县。).] * [[한어병음]]: Shěnyáng * [[만주어]]: ᠮᡠᡴ᠋ᡩᡝᠨ(Mukden) * [[영어]]: Shenyang, Mukden, Simyang, Simijan * [[한국어]]: 선양, 심양, 묵던, 시미얀 [목차] == 개요 == [[중국]] [[랴오닝성]]의 [[성도]]. [[한국 한자음]]으로 읽으면 '심양'이다. 인구는 약 829만 명, 중공업과 군수공업이 발달하고 지리상 중국 내륙에서 동북과 한반도로 통하는 요충지로서 동북지구의 심장인 격이다. == 상세 == 이 지명은 시 주변을 흐르는 혼하(渾河)의 옛 이름 심수(瀋水)의 북쪽에 있다는 뜻인 '심수지양(瀋水之[[양#s-9|陽]])'에서 유래한 것이다. [[발해]]가 심주라는 이름을 쓴게 최초로 이 지역 지명에 '심'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이며, 이후 심주, 심양 등의 이름을 사용하였다. 원나라 시기 [[고려]] 국왕이 겸임으로 봉작되었던 [[심왕]]위의 '심'이 이 지역이다. 과거에는 [[고조선]]을 거쳐 [[고구려]] 영토였으며 개모성이 있었다. 고구려 멸망 이후로는 [[당나라]]가 이 지역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했고, 이후 [[발해]]가 이곳을 차지하여 심수(혼하)의 이름을 딴 심주(瀋州)를 설치하였다. 이후 [[명나라]] 대까지 심양으로 불리다가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후금]]이 점령하고 수도로 삼았다. 이 때 '묵던'(Mukden)[* 1940년대까지만 해도 영어로 이 도시를 나타낼 때는 Mukden이라는 표기가 일반적이었다.]이란 만주어로 도시 이름을 고쳤다. 묵던은 중국식으로는 성경(盛京)으로 불렸다. 이때 세운 궁전이 [[선양고궁]]인데, 영어명이 '묵던 팰리스'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병자호란]] 때 [[삼학사]]와 [[소현세자]]가 끌려간 곳도 바로 이 곳이었다. 이후 1644년 청군이 [[베이징시|북경]]에 입성한 후 수도로서의 위치를 상실한 성경은 1657년 다시 봉천부(奉天府)로 개명하며 사실상 만주족의 고향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처음에는 [[만주]] 일대를 신성시하는 청국 조정의 방침에 따라 한족의 출입이 엄금되었으나, 이후 다른 어떤 열강들보다도 더, 러시아와 일본이 만주를 침략하기 시작하면서 땅을 뺏기게 된 청나라가 [[틈관동|급하게 출입금지를 해제하여 사람들을 만주에 살도록 하자마자 한족을 비롯한 여러 민족의 사람들이 봉천으로 흘러들게 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 1900년 전후로 [[간도]]와 [[만주]]에 대해 제국주의적 집착을 보이기 시작한 [[대한제국]]이 봉천 일대에 군대를 보내 만주 지역의 청군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사건이 있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유약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북방 지역의 [[대한제국군]]은 도적 토벌, [[의화단]] 잔당 토벌, 국경 분쟁 등으로 실전에 잔뼈가 굵은 강군이었다. 하필 [[일본 제국|주적]]이 너무 강했던 케이스.] 이로 인해 [[청나라]]는 15,000명 가량의 군사를 만주에 증파하고, [[대한제국]]이 [[일본 제국]]에 의해 무력화될때까지 간도 지역의 실질적 통치권을 [[대한제국]]이 행사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20세기 초에는 [[장쭤린]]-[[장쉐량]]으로 이어지는 [[봉천군벌]]의 근거지가 되었다. 1929년 6월 3일, [[국민당의 2차 북벌]]이 행해지고 [[북양정부]]의 수도 베이징이 위협당하자 장쭤린은 봉천을 북양정부의 새로운 수도로 선포하여 며칠 동안 중국의 수도가 되었으나 장쭤린이 6월 4일 열차 폭파로 비명에 가고 [[동북역치]]가 일어나면서 무의미.... 이 도시의 이름인 심양(선양)-[[봉천]](펑톈)의 지명은 [[알자스-로렌]]처럼 정치적 떡밥과 맞물려 개명이 반복되었다. [[1929년]]에 [[장쭤린]]이 관동군 [[고모토 다이사쿠]]가 일으킨 [[황고둔 사건]]으로 폭살당하면서 뒤를 이은 장쉐량은 도시명을 봉천에서 심양으로 복구시켰으나, [[1931년]] [[일본 제국|일제]]가 [[만주사변]]으로 심양을 점령한 후 다시 봉천으로 만들었다. 지명 자체가 만주족과 일본인들에 의해 강제로 개명된 것이기 때문에 과거에는 한족 출신 심양시민들은 봉천이란 지명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선양과 그 주변도시는 평안도/경상도계 조선족이 모여 사는 곳이기도 하다. 서탑이란 곳은 한국인가게, 조선식당(평양관-모란관)등이 한글간판인 상가가 가득 들어서 있다. 이곳 조선족은 초등학교부터 고등중학교까지 중국조선말로 언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조선족이 많은 원인으로 많은 탈북민들도 선양에서 은신하며 살고 있다.[* 덕분에 선양은 탈북 과정이나 은신중인 탈북민들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에는 거의 100% 확률로 언급되는 곳이다.] 탈북민이 가게 모델로 활동할만큼 탈북민에 대해 타지구보다 우호하다. 딱히 탈북민이 아니더라도 북한 사람들이 많이 살기도 한다. 요즘 북한에 대한 제재가 심해지면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충칭]]에 이은 중국의 5번째 [[직할시]]로의 승격을 노리고 있는 중이다. 중국 [[동북 3성]]이 대부분 그렇듯이 여기도 만주다운 끝내주는 대륙성 기후를 자랑한다. 1월 평균기온이 -11.2℃로 매우 춥고 -30℃이하로 내려간적도 있다. 여름에도 40℃가까이 찍은적이 있는 등 시원한 동네는 결코 아니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대남 인터넷 선전 및 선동 매체인 [[우리민족끼리]]의 본사가 이 곳 선양에 있다. == 교통 == 지하철은 [[선양 지하철]]이 있고, 이 곳의 관문인 [[선양 타오셴 국제공항]]에는 [[고려항공]]이 취항하고 있다. 즉, [[베이징 수도 국제공항]],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과 더불어 [[평양순안국제공항|평양행]] 항공편이 있는 몇 안 되는 공항이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선양, version=102)] [[분류:중국의 성도]][[분류:랴오닝성]][[분류:중국의 옛 수도]][[분류:국가역사문화명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