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폐쇄된 교통시설)] [include(틀:다른 뜻1, other1=수도권 전철 5호선의 전철역, rd1=서대문역)] ||<tablewidth=360px><tablealign=right><-3> {{{+2 '''서대문역'''}}}[br]'''{{{#red (폐역)}}}''' || ||<-3> [include(틀:지도, 장소=서울특별시 중구 의주로1가 44-2, 너비=100%, 높이=225px)] || ||<-3><bgcolor=#c0c0c0,#3f3f3f> '''다국어 표기''' || || 일본어 ||<-2> 西大門[br](せいだいもん) || || 영어 ||<-2> Seidaimon || ||<-3><bgcolor=#c0c0c0,#3f3f3f> '''주소''' || ||<-3> [[경기도]] [[경성부]] 의주통1정목[br](現 [[서울특별시]] [[중구(서울)|중구]] 의주로1가 44-2) || ||<-3><bgcolor=#c0c0c0,#3f3f3f> '''역 운영기관''' || ||<bgcolor=#808080> [[경부선|{{{#ffffff 경부선}}}]] ||<-2><|2><bgcolor=#ffffff,#191919> [[궁내부]] 내장원 서북철도국[br]→ [[조선총독부]] 철도국 || ||<bgcolor=#808080> [[경인선|{{{#ffffff 경인선}}}]] || ||<-3><bgcolor=#c0c0c0,#3f3f3f> '''개업일''' || ||<-3> 1900년 7월 8일 || ||<-3><bgcolor=#c0c0c0,#3f3f3f> '''폐업일''' || ||<-3> 1919년 3월 31일 || ||<-3><bgcolor=#c0c0c0,#3f3f3f> '''열차거리표''' || ||<width=120px><bgcolor=#ffffff,#191919><|2> {{{#gray 기점}}} ||<width=120px> '''[[경부선|舊 경부선]]'''[br]--서대문--[br]{{{#red '''(폐역)'''}}} ||<width=120px><bgcolor=#ffffff,#191919> [[부산잔교역|{{{#!html<div style="font-size:13px"><font color="#000000">부산잔교 방면</font>}}}]][[서울역|남대문]][br] -.- ㎞ → || ||<width=120px> '''[[경인선|舊 경인선]]'''[br]--서대문--[br]{{{#red '''(폐역)'''}}} ||<width=120px><bgcolor=#ffffff,#191919> [[인천역|{{{#!html<div style="font-size:13px"><font color="#000000">인천 방면</font>}}}]][[서울역|남대문]][br] -.- ㎞ → || {{{+1 西大門驛 / Seidaimon Station }}} [목차] [clearfix] == 개요 == 1900년 경인선이 연장 개통할 때 개업하여 1919년까지 존재한 역. 초기에는 서울의 중앙역 역할을 했다. == 상세 == ||<table align=right>[[파일:seoul stn naming history.png|width=350]][br]역명의 변천사|| 1900년 7월 8일 [[경인선]]이 [[한강철교]]를 건너 서울 도심으로 연장 개통되었을 때 함께 개업한 역이었다. 개업 당시 역명은 '''경성정거장(京城停車場; Seoul station)'''이었고[* 출처: 1900년 7월 7일자 [[황성신문]] 3면] 경인선 시종착역이 되었다. 즉 원래는 서울역 포지션이었다. 이 역에서 신문로나 정동을 거쳐 곧바로 서울 도심으로 갈 수 있었다. 5년 뒤 [[경부선]]이 개통되어 경부선 시종착역도 함께 맡게 되었으나 몇 개월 후 [[서울역|남대문역]]사가 증축되면서, 서대문정거장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후 남대문역 위주로 철도 인프라가 구축되기 시작했고 경부선 열차도 남대문역에서 시발, 종착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이후 역명'서울역(Seoul station)'은 노선도에서 사라졌다가 1922년 남대문역이 가져가게 된다.] 일본인들이 남산 주변에 주로 거주했기 때문에 남대문역을 중앙역으로 삼게 되었다는 추측이 있다. 이후 [[일본 제국|일제]]는 도심에서 신의주 방면으로 가기 위해선 [[용산역]]까지 내려와야 하는 불편[* 즉, 당시 경의선 이었던 용산선을 이용했다.]을 없애고자 경부선과 경의선을 직결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경부선 종점에서 잇는 건 부적절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서울역|남대문역]]에서 잇는 현재 선형이 결정되었다. 공사가 막바지에 다다랐을 무렵인 [[1919년]] 3월 1일에 일어났던 [[3·1 운동]] 주요 집결지 중 하나가 되었다.[* 이를 기리기 위해 버스정류장 명칭을 "서대문경찰서・[[유관순]] 활동터"로 변경했다.] 이 여파로 직결 공사를 앞당겨 개통하였다. 그러자 필요성은 감소했고 결국 개통된 직후인 1919년 3월 31일 폐역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1930년|11년 후]] 바로 근처에 [[서소문역]]이 생긴다는 것. 그리고 [[1944년|14년 만에]] 다시 폐역(...). 그리고 일본 최초의 철도시발지라고 여겨지는 [[신바시역]]과 역명 뺏기구 폐역된건 비슷하다.(...) 다만 신바시역(시오도메역)은 원래 위치에 재현해 놓았다. == 주변 정보 == [[돈의문|서대문]] 주변에는 한국인이 살았고, 남대문 주변에는 일본인이 살았다고 한다. == 오늘날 == [[1995년]]에 [[수도권 전철 5호선]] [[서대문역]]이 이 역이 있었던 장소 근처에 건설되었다. 이곳이 "서대문 정거장 터"임을 알리는 비석이 [[이화외고]]와 바비엥2 오피스텔 사잇길(통일로4길)에 놓여 있다. 현재 역사 부지 일부는 해방 직후 [[이화학원]]에서 매입하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이화여자고등학교]] 부지에 포함되어 있다. [[분류:대한민국의 폐지된 철도역]][[분류:경부선(폐지된 구간)]][[분류:나무위키 철도 프로젝트]][[분류:1900년 개업한 철도역]][[분류:1919년 폐지된 철도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