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사건사고)] [목차] == 개요 ==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줄여서 삼례사건)은 1999년 2월 6일 새벽,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의 나라슈퍼에서 발생한 강도치사 사건으로, 3명의 [[강도]]가 당시 잠들어 있던 박 씨와 아내 최 씨, 장모 유 할머니를 위협하여 테이프로 묶은 뒤 금품을 훔치고 달아났는데, 이때 77세였던 할머니는 질식사에 이른다. 이 사건은 강도치사 죄목으로 처벌받았던 3인조가 2016년 10월 28일에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11월 4일 검찰이 항소를 최종포기하였다. 따라서 복역을 하였던 3인조는 개별적으로 형사보상금 청구는 물론 수사 당시 경찰과 검사 등 사건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소송을 진행하였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01&aid=0008802931&isYeonhapFlash=Y|#]] == 당시 사건의 전개 == 1999년 2월 6일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 위치한 나라슈퍼에 3인조 강도가 침입하였고, 이 과정에서 할머니가 질식사한 강도치사 사건이 발생하였다. 사건 발생 9일 만에 인근에 살고 있던 19~20살의 청년 3명이 잡혔다. 이들은 범행 사실을 자백한 것으로 밝혀져 재판에 회부되었다. [[대법원]]까지 재판에 갔으나 이들은 최종적으로 3~6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2차례(406회, 450회)에 걸쳐 이 사건을 다뤘다. [youtube(l9On8BAHduo)] [youtube(hv2eeYaHjW0)] [youtube(9KXhVT4bFLE)] == 반전, 진범이 유족 앞에 등장하다 == 그러나 이들은 "조사 과정에서 경찰의 폭행으로 인해 거짓 자백을 했다"고 10년 이상 주장해왔다. 사실 1999년 11월 부산지검은 진범이 따로 있다는 제보를 받고 용의자 3명을 검거한 후 자백을 받아낸 뒤 전주지검으로 넘겼으나, 전주지검은 이들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린 적이 있다. 부실수사 논란이 있었으나 곧 사그라들었고, 그동안 재수사 요청이 많았으나 전부 묵살당했다. 그렇게 이 사건은 앞서 잡힌 3인조가 진범인 채로 기억되어, 세상의 관심 속에서 잊히는가 싶었으나.. 2016년 1월 말, 자신이 이 사건의 진범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등장했다. 그는 1999년에 무혐의 처분을 받은 용의자 3명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유족 앞에서 사죄를 하고, 자신 대신 무고하게 살인 누명을 뒤집어 쓴 피해자 3인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협력하겠다고 나오면서 상황이 급격히 뒤집어졌다.[* 1999년 당시에는 자신의 죄를 [[검사(법조인)|검사]]가 직접 덮으려고 하니 좋았다고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죄책감이 더해지고 결정적으로 2015년 말에 인터넷에서 이 사건을 다룬 다음 [[스토리펀딩]] [[http://web.archive.org/web/20190105082617/https://storyfunding.daum.net/project/335|가짜 살인범 '3인조'의 슬픔 편]](이후 <지연된 정의>라는 제목으로 책으로 출판)을 읽고 나서 자백을 결심했다고 한다.] 나머지 진범 중에서 한 명은 2015년 말에 [[자살]], 그리고 남은 한 명은 자신의 범죄를 부인하고 있다. [youtube(9CkFIdJSNqw)] 해당 내용을 보도한 뉴스타파 2016년 2월 11일 보도영상 이러한 이유로 이 사건은 피해자 유족과 실제 강도치사 진범이 나서서 처벌받았던 사람에 대해 무죄를 호소하는 상황이 되었다. 2016년 6월 23일에 비슷한 내용을 KBS스페셜에서 다룬 바 있다. 이 사건의 재심을 담당한 [[박준영(법조인)|박준영 변호사]]가 직접 출연하였고 삼례 3인조의 처지와 수사기관이 증거로 제출한 자술서 등을 비교하였는데, 여기서도 조작이 의심되는 정황이 드러났다. 3인조 중 한 명은 당시에도 현재도 언어나 논리 구사능력이 낮아서 긴 문장을 쓸 수 없는 정도임이 의학적으로 드러났는데 당시의 자술서 등에는 매우 긴 장문으로 작성되었다는 점이 방송을 타며 의구심이 늘어났다. == 17년만의 재심, 그리고 무죄 == 이 사건을 담당한 [[박준영(법조인)|박준영 변호사]]가 이 사건을 변호하면서 2015년에 재심을 청구하였고, 재심이 받아들어져 열렸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사위]]인 박 씨가 1999년 2월 18일에 촬영한 당시 경찰의 현장검증 영상이 결정적인 근거가 되었다. 영상에는 경찰이 3인조를 폭행하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강요하는 장면이 있었다.[* 수사에 관여한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것이 확인되면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검찰이 항고를 포기하면서 늦어도 8월 중에 전주지방법원에서 재심이 진행되었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111800001&code=940100|링크]] 그리고 2016년 10월 28일 전주지방법원 제1형사부에서 오전 10시 30분에 열린 재심 판결에서 강도치사 혐의로 복역을 했던 3명은 '''무죄 선고'''를 받았다.[[http://media.daum.net/society/nation/jeolla/newsview?newsid=20161028114703631|기사]] 검찰이 항소기간인 1주일 이내에 항소를 할 경우 이 재판의 공방은 길어질 것으로 보였다. 다행히 2016년 11월 4일, 검찰이 이 사건에 대해 항소 포기를 밝혀 복역하였던 삼례 3인조는 '''17년 만에 최종 무죄 확정'''을 받았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8800777|기사]] 이제야 무죄가 확정된 것이다. 이 사건의 재심이 이루어지면서 1심 배석판사였던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에 대한 거센 비판과 박준영 [[변호사]]의 사과 요구가 있었다. 그러던 중 2017년 2월 14일에 자신이 배석판사였지만 오심을 인정하기 위해 피해자들을 [[대한민국 국회]]로 초청해 사과를 하고, 재발 방지와 피해 배상을 위한 법안을 약속하였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353272|기사]] 이전까지 강한 어조로 박범계 의원을 비판했던 박준영 변호사는 박범계 의원의 사과에 대한 소회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밝혔다. 2017년 6월 9일, [[전주지방법원|전주지법]] 제2형사부는 억울하게 11년간 감옥살이를 한 3인에게 총 11억여 원(임명선 청구인 4억 8,400여만원, 최대열 청구인 3억 800여만 원, 강인구 청구인 3억 5,400여만 원)의 형사보상 금액을 결정하였다. [[http://www.insight.co.kr/newsRead.php?ArtNo=108866|기사(모바일)]] --미국 같았으면 수천억은 나올텐데...-- 그러나 2018년 대검찰청이 이 사건의 진상을 조사했는데, 검사의 책임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조사단 조사를 받은 진범마저 "물어볼 건 안 물어보고 엉뚱한 대답만 원한다"며 황당해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056&aid=0010614936|#]] 그리고 이 사건 당시 검사였던 변호사는 오히려 [[적반하장|맞고소를 시전했다.]] 2020년 7월 [[유퀴즈온더블럭]] 62화에서 박준영 변호사가 출연해 이 사건을 대해 말했다. [[https://youtu.be/VFhey4y5sOg|영상]] 2020년 10월 창사특집 [[그것이 알고싶다]] 1236회에 본 사건의 진범 중 한 명이 직접 출연해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살인사건/한국)] == 관련 문서 == * [[사건 및 사고 관련 정보]] * [[누명]] * [[엔자이]] * [[박범계]] [[분류:누명]][[분류:1999년/사건사고]][[분류:대한민국의 미제 사건]][[분류:고문 사건]][[분류:완주군의 사건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