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도시에, rd1=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include(틀:스페인의 세계유산)] ||<table align=center><:> [[파일:external/www.bestourism.com/Santiago-de-Compostela-Cathedral-in-Spain_Splendid-architecture_2354.jpg|width=100%]] || ||<:> 성당의 원경 || ||<-3><table align=right><bgcolor=#000> '''[[유네스코|{{{#fff 유네스코}}}]] [[세계유산|{{{#fff 세계유산}}}]]''' || ||<-3><bgcolor=#fff> [[파일:attachment/unesco-worldheritage.png]] || ||<|4> 이름 || 한국어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옛 시가지 || || 영어 || Santiago de Compostela (Old Town) || || 스페인어 || Ciudad vieja de Santiago de Compostela || || 프랑스어 || Vieille ville de Saint-Jacques-de-Compostelle || |||| 국가·위치 || [[스페인]] [[갈리시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 ||<-3> [include(틀:지도,장소=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너비=100%, 높이=224px)] || |||| 등재유형 || [[세계유산#s-3.1|문화유산]] || |||| 등재연도 || [[1985년]] || |||| 등재기준 || (i)[*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 (ii)[*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 (vi)[*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 || |||| 지정번호 || [[http://whc.unesco.org/en/list/347|347]] || ||<width=100px><:> [[스페인어]] ||<bgcolor=#ffffff>Catedral de Santiago de Compostela || ||<:> [[갈리시아어]] ||<bgcolor=#ffffff>Catedral de Santiago de Compostela || ||<:> [[영어]] ||<bgcolor=#ffffff>Cathedral of Santiago de Compostela || ||<:> [[프랑스어]] ||<bgcolor=#ffffff>Cathédrale de Saint-Jacques-de-Compostelle || ||<:> [[독일어]] ||<bgcolor=#ffffff>Kathedrale von Santiago de Compostela || ||<:> [[포르투갈어]] ||<bgcolor=#ffffff>Catedral de Santiago de Compostela || ||<:> [[이탈리아어]] ||<bgcolor=#ffffff>Cattedrale di Santiago di Compostela || [목차] [clearfix] == 개요 == [[스페인]] 북서부 지역 [[갈리시아]]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위치한 [[가톨릭]] [[성당]]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주교좌성당]]이며,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양식이 조화를 이룬 건축물. [[12사도]] 중 하나인 대(大) 야고보의 유해가 매장된 곳이자 [[엘 카미노 데 산티아고|성 야고보의 길(El Camino de Santiago)]]로 불리는 [[성지순례]]의 종착지로, [[로마]] 및 [[예루살렘]]과 더불어 수많은 순례자들의 발길이 이어진 중세 가톨릭의 3대 [[성지]]이다. == 역사 == 본래 이 갈리시아 지방은 고대 로마 시대의 이리아 플라비아(Iria Flavia)[* 현재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시에서 남쪽으로 25km 떨어진 [[https://es.m.wikipedia.org/wiki/Padrón_(La_Coruña)|파드론(Padrón)]]이라는 도시이다.] 라는 [[히스파니아]] 식민 도시가 자리잡은 곳이었다. [[그리스도교]]의 전승에 의하면, 사도 [[대 야고보]]는 서기 44년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12사도]] 가운데서 제일 먼저 [[순교]]하기 전, 스승 [[예수]]의 땅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유지를 받들어 당시 로마 제국[* 고대 지중해 일대의 세계관은 로마 제국이 곧 세계라는 인식이 있었다.]의 최서단인 히스파니아의 이리아 플라비아까지 가서 선교하고 돌아왔다.[* 가톨릭 백과사전에 따르면 이 전승 자체가 9세기는 되어야 믿을 만한 기록에서 등장하기 시작하며, 초기 교회 전승이나 로마서의 스페인에 대한 언급, 이베리아까지의 거리로 볼 때 역사적 근거는 희박하거나 없는 수준이라고 학계에서 평가된다.] 사도가 [[예루살렘]]에서 순교한 뒤, 그를 따르던 초대 교회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그의 유해를 보존하려고 했다. 13세기 작품인 야코부스의 [[황금전설]]의 묘사에 따르면, [[대 야고보]]의 두 제자가 해안에 기적적으로 마련된 배에 사도의 유해를 싣고 그가 마지막으로 선교한 이리아 플라비아 지방에 도착해 그곳에 안장하게 되었다. 이후 세월이 흘러 4세기에 이르러 그리스도교는 종교의 자유를 얻고, 이 이리아 플라비아 지방에도 그리스도교 [[교구]]가 설정되었다. 남아있는 기록에 의하면 6세기부터, 학자들의 추정에 의하면 이미 최소한 4세기부터 이리아 플라비아 교구는 ‘성 야고보의 땅(Locus Sancti Iacobi)’으로 불리고 있었다. 이 사실 때문에 지금도 많은 가톨릭 신자들과 순례자들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보존된 사도의 유해가 진짜 유해임을 확신하고 있으며, 이미 19세기 [[레오 13세]] 교황에 의해 이를 확언하는 교서가 반포된 바 있다. 그러나 이리아 플라비아 지역 교회가 누렸던 이 영예는 로마 제국, 서고트 왕국의 연이은 멸망에 이어 찾아온 [[알안달루스|이슬람 세력의 이베리아 지배]]로 잊혀지게 된다. 시간이 흘러 9세기 에스파냐에 다시 [[아스투리아스 왕국|가톨릭 국가]]가 일어나 [[갈리시아]]를 수복한 뒤, 고대의 야고보 사도에 대한 신심이 되살아나게 되었다. 서기 814년 은수자 성 펠라지오가 한밤중에 별빛이 들판 위에서 [[도깨비불|기묘하게 춤추는 현상]]을 보고서는, 그곳으로 가보니 이슬람 지배 하에서 잊혀졌던 [[대 야고보]]의 무덤이 있었던 곳이다. 콤포스텔라라는 이름은 이 이야기에서 유래한 Campus stellae(별들의 들판)에서 나온 것이라는 전설이 있다.[* 정설은 아니며 공동묘지라는 뜻의 라틴어 compositum이 로망스어로 변화하면서 생긴 단어로 보는 시각이 많다. 야고보 사도의 제자들이 박해를 피해 사도의 유해를 공동묘지 한가운데에 숨겼을 것과 위의 도깨비불 현상을 고려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소식을 들은 아스투리아스의 알폰소 2세는 유해를 봉안하기 위한 성당 건축에 착수해 829년 첫 성당 건물이 세워졌다. 이것이 이리아 플라비아(파드론) 땅에 세워진 첫 기념 성당이다. 그러나 얼마 안있어 [[노르드]] 해적들의 약탈로 도시가 파괴되면서 파드론 북쪽에 위치한 콤포스텔라 성채로 유해와 성당을 옮길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따라서 레온의 알폰소 3세의 명령에 따라 879년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 세워지니 이것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의 전신이다. [[레콘키스타]] 과정에서 이슬람 세력의 공격에 휘말린 적도 있었다. 서기 997년 [[후우마이야 왕조]]의 재상 [[알 하지브 알 만수르]]는 갈리시아를 침공하여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함락시켰다. 그리고 성당을 파괴하고 대문과 종을 뜯어가 [[코르도바]]의 대모스크를 장식하는데 썼다. 그러나 기존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어느 정도는 배려해 성 야고보와 유해와 성유물만큼은 건드리지 않았다.[* 사실 이슬람교의 입장에서도 남의 묻힌 무덤을 함부로 훼손하는것은 크나큰 죄이다. 무슬림들이 화장을 엄금하고 매장만을 고집하는 것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1236년 카스티야가 코르도바에 입성한 후 카스티야 국왕 페르난도 3세는 원래 대성당의 대문과 종이었던 [[역관광|대모스크의 대문과 종을 다시 뜯어가 톨레도 대성당을 장식하는데 썼다.]]] 1075년 성당을 재건하면서 이전보다 더욱 크게 지어 1211년 마침내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성당이 완성되었다. 이 대성당은 이후 시대가 지나면서 유행한 다양한 양식이 반영된 장식이 덧붙여졌는데, 지금의 바로크 양식의 외관과 인테리어는 18세기에 확립되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 건축 ==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던 대성당의 정면(facade)는 훗날 [[바로크]] 양식으로 개축되었다. 오브라도이로 광장에 면한 서쪽 정면은 페르난도 데 카사스 이 노보아(Fernando Casas y Novoa, 1670~1750.12.25)가 1740년에 완성했으며, 북쪽 정면은 루카스 페로 카베이로(Lucas Ferro Caaveiro, 1669~1770), 클레멘테 페르난데스 사렐라(Clemente Fernández Sarela, 1716~1765), 벤투라 로드리게스(Ventura Rodríguez, 1717.7.14.~1785.9.26.)가 완성했다. 프라테리아스 광장에 면한 남쪽 정면은 거장 에스테반(Esteban)이 1103년에, '영광의 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서쪽 정면의 출입문은 거장 마테오(Mateo)가 1188년에 만들었다. == 기타 == * 보타푸메이로(Botafumeiro)라는 이름의 [[크고 아름다운]] [[향로]]를 성당 내부에 매달아 사제 8명이 줄을 당겨서 분향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원래 이 향로의 용도는 순례를 마친 순례자들이 성당에 들어올 때 악취와 땀 냄새가 성당 안으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세계에서 제일 거대한 향로로 알려진 보타푸메이로는 [[갈리시아어]]로 '연기를 내뿜는 것'이라는 뜻이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서는 11세기부터 향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15세기에 [[프랑스]]의 [[루이 11세]]가 새 향로를 마련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기부해 1554년 은제 향로가 설치되었다. 그러나 [[1809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프랑스 군대가 이 향로를 약탈하면서 자취를 감추었다가 약 40여 년에 지난 후 [[1851년]] 금은세공사 호세 로사다가 [[청동]]과 [[놋쇠]]로 만들고 [[은]]으로 도금한 보타푸메이로를 제작해 성당에 설치했다. 평소에는 성당 부속 [[도서관]]에 보관하다가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에는 꺼내와 쇠줄에 매달아서 분향한다. 80kg짜리 향로가 길다란 쇠줄에 매달린 채 익랑 천장에서 맞은편 익랑의 천장에 닿을 듯 말 듯 거대한 원호를 그리며 흔들리는 모습이 장관. --멋있기보다 향로에 맞을까 봐 무섭다.--([[https://youtu.be/IqVytUn4e7s|2010년 11월 6일 베네딕토 16세가 방문했을 때의 모습]] --향로가 올라갈 때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몬시뇰이 깜놀--) [[2014년]] [[7월 25일]]에는 [[펠리페 6세]] 국왕과 레티시아 왕비도 이 미사에 참례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91&aid=0004398628|기사]]) 쇠줄이 걸린 도르래는 1604년에 설치한 것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다만 향로나 도르래와 달리 쇠줄은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하는데, 자칫 줄이 끊어져 향로가 떨어지는 사고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상 가장 유명했던 사고는 1499년 [[영국]] [[헨리 7세]]의 장남 [[아서 튜더|아서 왕자]][* [[헨리 8세]]의 형.]와 결혼하기로 결정한 [[아라곤의 캐서린]]이 이 곳을 방문했을 때 일어난 것으로, 분향을 위해 향로를 흔들자 '''[[홈런|향로가 성당 창문을 뚫고 그대로 날아가버렸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죽거나 다친 사람은 없었다. 2019년 1월 28일부터 2021년 야고보 성년을 앞두고 보수공사를 진행함에 따라 약 1년 반 가량 이 보타푸메이로를 볼 수 없었으나, 2020년 코로나19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복원 작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순례자를 위한 미사 후 분향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 2018년 1월 16일부터 [[인천교구]] 상동본당의 주임신부였던 이찬우 요셉 신부가 은퇴 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서 상주하며 순례길에 나선 한국인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봉사를 시작했으나,([[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705586&path=201712|은퇴 후 산티아고 봉사 자청한 이찬우 신부]])[* 기사 링크의 카페는 2018년 2월 23일 폐쇄했다.] 현지의 비협조로 인해 2018년 2월 4일 도로 귀국하였다. * 2019년 [[스페인 하숙]]에 출연했던 차승원, 유해진, 배정남도 까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길의 마지막 종착지인 이곳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가서 성당을 둘러봤다. [[분류:가톨릭 성당]][[분류:스페인의 세계유산]][[분류:가톨릭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교구]][[분류:주교좌성당]][[분류:가톨릭 성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