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대한민국의 국보 91~120호)] ||<-2><tablealign=right><tablewidth=360><tablebgcolor=#315288><tablebordercolor=#315288><bgcolor=#fff> [[파일:정부상징.svg|width=28]] '''[[대한민국의 국보|{{{#f39100 대한민국 국보 제105호}}}]]''' || ||<-2> {{{#fff {{{+1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br]{{{-1 山淸 泛鶴里 三層石塔}}}}}} || ||<-2>{{{#!wiki style="margin: -10px"; margin-top: -5px; margin-bottom: 16px" [include(틀:지도, 장소=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 (본성동 진주성) 국립진주박물관, 너비=100%, 높이=100%)]}}}|| ||<width=80> '''{{{#fff 소재지}}}''' ||<bgcolor=#fff>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진주)|남강로]] 626 ([[본성동]], [[진주성]]) [[국립진주박물관]] 야외전시장 || || '''{{{#fff 분류}}}''' ||<bgcolor=#fff>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탑 || || '''{{{#fff 수량/면적}}}''' ||<bgcolor=#fff> 1기 || || '''{{{#fff 지정연도}}}''' ||<bgcolor=#fff> 1962년 12월 20일 || || '''{{{#fff 제작시기}}}''' ||<bgcolor=#fff> [[통일신라시대]] 9세기 || ||[[파일:국보105호산청범학리삼층석탑.jpg|width=545]]|| ||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경복궁 야외에 전시되어 있었을 때 찍힌 사진으로 보인다. || [목차] == 개요 == 山淸 泛鶴里 三層石塔.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은,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범학리에 위치한 범허사지에 있던,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높이 약 5m의 [[석탑]]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탑일 것으로 추정된다. 범허사에 대해 알려진 정보는 현재 전하는 것이 없으며, 본 석탑은 언제 폐허가 됐는지도 모르는 범허사의 절터에 무너져 뒹굴고 있던 것을 [[일제시대]]에 한 일본인이 구입하여 자신 소유의 공장으로 가져와 세워놨었다고 한다. 그러다 일제가 패망한 1945년 이후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가, 1947년에 [[경복궁]] 경내에 위치한 [[조선총독부 청사]] 앞뜰로 옮겨왔고, 총독부 청사 건물을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정부종합청사]](중앙청), [[국립중앙박물관]]이 거쳐가는 동안 계속 총독부 건물 부지의 야외 뜰에 전시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2005년 [[용산구]]로 새로 이전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탑을 다시 옮겼으며, 복원 및 수리 공사 이후 2018년 [[국립진주박물관]]으로 또 다시 옮겨졌다.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은 1962년에 [[대한민국의 국보|국보]] 제105호로 지정됐으며, 2019년 현재는 국립진주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되어 있다. == 내용 == 통일신라 하대로 들어서면서 석탑에 [[부조#s-2]]와 같은 다양한 조각을 새기는 양식이 유행했는데,[* 이러한 양식의 신라 석탑으로는 [[경주 장항리 서 오층석탑]],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실상사#s-6.1.1|남원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 등이 유명하다.]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도 몸돌[* 이를 탑신(塔身)이라고도 한다.]과 기단부에 여러 부조와 장식들이 새겨져 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일 것으로 보이며, 장식이 화려하다는 점에서 '장식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출처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08733&cid=40942&categoryId=33380|두산백과 -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탑의 높이는 4.8m이고, 탑의 구조는 2층으로 된 기단 위에 3층의 몸돌과 지붕돌[* 이를 옥개석(屋蓋石)이라고도 한다.]로 구성되어 있어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이 드러난다. 기단부와 1층 탑신의 높이에 비해 2층과 3층 탑신의 높이가 약간은 비례가 안 맞아 보이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균형감이 잘 잡혀있다. 각 층의 지붕돌은 네 모서리를 살짝 들어올려서 맵시를 주고 있는데 경쾌한 인상을 준다고 평가받는다. 본 석탑은 일부가 손상되어 있긴 하지만, 첫 발견 시에 이미 무너져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체적으로 형태가 잘 남아 있는 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단부 하층 부분과 그 아래의 지대석 부분은 탑이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과정에서 [[시멘트]]로 보충 및 재건한 것인데다, 이에 대한 별다른 기록을 남기지 않아 그 원형은 지금에 와서는 알 수 없다.[* 출처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72968&cid=46656&categoryId=46656|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또한 본 석탑도 현존하는 대다수의 다른 탑들처럼 3층 지붕의 머리장식이 사라지고 없다. 원형이 유실된 탑의 아래부분과는 달리,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의 기단부와 1층 탑신에 있는 조각들은 다행히도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파일:국보105호산청범학리삼층석탑기단부팔부신중.jpg]]|| ||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기단부의 팔부신중 || 상층 기단의 4면에는 [[팔부신중]][* 불법을 지키는 8명의 신으로 [[천인|천]], [[용]], [[야차]], [[아수라]], [[건달바]], [[긴나라]], [[가루라]], [[마후라가]]로 이루어져 있다.]이 각 면마다 두 좌씩 묘사되어 있으며, 각 면에 새겨진 두 좌의 팔부신중 사이를 기둥형으로 깎아서 각 칸이 구분된다. 팔부신중들은 모두 [[연꽃]] 대좌 위에 올라가 앉아 있는 모습이다. 1층 탑신의 4면에는 역시 연꽃 대좌 위에 앉아 있는 [[보살]]상이 새겨져 있다. 탑에 새겨진 모든 상은 양각 방식으로 조각하였다.[* 출처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72968&cid=46656&categoryId=46656|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현전하는 신라시대의 (조각이 새겨져 있는)석탑들과 마찬가지로 이 탑에 조각된 부조들도 세월의 흐름에 다소 손상이 되어 있긴 하지만 정교했던 본래의 모습은 여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은 일찍이 그 가치를 인정 받아 1962년 12월 20일 [[대한민국의 국보|국보]] 제105호로 지정되었다. == 바깥고리 == * [[https://ko.wikipedia.org/wiki/산청_범학리_삼층석탑|한국어 위키백과 :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72968&cid=46656&categoryId=46656|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214941&cid=51293&categoryId=51293|e뮤지엄 :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057198&cid=42840&categoryId=42848|답사여행의 길잡이 15 - 서울 :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08733&cid=40942&categoryId=33380|두산백과 :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 국보 제105호 ==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1050000,38&pageNo=5_1_1_0|문화재청 홈페이지 :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山淸 泛鶴里 三層石塔)]] >범허사라고 전하는 경상남도 산청의 옛 절터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41년경 대구의 일본인 골동상이 구입하여 공장에 세워 놓았으나, 1947년 경복궁으로 이전되었으며 현재는 국립진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일반적인 모습이다. 바닥돌과 기단의 아래부분은 옮겨 세울 당시 시멘트로 보강한 탓에 원래의 구조는 알 수 없다. 기단의 네 모서리와 각 면의 가운데에는 기둥을 본떠 새겼는데, 아래층의 가운데기둥은 2개씩, 위층은 1개씩을 두었다. 특히 위층 기단에는 가운데기둥으로 나누어진 각 면에 8부중상(八部衆像)을 도드라지게 새겨 놓았다. 탑신부는 1층 몸돌에 보살상의 모습을 1구씩 조각해 우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4단씩이며 각 경사면은 평평하고 얇은 모습이다. 또한 추녀 끝의 치켜올려진 정도가 날카로워 경쾌한 인상을 보여준다. > >이 탑은 기단과 탑신의 1층 몸돌에 8부신중 및 보살상이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어 ‘장식탑’이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장식적인 조각표현으로 인해 장중하고 소박한 맛을 잃기는 하였으나, 전체적으로 통일신라 후기 석탑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는 우수한 작품이다. [[분류:대한민국의 국보]][[분류:석조 불탑]][[분류:신라의 공예]][[분류:국립진주박물관 소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