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생년 미상]][[분류:몰년 미상]][[분류:신라의 왕비]][[분류:신라의 공주]] ||||<:><tablebordercolor=#4A2D5B><#4A2D5B> '''{{{#white 호}}}''' ||||<(><colbgcolor=white,#2d2f34> 사소부인(四炤夫人) || ||||<:><#4A2D5B> '''{{{#white 시호}}}''' ||||<(> 정의태후(貞懿太后) || ||||<:><#4A2D5B> '''{{{#white 본관}}}''' ||||<(> 경주 김씨(慶州 金氏) || ||||<:><#4A2D5B> '''{{{#white 성씨}}}''' ||||<(> 김(金) || ||||<:><#4A2D5B> '''{{{#white 이름}}}''' ||||<(> 사소(四炤)? || ||||<:><#4A2D5B> '''{{{#white 부왕}}}''' ||||<(> [[성덕왕]] || ||||<:><#4A2D5B> '''{{{#white 모후}}}''' ||||<(> 성정왕후[* 생모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정황상 [[성덕왕]]의 첫째 왕비였던 성정왕후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성덕왕]]의 둘째 왕비 소덕왕후가 입궁한 것이 720년이고, 사소부인의 남편인 김효방이 아들 [[김양상]]을 두고 사망한 것이 734년이다. 소덕왕후가 입궁하자마자 사소부인을 낳았고 [[김양상]]이 유복자에 가깝게 태어났다고 치면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다소 빠듯한 감이 있다. 게다가 성정왕후는 거의 입궁 7년차나 되어서야 맏아들인 [[김중경]]을 낳았는지라.] || ||||<:><#4A2D5B> '''{{{#white 동복형제}}}''' ||||<(> [[김중경]] || ||||<:><#4A2D5B> '''{{{#white 이복형제}}}''' ||||<(> [[효성왕]], [[경덕왕]] || ||||<:><#4A2D5B> '''{{{#white 배우자}}}''' ||||<(> 김효방 || ||||<:><#4A2D5B> '''{{{#white 아들}}}''' ||||<(> [[선덕왕]] || ||||<:><#4A2D5B> '''{{{#white 생몰연도}}}''' ||||<(> 704년 이후/716년 이전[* 전술했듯이 보통 [[성덕왕]]의 첫째 왕비였던 성정왕후 소생으로 추정하므로, 성정왕후가 왕비였을 당시 출생했을 것이다.] ~ 786년 이후[* [[선덕왕]]이 즉위한 후 '''추존'''되었으므로 그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착각'''할 수 있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선덕왕]] 사후 [[김주원]]을 왕위에 올리라는 교지를 내렸다고 적혀있다. 신라에서는 왕태후의 경우 살아있어도 시호를 부여할 수 있었다.] || 신라의 공주이자 추존 왕후. 제 33대 [[성덕왕]]의 딸이자 제 37대 [[선덕왕]]의 어머니. [[효성왕]]과 [[경덕왕]]의 이복 누나이며 [[혜공왕]]의 고모이기도 하다. [[이찬]] 김효방과 혼인해 아들 [[선덕왕]]을 낳았으나 얼마 못 가 김효방은 사망한다. [[선덕왕]]이 즉위한 이후 정의태후로 추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