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 align=center><bgcolor=#009B75><table bordercolor=#d01c1f><table width=100%> [[파일:불가리아 왕국 국장.png|width=28]] '''{{{#fff 불가리아 왕국 관련 틀}}}''' || ||<bgcolor=#fff,#0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include(틀:불가리아의 역사)] [include(틀:제1차 세계 대전 참전국)] [include(틀:추축국)] }}} || ---- ||<-3><tablealign=right><tablewidth=450><tablebordercolor=#d01c1f><tablebgcolor=white><bgcolor=#009b75> {{{#fff {{{+1 '''불가리아 차르국''' [br] '''Царство България''' [br] '''Tsarstvo Bǎlgariya'''[br]'''Kingdom of Bulgaria'''[br]'''Tsardom of Bulgaria'''}}}}}} || ||<-2><width=50%> [[파일:불가리아 국기.svg|width=100%]] ||<width=50%> [[파일:불가리아 왕국 국장.png|width=50%]] || ||<-2><bgcolor=#D80500> {{{#fff '''국기'''}}} ||<bgcolor=#D80500> '''{{{#fff 국장}}}''' || ||<-6> '''{{{#009b75 Съединението прави силата}}}[br]{{{#D80500 단결은 힘}}}''' || ||<bgcolor=#009b75> {{{#fff '''국가'''}}} ||<-2>Шуми Марица[br](마리차는 전진한다),,(국가),, [br] Химн на Негово Величество Царя[br](차르 폐하의 노래),,(왕실가),, || ||<-3><bgcolor=white> [[파일:1011px-Kingdom_of_Bulgaria_(1914).svg.png|width=300]] || ||<-3><bgcolor=#009b75> {{{#fff '''1914년 당시 불가리아 왕국'''}}} || ||<-3><bgcolor=#d01c1f> {{{#fff '''지도'''}}} || ||<-3><bgcolor=#009b75> {{{#fff '''1908년 ~ 1946년'''}}} || ||<-3><bgcolor=#d01c1f> {{{#fff '''지리'''}}} || ||<width=33%><bgcolor=#009b75> {{{#fff '''위치'''}}} ||<-2>[[발칸 반도]] 동남부 || ||<bgcolor=#009b75> {{{#fff '''면적'''}}} ||<-2>9,475㎢(1910년)[br]14,442㎢(1912년) || ||<bgcolor=#009b75> {{{#fff '''인구'''}}} ||<-2>423,000명(1914년) || ||<bgcolor=#009b75> {{{#fff '''수도'''}}} ||<-2>[[소피아(도시)|소피아]] || ||<-3><bgcolor=#d01c1f> {{{#fff '''인문환경'''}}} || ||<bgcolor=#009b75> {{{#fff '''언어'''}}} ||<-2>[[불가리아어]] || ||<bgcolor=#009b75> {{{#fff '''종교'''}}} ||<-2>[[불가리아 정교회]] || ||<bgcolor=#009b75> {{{#fff '''민족'''}}} ||<-2>[[불가리아인]] || ||<-3><bgcolor=#d01c1f> {{{#fff '''정치'''}}} || ||<bgcolor=#009b75> {{{#fff '''정치체제'''}}} ||<-2>[[군주제]] || ||<bgcolor=#009b75> {{{#fff '''국가원수'''}}} ||<-2>[[차르]] || ||<bgcolor=#009b75> {{{#fff '''주요 국왕'''}}} ||<-2>페르디난트 1세(1908~1918)[br]보리스 3세(1918~1943) || ||<-3><bgcolor=#d01c1f> {{{#fff '''경제'''}}} || ||<bgcolor=#009b75> {{{#fff '''통화'''}}} ||<-2>불가리아 레프 || ||<bgcolor=#009b75> {{{#fff '''성립 이전'''}}} ||<-2>[[불가리아/역사#s-5.1|불가리아 공국]] || ||<bgcolor=#009b75> {{{#fff '''멸망 이후'''}}} ||<-2>[[불가리아 인민 공화국]] || [목차] [clearfix] == 개요 == 발칸 반도 남부에 있던 왕국으로 수도는 소피아. '''[[불가리아 차르국]]'''이라고도 한다.[* [[왕국]]이었지만 불가리아 왕의 칭호는 '[[차르]](цар)'였다. 러시아 제국의 그 차르 맞다! 그래서 "불가리아 제3차르국"으로 보기도 한다. ~~오오 [[외왕내제]]~~ 하지만 이 때쯤 되면 "차르"는 황제가 아니라 [[왕작]]으로 이미 격하가 완료된 상태였다. 러시아 황제가 [[폴란드 입헌왕국]]의 국왕을 겸할 때 폴란드 국왕 작위를 "폴란드 차르"라고 했다. 하지만 폴란드와 세르비아에서 차르는 여전히 황제를 뜻하는 단어다.] 짧은 시간동안 가장 스펙타클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걸로 유명하다. == 역사 == === 페르디난트 1세 치세 === 전신인 [[불가리아 공국]]이 1908년 불가리아 왕국으로 승격되면서 통치자이던 [[페르디난트 1세(불가리아)|페르디난트]] 공이 차르로 승격하였다. 팽창주의적이고 투쟁적인 국가였기에 [[오스만 제국]]에서는 불가리아 [[민족주의]]자들은 [[그리스]] 민족주의자들만큼 골칫거리였다. 그리고 언어적으로 유대가 있는 [[마케도니아]]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두 차례의 [[발칸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왕국 선포 10년 만에 3번이나 전쟁이 이어져(1차 발칸전쟁 - 2차 발칸전쟁 - 1차대전) 발칸 반도의 [[프로이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딱 4개국에 불과한 [[동맹국]]의 일원 중 하나였다. 기본적인 국력의 명백한 차이 때문에 후대에 별로 주목은 못 받았지만 그래도 2차 발칸 전쟁 때의 설움을 갚아주려고 독이 단단히 올랐었는지 참전하자마자 발칸 전선에서 [[세르비아 왕국|세르비아]], [[그리스 왕국|그리스]], [[마케도니아]], [[루마니아 왕국|루마니아]], 심지어 원정 온 [[영국군]], [[프랑스군]] 할거 없이 미친듯이 쳐바르고 다녔다. 지지부진하던 [[세르비아]]-[[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전선이 1915년 불가리아가 뛰어들자마자 --후방기습-- 갑자기 전세가 확 뒤집혔을 정도. 그러나 이런 분투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정ㅋ벅ㅋ|패ㅋ전ㅋ]]. 그 바람에 [[협상국]]과 뇌이 조약을 맺고 불가리아 왕국의 영토는 더 쪼그라들었으며, 1918년, 페르디난트 1세는 왕세자 보리스([[보리스 3세]])에게 양위하고 고향 독일로 은거해야 했다. === 보리스 3세 치세 === 1923년 쿠데타가 일어났고, [[좌익]] 정권은 무너지고 알렉산다르 스탐볼리스키 [[총리]]는 암살당하였다. 보리스 3세는 장교와 경찰의 도움을 얻어서 전제 독재 정치를 피게 된다. 1927년에는 [[불가리아군|불가리아 왕국군]] 장교들이 조직한 [[극우]] 정치 조직인 즈베노(Звено)가 결성되었으며, 1934년에는 즈베노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키몬 게오르기에프가 총리가 되었고 즈베노가 정권을 장악하였다. 그 이후 즈베노는 모든 정당을 해산시켰고, 불가리아는 [[군사독재]] 정권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보리스 3세는 1935년 1월 22일 즈베노가 [[왕정]]을 폐지하려고 한다는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려 자신과 친밀한 [[불가리아군]] 장교들을 이용해 즈베노를 몰아낸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자 [[나치 독일]]의 강압에 의해 [[추축국]]에 들어가서 독일의 [[그리스 침공]]과 [[유고슬라비아 침공]]을 돕기도 했다. 물론 나치의 위협에 의해 추축국에 들어가긴 했지만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땅이던 서부 트라키아를 점령하고 제2차 발칸전쟁 당시 루마니아에게 빼앗긴 남부 도브루자를 루마니아로부터 되돌려받는 등 어느 정도 이득을 챙기기도 했다.[* 현재 불가리아 영토인 남부 도브루자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들은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에 포기한다.] 그러나 독일의 간청~~반 협박 반~~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유대인과 집시족들을 독일에게 넘기지 않는 등 나치의 인종 말살 정책인 홀로코스트에 동참하지 않았고, 같은 슬라브계 국가인 [[소련]]을 치는 [[독소전쟁]]에는 참전을 거부했다.[* 다만 불가리아 역시 추축국에 가담한 이상 완전무결한 나라는 '''절대''' 아니었고 자국 영토로 합병한 마케도니아와 트라키아를 불가리아화시킨다는 명분으로 이 지역에 살고 있던 그리스인이나 세르비아인들에게 그리스어와 세르비아어의 사용을 금지한 다음 이들을 추방하고 저항하는 사람들은 강제수용소에 가두거나 학살하는 등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소련은 처음에 독일에 대패하자 불가리아를 중재로(당시까지 불가리아와 소련은 우호적) 독일과 강화를 하려고 했다. 이 때 주모스크바 불가리아 대사가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 우랄산맥까지 밀려난다고 해도 결국은 당신들이 (전쟁에서)이길 것"라고 말한 바 있다고. 그런데 소련군은 전세가 역전되어 루마니아의 항복과 전향을 받아내자 가만히 있던 불가리아에 선전포고하고 침공했다.[* 물론 양국의 전쟁상태는 사흘 정도 지속되다 끝났고 그 사흘간에도 제대로 된 교전은 없었다.] 그보다 조금 전인 [[1943년]]에 국왕 보리스 3세는 [[아돌프 히틀러]]와 회담한 뒤 급서했고(독살설이 유력하다), 6살 난 시메온 왕세자([[시메온 2세]])가 왕위를 이었다. === 시메온 2세 치세 === 국왕의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숙부 키릴 왕자가 섭정 자격으로 실권을 행사했다. 그리고 불가리아에서는 사흘만에 항복, 전향하고 [[불가리아 조국전선]]이 정권을 잡아 [[소련]]과 강화를 맺고 과거 동맹국이던 독일에 선전포고했다. 이후 불가리아군은 [[유고슬라비아]], [[헝가리 왕국|헝가리]], [[오스트리아]] 축선에서 소련군을 보조했다. 불가리아는 이번에도 패전국이 되어 [[소련군]]에게 점령당하였다. 전쟁 이후에는 [[소련]]의 [[위성국]]으로 전락했고, ~~그러니까 쉽게 말해 줄 두번이나 잘못 서서 [[망했어요]]~~ [[공산당 투표]]를 통해 [[1946년]] 9월 9일, 왕정 폐지가 결정되면서 불가리아 왕국은 종말을 맞았다. 그리하여 소련에 의해 점령된 타 유럽 국가들처럼 [[공산주의]] 국가인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이 수립되었고, 시메온 2세는[* 참고로 시메온 2세는 불가리아 민주화 이후 불가리아로 돌아와 [[총리]]가 된 인물이다!!(재임 2001~2005)] 아직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모후와 함께 [[망명]]이 허락되었지만, 숙부 키릴 왕자는 추축국 편에 선 결정에 대한 책임을 고스란히 지고 결국 처형당하고 만다. 참고로 '''은거한 페르디난트 1세는 살아있었다'''.[* 페르디난트 1세는 망명지인 독일 코부르크에서 1948년 9월 10일에 사망했다.] == 역대 차르 == [[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삭스코부르고츠키 왕조]] * [[페르디난트 1세(불가리아)|페르디난트 1세]] ([[1908년]]~[[1918년]]) * [[보리스 3세]] ([[1918년]]~[[1943년]]) * [[시메온 2세]] ([[1943년]]~[[1946년]]) == 여담 == [[세르비아 왕국]]과는 철천지원수 관계였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 페르디난트 1세는 대놓고 '''"내 삶의 목적은 세르비아의 파멸"'''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불가리아가 세르비아의 영토를 점령한 뒤에는 세르비아인들을 학살하고, 마케도니아인들을 불가리아인들로 동화시키려고까지 했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불가리아/역사, version=67, paragraph=4)] [[분류:유럽의 왕국]][[분류:차르국]][[분류:20세기 멸망]][[분류:불가리아의 역사]][[분류:20세기 멸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