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분청사기 철화당초문 다완.jpg]] [목차] == 개요 == 粉靑沙器鐵畵唐草文碗. [[조선]] [[세조(조선)|세조]]~[[성종(조선)|성종]] 시기에 [[공주]] 학봉리 [[계룡산]] 가마에서 만들어진 한국의 철화 [[분청사기]] 다완. 일종의 [[보성 덤벙이]]류 차그릇으로, 현재 한국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전통 다완 문화재이다. [[전라남도]] 무안의 조선차역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내용 == [[대한민국]] 사적 제333호인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63729&cid=40942&categoryId=33542|공주 학봉리 요지]]에서 만들어진 600여년 전 찻그릇으로, 계룡산 일대는 조선 세조의 명으로 처음 창설되어 성종 초기까지,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 초반까지 존립하였던 관립 분청사기 가마터였다. 성종 때부터 한국의 분청사기가 몰락하였기 때문에 실질적인 제작은 대부분 세조 시기에 이루어졌다. 분청사기철화당초문다완은 [[충청남도]] [[계룡산]] 학봉리 일대에서 제작된 것이다. 계룡산 학봉리 일대의 분청사기가마터는 우리나라 ‘철화분청사기’의 대표적인 생산지역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도자기에 한국 특유의 철화안료로 그려진 호방하고 거침없는 필치와 추상적인 동식물의 문양에 매료된 [[일본인]]들이 집중적으로 파헤친 곳이다. 이렇게 일본인들이 대다수의 유물을 쓸어간 후 1992년에 대한민국에서 다시 정밀 발굴할 때 땅을 파헤치던 중 이 다완이 발굴되었다. 조선 세조 재위시기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한국의 다완은 [[임진왜란]]으로 완전히 파멸되기 전까지 [[전량]] 일본으로 수출되었고, 일본 귀족들이 사용하는 최고급 찻그릇으로 애용되었다. 때문에 일본에는 남아있는 유물이 많지만 정작 한국에 남아있는 다완은 거의 없다. 이 다완은 한국에 현존하는 몇 안 되는 전통 다기그릇으로 한국 전통 차문화에 대한 연구 및 일본이 자랑하는 수많은 다완들의 뿌리를 찾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 바깥고리 ==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340228&cid=58141&categoryId=58141|박물관에선 볼 수 없는 문화재 : 분청사기철화 당초무늬 다완]] *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41686|교수신문 : 묵묵하고 은은한 향내 배어있는 500년 전 무명도공(無名陶工)의 찻사발]] [[분류:조선의 도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