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독일제국군/군인]] [[분류:독일 국방군 원수]] [[분류:제1차 세계 대전/군인]] [[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분류:전쟁범죄자/나치 독일]][[분류:1895년 출생]] [[분류:1945년 사망]][[분류:독일의 남작]][[분류:뇌종양으로 죽은 인물]] [include(틀:독일 국방군/원수)] ||||<tablealign=right><#7B68EE> {{{+2 '''볼프람 프라이헤어 폰 리히트호펜'''}}}[* [[외래어 표기법]]을 원칙대로 적용하면 '폰리히트호펜'이 되지만 '리히트호펜'으로 널리 알려져 있어서 관용적 예외가 인정된다.][br]{{{+2 '''Wolfram Freiherr von Richthofen''' }}} || |||| [[파일:external/gmic.co.uk/post-195-1196501104.jpg|width=300]] || ||<:>출생 ||<(> [[1895년]] [[10월 10일]], [[독일 제국]] [[실레지아]] || ||<:>사망 ||<(> [[1945년]] [[7월 12일]], [[연합군 점령하 오스트리아]] 바트이슐 || ||<:>복무 ||<(> [[독일 제국군]](1913년 ~ 1918년) [br] [[바이마르 공화국#s-7|독일 국가방위군]](1918년 ~ 1933년) [br] [[독일 국방군]](1933년 ~ 1944년)|| ||<:>최종 계급 ||<(> [[루프트바페|공군]] [[원수(계급)|원수]](Generalfeldmarschall) || ||<:>주요 참전 ||<(>[[제1차 세계대전]] [br] [[스페인 내전]] [br] [[폴란드 침공]] [br] [[영국 본토 항공전]] [br] [[유고슬라비아 침공]] [br] [[크레타 섬 전투]] [br] [[독소전쟁]] [br] [[바르바로사 작전]] [br] [[세바스토폴 공방전]] [br] [[스탈린그라드 전투]]|| ||<:>주요 서훈 ||<(>백엽 기사 [[철십자 훈장]]|| ||[[파일:d568863f6b1dd4b504e7ee8e9791929b.jpg]]|| [목차] [clearfix] == 개요 == >'''[[소이탄]]에 의해 불타고 있는 도시를 보고 있노니 너무 즐겁고 멋지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국방군]] [[루프트바페|공군]]의 장군으로 최종 계급은 [[원수(계급)|원수]].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에이스 파일럿이자 '''붉은 남작'''으로 유명한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의 사촌동생으로 유명하다. == 생애 == [[1913년]] 18세의 나이로 [[사관후보생]]으로 올라우 제 4 유사르연대에 배속된 그는 칼세르 [[육군사관학교]]에 진학 후 [[1914년]] 졸업하여 [[소위]]로 [[임관]]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때는 육군 [[대대장]]으로 종군하였는데, 그러다가 사촌형 붉은 남작을 따라 [[1917년]]에 할레 항공학교로 전속한다.그곳에서 그는 뒤늦게나마 항공 기술을 습득한 후, [[1918년]] [[3월]]에 종형제이던 붉은 남작의 11전투기 중대에 배치되어 [[파일럿]]로 활약하며 1차 대전 당시에는 8기를 격추한다. 그러다가 그는 [[독일 제국]]의 패전을 맞이하게 되고,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1920년]], [[중위]]로 전역한다. 전역 후에는 하노버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되었고 졸업한 후 [[독일 국방군]]에 [[재입대]]한 그는 소위로 11기병연대에 배치되었는데, [[아돌프 히틀러]]가 극비리에 진행하던 [[루프트바페]] 창설 계획에 적극적으로 참가한다. [[1929년]]에 [[대위]]로 승진한 리히트호펜은 [[4월]]부터 [[로마]]에 있던 독일 대사관 주재무관으로 파견되었는데, 그는 그곳에서 이탈리아 공군을 연구하라는 히틀러의 특명을 받고 이탈리아의 공군 장성들과 친분을 쌓으며 나날이 이탈리아의 [[전투기]], [[폭격기]], 공군 전술 등을 익히게 된다. [[1931년]], 독일로 귀국하여 [[1933년]] [[10월]]에 꿈에도 그리던 루프트바페의 재건이 성공하여 육군 11기병연대에서 다시 공군 항공성 개발국으로 전속한다. 참고로 1차 대전 때는 전투기 조종사로 근무했으나, 2차 대전 때는 폭격기 조종사로 전향하게 된다. [[1936년]] [[중령]]이 된 그는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콘도르 군단의 일원으로 참전하는데, 이 때 그의 '''악마성이 눈 뜨기 시작한다.''' 그는 [[1937년]] [[4월]]에 [[스페인 제2공화국|스페인 공화파]]의 한 도시에 [[Ju 87]]과 [[He 111]]로 무차별 폭격을 가해 일반 시민 수백 명을 한 순간에 사망시킨 엄청난 만행을 저지르는데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하고 악명높은 '''[[게르니카]] 공습'''. 게르니카의 참상에 대해서는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에도 아주 잘 나타나 있으며 루프트바페가 민간인에게 저지른 고의적인 [[전쟁 범죄]] 중 하나였다. 이 공로로 그는 [[11월]]에 [[소장(계급)|소장]]으로 승진되었고 스페인 내전이 종료되자 다시 독일로 귀환한다. 그러다 [[1939년]] [[9월]],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자 특별항공군 사령관으로 [[폴란드 침공]]에 종군했다. 여기서도 그의 잔혹한 악마성은 여전했는데, 전쟁이 발발하지마자 폴란드의 주요 도시 중 하나였던 뷔에른 시에 공습을 명령하여, 민간인들을 그대로 대량 살상해 버린다. 훗날 [[1940년]] [[7월]]에 [[영국 본토 항공전]]이 시작되자 제 8항공군단장이 되어 영국 공습에 총력을 기울이는데, 여기서도 그는 [[Ju 87]]과 [[Ju 88]], [[He 111]] 등으로 영국의 도시들을 쑥대밭으로 만들기를 좋아했고, 민간인들을 향해 거침없이 '''소이탄'''을 투하해댔다. 하지만 그의 '''사악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41년]] [[4월]]에 [[크레타 섬 전투|크레타 섬 강습 작전]]의 지휘관으로도 참가했는데, 그 작전에서도 역시 크레타 섬을 거의 재기불능 상태 일보 직전까지 만들어 놓았고, 같은 해 [[6월]],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나치당]]이 명명한 '''열등한 짐승'''인 [[소련]]을 향해서는 더욱 거침없이 무차별적인 민간인 폭격을 가행했다. 그러다가 그 [[전범|공로]]를 인정받아 [[1942년]] [[2월]]에 [[상급대장]]으로 승진, 16일에는 무려 [[원수(계급)|원수]] 계급이 주어졌다. 이는 유례 없는 초고속 승진이었다. 그가 공군원수가 됐을 때의 나이가 47세로 이는 당시 루프트바페 내에서는 물론, 독일 국방군 전체 내에서 '''최연소''' 원수였다. 그러나 그도 점점 짙어지는 패전의 기색 앞에서는 별 수 없었다. [[1943년]] 말에 이르어 [[연합군]]이 물량공세로 루프트바페를 완전히 압도하자 리히트호펜은 더 이상 활약할 수 있는 전장을 잃고 말았고, [[1944년]] [[10월 27일]]에는 평소에 지병으로 앓고 있던 [[뇌종양]]의 급작스러운 발병으로 [[의병 제대]]한다. [[1945년]] [[5월 8일]] 종전이 되자 그는 [[미군]]의 포로가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뇌종양으로 사망한다. == 평가 == 그를 독일판 [[커티스 르메이]], [[아서 해리스]]라고 하기에는 심하게 무리가 있다. 그는 자신이 무차별적으로 폭격했던 도시와 그 민간인들에 대해 평생 동안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고 후회도 전혀 없었다고 한다. 여기까지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의 명언(?) 중 하나인 "소이탄에 의해 불타는 도시와 적들을 보면 멋지고 기분이 좋다"라고 했다는 점에서 정상인의 범주를 벗어났다. 르메이나 해리스도 폭격과정에 민간인 피해가 발생해도 알게 뭐야 식의 태도를 취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폭격 작전의 합리성과 효율성을 중요시했지, 그걸 가지고 기분이 좋다고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다. 즉 저 둘에 빗대는건 두 사람을 모욕하는거나 다름없다. 또한 그는 소이탄을 광적으로 사랑하던 사람이었다. 스페인 공화파를 시작으로 폴란드, 영국, 그리스, 그리고 소련에까지... 그가 지시한 모든 폭격 임무에는 늘 소이탄이 뒤따랐다. [[소이탄]]이 얼마나 비인도적인 무기임을 알고 있다면 경악하고 놀라고도 남을 일.[* 사실 소이탄 투하를 비롯한 폭격 행위를 옹호하고 적극적으로 실시한 아서 해리스나 커터스 르메이도 포함되는 사항이기는 하지만, '''이 사람은 폭격 행위를 필요악이 아닌 즐거움으로 생각했다는데서부터''' 이미 정상인이 아닌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