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신성 로마 황제)] {{{+4 Die '''Welfen''' (Haus Welf)}}} {{{+2 House of Welf}}} [목차] == 개요 == 프랑크 계통의 옛 가문. 독일의 유서 깊은 유력 제후 가문. 벨프 가문은 구 벨프 가문(Elder House of Welf)과 그 유산을 이은 벨프-에스테 가문(House of Welf-Este)으로 나뉘는데, 구 벨프 가문은 아를 왕국[* 루돌프 1세가 888년에 상 부르군트의 왕이 되었고 931년에 루돌프 2세가 하 부르군트 대부분을 위시한 부르군트 전역의 왕이 되었다. 이를 부르군트 제2왕국이라 하며, 수도가 아를에 있었기에 아를 왕국이라고도 불렀다. 부르군트인의 나라였던 부르군트 제1왕국과는 달리 프랑크인의 나라였다.]을 차지한 부르군트 계와 슈바벤 계로 나뉘어 이어지다 각각 1032년과 1055년에 단절되었다. 단절된 구 벨프 가문 슈바벤 계의 유산을 외조카인 에스테 가문의 장남이 이어받아[* 에스테 가문은 이복동생이 이어받는다.] 벨프-에스테 가문이 탄생했으며, 이후 바이에른 공작(1070-1139, 1156-1180), 작센 공작(1138-1139, 1142-1180), 독일 국왕(1198-1218),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 등을 배출하고 18세기 영국 [[하노버 왕조]]로 이어진다. 벨프 가문이라 하면 보통 후자 쪽을 가리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상세 == 벨프 가문이 전성기를 맞이한 것은 12세기 [[하인리히 사자공]] 시절이었다. 사자공은 상속과 정복, 정치력을 두루 발휘하며 [[바이에른]] 공국과 [[작센]] 공국, 그리고 [[슈바벤]]의 일부 지역을 획득하여 [[신성 로마 제국]]에서 최대의 영토를 지배하는 제후가 되었다. 그의 영지는 황제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의 영지보다 훨씬 넓었다. 사자공은 바르바로사 황제와 지속적인 다툼을 벌였지만 결국 황제에게 패하고 만다. 1180년 바르바로사 황제는 사자공에게 법익(法益) 피탈자(법의 보호를 박탈당한 사람, [[Outlaw|outlaw]]) 처벌을 내려 그의 모든 작위를 박탈하고 영지를 몰수하여 자신의 측근들에게 재분배하면서 벨프 가문에게 거의 멸문 수준의 징벌을 내린다. 이로서 벨프 가문은 사자공의 모친이 보유한 [[브라운슈바이크]] 일대의 사유지만을 보유하며, 역사 속에서 그대로 사라질 뻔 한다. 그러나 제국 내에서는 벨프 가문에 우호적인 세력과 [[호엔슈타우펜 가문]]에 적대적인 세력이 많았다. 때문에 벨프 가문은 비교적 빠르게 재기하게 된다. 바르바로사 황제가 익사로 사망한 후 그의 아들인 [[하인리히 6세]]는 강력한 정적인 사자공에게 다소 유화적인 조치를 취하여 1194년 사자공에게 내려진 추방령을 해제하고 [[브라운슈바이크]] 일대의 작은 공국을 다스리게 했다. 사자공은 고향으로 돌아와 건축과 예술을 지원하며 조용히 여생을 보내다가 1년 후인 1195년 사망하게 된다. 그리고 2년 후인 1197년, 바르바로사 황제의 유업을 이어 위대한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신성 로마 제국]]을 건설하려 했던 젊고 야심많은 황제 [[하인리히 6세]]가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갑작스레 사망하게 된다. 하인리히 6세의 아들 [[프리드리히 2세]]는 3살에 불과했다. 이에 [[호엔슈타우펜 가문]]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프리드리히의 나이가 너무 어리다고 주장하며 벨프 가문의 오토 4세를 [[독일왕]](황제)으로 지지하게 된다. 반면 호엔슈타우펜 세력들은 어린 프리드리히 대신 하인리히 6세의 동생 [[필립|필리프]] 폰 슈바벤을 [[독일왕]](황제)으로 지지했다. 이에 양 세력이 각각의 후보를 독일왕으로 선출하면서 두 명의 대립독일왕이 탄생하게 된다.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필리프가 결국 단독 독일왕이 되었지만 곧 암살당하고 오토 4세가 단독 독일왕이 되었다. 이어 오토 4세가 교황으로부터 정식 대관을 받으면서 벨프 가문 최초의 [[신성 로마 제국]] 황제가 된다. 그러나 오토 4세가 황제로 즉위한 후에도 교황 및 [[호엔슈타우펜 가문]] 및 다른 제후 세력들과의 권력 다툼이 이어졌고 결국 [[프랑스]]와의 전쟁 패배를 기점으로 절정의 위세를 과시하던 교황 [[인노첸시오 3세]]의 압력을 받아 1215년 퇴위하고 만다. 오토 4세의 즉위로 벨프 가문이 다시 전성기를 맞는가 했으나 동맹 관계였던 영국의 [[존 왕]]을 지원하려다 프랑스의 [[필리프 2세]]에게 부빈에서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대패하였고 이를 기회로 신성 로마 내부의 패권을 되찾기로 한 [[호엔슈타우펜 가문]]과 그 지지 세력들에게 다시 밀려 퇴위당하고 말았다. 오토 4세는 비록 황제 자리에까지 올랐으나 그의 아버지 사자공이 거의 모든 영지와 작위를 빼앗겼기 때문에 실제로 그와 벨프 가문이 가진 영지와 작위는 매우 보잘 것 없었다. 그나마 오토를 아꼈던 외삼촌인 [[리처드 1세]]가 그의 딱한 처지를 어여삐 여겨 오토에게 푸아투 백작 작위를 물려주어 체면치레를 하고 있었으나(이는 황제가 되기 이전의 일이다.), 오토가 [[독일왕]]으로 선출되고 이어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푸아투 백작위는 다시 리처드 1세에게 되돌아갔다. 1215년 오토 4세가 퇴위한 후 벨프 가문은 다시 작센 일대의 사유지를 보유한 조그마한 가문이 되었지만, 여전히 벨프 가문의 명성과 영향력은 신성 로마 제국에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결국 1235년 마인츠에서 열린 제국 의회는 벨프 가문에게 내려진 가혹한 조치를 다소 완화하여 벨프 가문이 보유하고 있던 사유지에다가 바르바로사 황제가 몰수한 구 작센 공국 영토 중 일부를 다시 환수하여 '''[[하노버 왕국|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국]]'''을 설치하고 벨프 가문이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위를 잇도록 했다. 비록 사자공 시절에 광대했던 작센 공국 영토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작은 영토였지만 이미 작센 공국은 바르바로사 황제에 의해 여러 제후들에게 쪼개어져 재분배되었고, 때문에 구 작센 공국 영토에는 여러 소규모 제후국들이 난립하게 되었다. 이런 구 작센 공국 영토에서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국의 규모는 상당한 편이었고, 벨프 가문은 곧 이 지역에서 주도적인 영향력을 어느 정도 회복하게 되었다.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국은 이후 상속을 거치며 분할과 재결합을 반복하였고, [[30년 전쟁]]이 진행되던 1636년, 수도를 하노버로 옮기면서 '''하노버 공국'''이 되었다. 1692년에는 '''하노버 [[선제후]]국'''으로 승격되었다. 1714년 하노버 선제후인 게오르크 1세가 영국왕 [[조지 1세]]로 즉위하면서 벨프 가문은 영국 왕위를 겸하게 되었고, '''영국 [[하노버 왕조]]'''가 시작되었다. 나폴레옹 전쟁을 거친 후 1815년 [[빈 회의]]에서 벨프 가문 직계가 다스리는 지역은 [[하노버 왕국]]으로, 방계가 다스리는 지역은 [[브라운슈바이크]] 공국으로 독립되었다. == 관련 인물 == * [[하인리히 사자공]] * [[오토 4세]] == 함께 보기 == * [[하노버 왕국]] * [[하노버 왕조]] [[분류:벨프 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