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백화수피제 천마도 말다래1.jpg]]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32&aid=0002921426|사진 출처 : 경향신문 - (21) 신라의 ‘천마도’-하나밖에 못 봤다고요? 웬걸, 여섯 점이나 나왔다던데요 (도재기의 천년향기)]] [목차] == 개요 == 1973년 [[경주시|경주]]관광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발굴조사한 [[천마총]]에서 국보 제207호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 [[죽제 금동천마문 말다래]]와 함께 발견된 [[신라]]시대 천마도. 2014년에 [[죽제 금동천마문 말다래]]와 함께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내용 == || [youtube(Sj2Nf2jawCA)] || || [youtube(5HUVQXUtNUs)] || 1973년 천마총에서 발견된 유물로, 기존에 잘 알려진 자작나무로 만들어진 국보 제207호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와는 또 다른 천마도이다. 원래 천마총 발굴 당시 출토된 천마도는 총 3쌍, 6점이었다. 그러나 발견 당시 바로 전 국민에게 공개한 국보 제207호 [[천마도]] 1쌍 2점과는 달리 [[죽제 금동천마문 말다래]] 1쌍 2점과 백화수피제 천마도 말다래 1쌍 2점은 발견 당시 유물의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오랜 시간 비밀리에 국립경주박물관 수장고에 특별 보관되다가 2014년 3월, 발굴 40여 년 만에 처음 학계에 보존처리 공개한 것이다.[[https://www.youtube.com/watch?v=oNIBH89sDds|[대구MBC뉴스] 금동 천마문 말다래 최초 공개(2014.3.3)]] [[파일:백화수피제 천마도 말다래2.jpg]] 2014년 새로 공개된 백화수피제 천마도 말다래의 실측도.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40303800137|사진 출처 : 서울신문 - 경주 천마총 출토 말다래서 천마도 추가 확인]], [[https://www.nocutnews.co.kr/news/1195630|노컷뉴스 : 경주 천마총 출토 '천마도' 최초 공개]] 특히 이 백화수피제 천마도 말다래는 발굴 당시 국보 제207호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의 바로 위에 포개어져 있었고, 세월의 흐름에 따른 훼손을 국보 제207호 대신 다 받아내고 있었다. 때문에 국보 제207호 천마도 1쌍 2점은 거의 멀쩡한 상태로 보존되었지만 이 백화수피제 천마도 말다래는 상당히 바스라져 있었고 40여년 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보존처리를 받고 나서야 공개될 수 있었다. 현재 이 문서의 제목은 '백화수피제 천마도 말다래'지만 사실 엄밀하게 따지면 이 유물의 공식 명칭은 학계에서 아직 정하지 않았고, 이 유물 하나만을 '백화수피제 천마도 말다래'라고 딱 잡아 지칭하기에도 애매하다. '백화수피제'라는 명칭은 자작나무 껍질로 만들었다는 뜻인데 이 유물은 국보 제207호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랑 똑같은 재질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국보 제207호 또한 동일한 방식으로 명칭을 부여하자면 그냥 '백화수피제 천마도 말다래'가 되기 때문. 실제로 2014년에 이 유물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각 언론에서는 "1973년 당시 천마총에서는 백화수피제 천마도 2쌍(그 중 1쌍은 현재 국보)과 죽제 금동천마도 1쌍이 출토되었다"라고 쓰며 현재의 국보 제207호도 똑같이 '백화수피제 천마도 말다래'로 표기했다. 다만 나무위키에서는 두 작품의 구분을 위해 국보 제207호는 문화재청 홈페이지의 공식 명칭인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로, 아직 정식 명칭이 정해지지 않은 본 유물은 정식 학명이 정해지기 전까지 임시적으로 재질에 따라 '백화수피제 천마도 말다래'로 구분해놓았다. 굳이 국보 제207호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와 다른 점을 구분하자면 본 유물은 추가로 옻칠이 되어있기 때문에 '칠기(漆器·옻칠한 나무)제 천마도'라고 구분해서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분류:신라의 공예]] [[분류: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