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백자 청채동채양각장생문 병1.png]] [[파일:백자 청채동채양각장생문 병2.jpg|width=450]] [[파일:백자 청채동채양각장생문 병3.jpg|width=400]] [[백자 청채양각 매죽조문 병]]과 함께 전시되어 있는 모습 [목차] == 개요 == [[조선]] 후기, 1800년대에 [[경기도]] 광주의 왕실관요에서 만들어진 [[한국]]의 양각 [[조선백자]]. 현재 [[호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내용 == [[파일:백자 청채동채양각장생문 병4.jpg]] 1800년대에 한국에서 만들어진 양각 조선백자 항아리로, 몸통 전체를 양각으로 장식하고 그 위에 채색을 한 [[도자기]]이다. 양각은 문양이 도드라지게 보이도록 하는 것으로 당시 왕이었던 [[정조(조선)|정조]]가 기존의 [[청화백자]]가 너무 사치스럽다며 이를 금지하면서 나타난 장식기법이다. 푸른색을 내는 청채, 붉은 색을 내는 동채 등을 무늬와 바탕에 채색하여 화려함을 더하였다. 조선시대 1700년대 중반부터 상공업의 발달과 농업 생산력의 증가는 [[양반]]계층의 증가와 중인층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신흥부유층의 등장으로 종래의 신분질서의 변화가 일어났으며, 사회·경제적 성장은 다양한 분야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당시 [[청계천]]에 위치한 [[광통교|광통교(廣通橋)]] 일대에는 미술품을 사고파는 유통이 이루어지는 미술시장이 활성화되어 누구나 글씨나 그림을 구입할 수 있게 됐는데, 일상생활에서 애용됐던 공예품에는 길상(吉祥)을 상징하는 장생(長生), 수복자(壽福字), 쌍학천도(雙鶴天桃) 등의 문양이 주로 장식됐다. 이 작품 역시 국내에 미술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지던 1700년대 후반~1800년대에 경기도 광주의 왕실관요에서 만들어져 유통된 한국의 양산형 자기 중 하나이다. 당시 한국 도자기술의 발전과 경제적 유통질서 발달에 대해 연구해볼 수 있다. == 바깥고리 == * [[https://blog.naver.com/paleblossom_/221205770986|호림미술관 : 조선말 미술 특별전 : 19세기 미술, 일상이 되다]]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11&aid=0003145589|서울경제 : 암울한 19세기 조선? 화려한 문화 꽃 폈다!]] * [[http://www.economytalk.kr/news/articleView.html?idxno=153413#07AG|이코노미 뉴스 :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를 느끼는 19세기 미술품 한자리]] [[분류:조선의 도자기]][[분류:호림박물관 소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