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890년 출생]][[분류:1945년 사망]][[분류:제1차 세계 대전/군인]][[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분류:독일제국군/군인]][[분류:독일 국방군/인물]][[분류:슈츠슈타펠/인물]][[분류:자살한 나치 관련자]] [include(틀:슈츠슈타펠/장성급 지휘관)] ||||<tablealign=right><tablebordercolor=#666> {{{#!wiki style="margin: -4px -9px" [[파일:발터 크뤼거.jpg|width=100%]]}}}|||| ||<#666> {{{#FFF 이름}}} ||<(>'''Walter Krüger'''[br] 발터 크뤼거|| ||<#666> {{{#FFF 출생}}} ||<(>[[1890년]] [[2월 27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 ||<#666> {{{#FFF 사망}}} ||<(>[[1945년]] [[5월 22일]], [[리투아니아]] || ||<#666> {{{#FFF 복무}}} ||<(>[[독일제국]]군 [br] [[ 독일 국방군]] [br] [[슈츠슈타펠]] (1935년 ~ 1945년) || ||<#666> {{{#FFF 최종계급}}} ||<(>[[무장친위대]] [[슈츠슈타펠]] [[대장]] || ||<#666> {{{#FFF 주요 참전}}} ||<(>[[제1차 세계 대전]] [br] [[제2차 세계 대전]] [br] [[레닌그라드 전투]] [br] [[쿠르스크 전투]] || ||<#666> {{{#FFF 주요 서훈}}} ||<(> [[철십자 훈장|기사십자 철십자장]] || [목차] [clearfix] == 개요 == || [[파일:발터 크뤼거2.jpg|width=100%]] || || '''발터 크뤼거''' (Walter Krüger) || [[나치 독일]]의 [[슈츠슈타펠]] [[지휘관]]으로 [[제2차 세계 대전]] 때 활약하였다. 동생 [[프리드리히 크뤼거]]는 학살로 악명높은 [[전범]]이지만 발터 크뤼거는 전선에서만 활동하여 [[전쟁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 초기 행적 == [[프로이센 왕국]]의 육군대령이던 알프레드 크뤼거의 아들로 당시 프로이센 왕국령이던 [[스트라스부르]](현재는 프랑스령)에서 태어난 발터 크뤼거는 프로이센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후 소위로 임관하여 [[제1차 세계 대전]] 때 제100경보병연대에 배속되었다. 종군 중 두 번의 부상으로 1급 철십자 훈장을 받은 크뤼거는 전후에도 군에 남아 발트 지역에서 의용군에 참가하기도 했다. == [[슈츠슈타펠]] 입대 == [[1933년]]에 [[아돌프 히틀러]]가 정권을 잡았을 때도 [[독일 국방군]]에 있었던 크뤼거는 [[1935년]] [[4월]]에 친위대 중령으로서 무장친위대의 전신인 친위대 특무부대 게르마니아 연대에 이적하였다. 동생인 [[프리드리히 크뤼거]]도 돌격대에서 친위대로 이적했다. 얼마 후 크뤼거는 바트 퇼츠의 친위대 사관학교 교관이 되었는데 [[1939년]] [[1월]]에 친위대 대령이 되어 [[1940년]] [[1월]]부터 [[10월]]까지 경찰부대 참모장교가 되었다. == [[제2차 세계 대전]] == || [[파일: 발터 크뤼거3.jpg|width=100%]] || || △왼쪽이 [[발터 크뤼거]], 오른쪽은 [[에리히 회프너]] [[독일 국방군]] 장군이다. || [[1941년]] [[4월]]에 친위대 [[소장]]으로 진급한 크뤼거는 [[1941년]] [[8월]]부터 [[12월]]까지 제4SS 경찰장갑척탄병 사단장으로 일했는데 이 사단은 [[레닌그라드 전투]]에서 [[레닌그라드]]의 포위를 맡았다. [[1942년]] [[1월]]에 친위대 [[중장]]으로 진급한 후 [[1943년]] [[3월]]부터 [[10월]]까지 제2SS장갑사단 다스 라이히의 사단장을 맡아 [[쿠르스크 전투]]에 참가했다. 이후 제6SS소속 무장군단(라트비아인 의용병 군단)을 이끌다가 [[1944년]] [[6월]]에 친위대 [[대장]]이 되었다. == 패전과 최후 == [[1945년]]에 군단은 [[라트비아]]의 쿠를란트에서 항복하여 동프로이센으로 퇴각하는 것을 [[소련군]]에게 발각되어 쫓긴 크뤼거는 [[1945년]] [[5월 22일]]에 [[자결]]했다. 동생이던 [[프리드리히 크뤼거]]도 앞서 [[5월 10일]]에 자결했다. [[프리드리히 크뤼거]]는 [[폴란드]]의 SS 경찰고급지도자로서 [[유대인]] [[학살]]에도 관여했지만 형인 [[발터 크뤼거]]는 기본적으로 전선의 무장친위대에서만 활동한 전형적인 군인이었기에 유대인 학살과 관련이 없어 동생보다 [[평판]]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