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제14대 국회의원]][[분류:제15대 국회의원]][[분류:민주당(1991년) 국회의원]][[분류:새정치국민회의 국회의원]][[분류: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분류:민주국민당(2000년) 국회의원]][[분류:임실군 출신 인물]][[분류:함양 박씨]][[분류:1941년 출생]][[분류:경기고등학교 출신]][[분류:고려대학교 출신]] [[파일:external/people.phinf.naver.net/chosun_400021362.jpg|width=150]] 朴正勳 [[1941년]] [[12월 4일]] ~ [[대한민국]]의 전 [[기업인]], [[정치인]]이다. [[종교]]는 [[개신교]]이다. 본관은 [[함양 박씨|함양]]. 1941년 [[전라북도]] [[임실군]]에서 [[박세경]][* [[이승만]] 정권 때 여당인 [[자유당]] 국회의원이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고 야당 정치인이 되었으며 [[김대중]]을 후원하였다. 대부분 자유당 출신 정치인들이 나중에 대다수가 민주공화당과 유신정우회의 지지 세력으로 흡수된 것과는 반대의 케이스인 셈이다. 물론 [[박세경]]처럼 야당 정치인으로 변한 자유당 인사들도 있었다. 이후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 등에도 연루되었다.]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그리고 동 대학교 정책과학[[대학원]],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하였다.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재학 중인 1964년 정치외교학과 학생회장으로서 한일기본조약 체결에 반대하는[[ 6.3 항쟁]]에 참여하였다. 이후 [[3선 개헌]] 등 민주화운동을 하다 고초를 겪었다. 1971년 [[진산 파동]]의 여파 중에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1967년)|신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영등포구 갑|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장덕진(1934)|장덕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7년 [[정일형]](신민당)의 국회의원직 상실과 [[장기영(1916)|장기영]](민주공화당)의 별세로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오제도]] 후보와 무소속 [[정대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80년 아버지 박세경과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 조작에 연루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아버지 박세경과 함께 정치규제를 당하였다가 1984년 정치규제에서 해금되었다. 1983년부터 [[대우그룹]] 임원을 역임하였다.[* [[김우중]] 회장의 [[경기고등학교]] 후배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1991년)|민주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95년 정계 복귀한 [[김대중]]이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자 합류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전라북도 임실군-[[순창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0년 초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하여 [[민주국민당(2000년)|민주국민당]]에 입당하였고 정책위원회 의장에 임명되었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박정훈, version=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