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건국훈장 애족장]][[분류:밀양 박씨]][[분류:영동군 출신 인물]][[분류:1918년 출생]][[분류:1998년 사망]] || 성명 ||박재복(朴在福) || || 본관 ||[[밀양 박씨]] || || 생몰 ||[[1918년]] [[1월 28일]] ~ [[1998년]] [[7월 18일]] || || [[출생지]]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 초강리[* 인근의 심천리·단전리·길현리·구탄리·고당리·기호리·용당리·약목리와 함께 [[밀양 박씨]] 집성촌이다.] || ||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박재복은 1918년 1월 28일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 초강리의 빈농 집안에서 태어났다. 1934년 2월까지는 고향 집에서 부모님의 가업을 돕다가, 이후 [[대전광역시|대전부]]로 이주하여 본정2정목(현 [[대전광역시]] [[동구(대전)|동구]] [[인동(대전)|인동]])에 살았고, 대전부 본정3정목(현 동구 [[효동]]) 소재 군제제사주식회사(郡是製絲株式會社)[* 일본 대재벌 [[미쓰이그룹]](三井グループ) 계열의 회사로서 당시 식민수탈이 가혹했던 곳이다. 앞서 1929년 4월과 1932년 11월에 동맹파업이 일어나기도 했다.] 대전공장의 여공으로 근무하였다. 그러다가 1938년 4월부터는 대전부 본정2정목의 백화점 양만기(梁萬技) 상점에서 여사무원으로 근무했는데, 그해 10월 어느 날 오후 10시경 군제제사주식회사 여자 기숙사 34호실 복도 앞에서 이직 전 회사 동료였던 정삼례(鄭三禮)·김추현(金秋鉉)·한동임(韓東任) 등을 만나 "일본은 현재 [[중일전쟁|전쟁]]을 하고 있으나 돈이 적어서 불리하고, [[중국]] 및 [[러시아]]는 돈이 많다. 또 자동차, 비행기 등도 일본에 비해 많기 때문에 장기전에 이르면 물자부족 때문에 일본은 패전한다"고 말을 하였다. 같은 해 11월에도 어느 날 오후 7시경 군제제사주식회사 여자 기숙사 38호실 내에서, 정삼례와 김추현에게 중일전쟁에서 일본이 패전할 것이라는 말을 하였다. 또 1939년 3월에도 어느 날 오후 3시경에 대전부 천정(현 동구 [[천동]]) 인단산(仁丹山)[* [[일제강점기]] 때 [[금단증상]] 해소 목적의 수입품인 [[인단]] 광고판이 있었다고 해서 그 이름이 지어졌다고 하며, 2018년 9월 7일 지명위원회 심의 의결을 거쳐 '''비학산(飛鶴山)'''으로 개칭되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421&aid=0003578807|#]]] 아래 철도 선로 부근에서 정삼례·김추현·안운직(安運直=安運適)·백정옥(白貞玉)에게 중일전쟁에서 일본이 패전할 것이라는 말을 하는 등 주변 사람들의 항일의식을 고취하였다. 이로 인해 박재복은 중일전쟁에 관하여 유언비어를 유포한 죄로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1941년 10월 29일 전주지방법원 형사제2부에서 육군 형법 위반으로 금고 1년형[* 본형에 상당하는 미결 구류일수 본형에 산입.]을 언도받고 투옥되었다.[[http://theme.archives.go.kr/next/indy/viewIndyDetail.do?archiveId=0001352348&evntId=0034990666&evntdowngbn=Y&indpnId=0000021757&actionType=det&flag=1&search_region=|#]] 출옥 후에는 조용히 지내다가 [[8.15 광복]]을 맞았으며, 이후 1998년 7월 18일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별세하였다. 2006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