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익산시 출신 인물]][[분류:1904년 출생]][[분류:1919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 ||<tablealign=right><tablewidth=420><tablebordercolor=#878787><colbgcolor=#878787><colcolor=#ffffff> '''성명''' ||박영문(朴泳文) || || '''이명''' ||박양문(朴良文) || || '''생몰''' ||[[1904년]] [[10월 12일]] ~ [[1919년]] [[4월 4일]] (향년 14세) || || '''출생지''' ||[[전라북도]] [[익산시|익산군]] 오산면 신지리 || || '''사망지''' ||[[전라북도]] [[익산시|익산군]] || ||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clearfix]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1904년 10월 12일 전라북도 익산군 오산면 신지리에서 부친 박응춘과 모친 이양신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도남학교 학생으로, 1919년 2월경 16살의 나이로 결혼했다. 그로부터 2달 후인 4월 4일, 그는 익산 일대의 민립학교 학생들과 함께 준비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수백명의 인사들에게 배포한 뒤 독립만세를 고창했다. 이때 일본 헌병들이 달려들어 그의 복부를 사정없이 찌르고 총 개머리로 강타했고 그는 배를 움켜쥐고 쓰러졌다. 그는 남은 힘을 다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일본 헌병에게 배를 다시 찔렸고, 그는 쏟아지는 내장을 움켜쥔 채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9년 박영문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