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일제강점기의 천도교 신자]][[분류:부여군 출신 인물]][[분류:1893년 출생]][[분류:1932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족장]] || 성명 ||박성요(朴性堯) || || 생몰 ||[[1893년]] [[3월 15일]] ~ [[1932년]] [[1월 30일]] || || [[출생지]]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팔충리 || || 사망지 ||[[충청남도]] [[부여군]] || ||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박성요는 1893년 3월 15일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팔충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천도교]] 신자로, 1919년 3월 2일 밤 9시경 부여면에 소재한 천도교 교구실에서 김태호(金泰昊)로부터 [[3.1 운동]] 소식을 접하고 독립선언서를 접수받았다. 이후 그는 김종석(金鍾錫)·황우열(黃宇烈)·[[최규석(독립운동가)|최규석]] 등과 함께 독립선언서 교부방법을 논의하고 각각 배포 책임을 분담하였다. 이후 그는 1919년 3월 6일 ㅁ임천면내 군중 다수와 함께 집단을 이루어 사무소 및 보통학교 앞으로 시위행진하면서 독립만세를 고창했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19년 4월 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고문의 여독에 시달리다 1932년 1월 3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박성요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