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bgcolor=#cc0000><tablealign=center> {{{#ffe400 '''{{{+1 바실리 그리고리예비치 자이체프 }}}'''[br]'''{{{#ffe400 Василий Григорьевич Зайцев }}}'''}}}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sovinformburo.com/vasily_zaitsev.jpg|width=100%]]}}} || ||<-2> 1942년 10월,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의 모습 || ||<bgcolor=#cc0000> {{{#ffe400 출생}}} ||[[1915년]] [[3월 23일]], [[러시아 제국]] 볘르네우랄스크 시 옐레닌카 || ||<bgcolor=#cc0000> {{{#ffe400 사망}}} ||[[1991년]] [[12월 15일]], [[우크라이나]] [[키예프]] || ||<bgcolor=#cc0000> {{{#ffe400 국적}}} ||[[소비에트 연방]] [[파일:소련 국기.svg|width=25]] || ||<bgcolor=#cc0000> {{{#ffe400 복무}}} ||[[소련군]][[파일:800px_Soviet Army-Communist_star_with_golden_border_and_red_rims.png|width=25]](1937 ~ 1945) || ||<bgcolor=#cc0000> {{{#ffe400 최종 계급}}} ||[[육군]] [[대령]] || ||<bgcolor=#cc0000> {{{#ffe400 주요 전투}}} ||[[스탈린그라드 전투]] || ||<bgcolor=#cc0000> {{{#ffe400 주요 서훈}}} ||[[소비에트연방영웅]] 1회 || [목차] == 개요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쪽, 최강최고의 [[저격수]]. 공식적으로는 '''225명의 [[독일군]]'''[* 대부분이 장교이며, 11명의 저격수 포함.]을 저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기록이 정확하지 않아 더 많은 적을 사살했을 수도 있는 사람. 'Зайцы(zaytsy)([[러시아어]]로 '토끼(hare)')라는 단어와 성이 비슷해서 별명이 '''러시아 토끼'''. --[[살인 토끼]]-- == 생애 == 우랄 산맥 근처의 산골마을인 옐레니스코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사슴 사냥으로 사격술을 연마했다. 전쟁 전에는 [[소련 해군]]에서 복무했는데, [[블라디보스토크]]의 소련 [[태평양]] [[함대]]에서 [[행정병]]으로 복무 중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전방 부대인 [[흑해]] 함대로 자원하였고 [[해군 육전대]] 저격수로 배치되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내내 저격수로 싸웠으며 1943년 1월에 독일군의 [[박격포]] 포탄에 피격되어 부상을 입은 뒤에 잠시 눈이 멀었다가 다시 전선으로 복귀했다. 그는 전쟁영웅으로 크게 선전되었고, 스탈린그라드에서 분투하는 소련군의 상징이 되었다. 그래서 그의 시력을 살리기 위해 소련에서 가장 유명한 안과의사였던 필라토프 [[교수]]가 파견되었다. 하지만 눈 부상 후유증으로 인해 시력이 나빠져 예전처럼 저격 일선에는 나가지 못하고 이후 저격수 교관 업무를 주로 맡았다. 그러나 종전시까지 계속 소련 육군에 남아 있었으며,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주역인 제62군이 개편된 제8근위군 소속으로 1945년 [[베를린 전투]]에도 참가하여 베를린 근방의 젤로 고지 전투에 참전하고 종전을 맞았다. 후에 업적을 인정받아 [[소비에트연방영웅]] 칭호를 받았다. 해군에서 [[상사(계급)|상사]]까지 진급한 뒤 [[육군]] [[준사관]]이 되었다가 [[보병]][[대위]]까지 진급, 전후 그 공로로 계속 진급해 육군 [[대령]]까지 이르렀다. 그가 전쟁 중 기록한 공식 사살 횟수는 '''242'''구인데 이 전적을 올리기 위해 사용한 탄환의 수는 '''불과 243'''발이었다고 한다. '''딱 한 발'''이 빗나갔으니 '''명중률은 무려 {{{+1 99.588...%}}}''' 그야말로 '''원샷 원킬'''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전설적인 저격수이다. ~~이 정도 되면 맞춘 242발보다 빗나간 1발의 이유가 궁금해지는데~~ --[[정조|완벽하지 않고 싶나보지]]-- 그는 볼트액션식 소총의 걸작인 [[모신나강]]을 사용해서 저격을 했는데, 그의 총은 아직도 박물관에 보관중이며 전쟁 이후에는 전쟁 영웅으로 우대받으며 [[키예프]]에서 공장을 운영하다 1991년 7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근데 그가 죽은 지 10일 뒤에 그가 전쟁에서 지켰던 [[소련]]이라는 나라는 사라졌다. 세간에선 이를 두고 '''조국과 함께 잠든 사나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다만 [[우크라이나]]는 [[8월 24일]]에 일찌감치 소련을 탈퇴했기 때문에 독립국 우크라이나에서 사망했다. 조금 [[안습]]하거나 어쩌면 자신이 지킨 나라가 망하는 꼴을 보고 죽지 않았으니 역설적으로 행운일지도?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그와 초인적인 저격대결을 벌인 것으로 유명한 [[SS]][[대령]] 하인츠 토르발트(혹은 육군[[소령]] 에르빈 쾨니히)는 정체가 불분명하다. 그러나 에르빈 쾨니히라는 이름이 최초로 언급된 곳이 소련의 선전매체가 아닌 바실리 자이체프의 회고록이라는 점, 서류 누락이 전쟁 중 빈번히 일어났다는 점으로 보았을 때 무조건적인 소련의 선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서방의 냉전적 시각이라는 말도 있다. 참고로 실존 독일 최고 저격수는 육군 산악[[상병]] [[마테우스 헤체나우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실리 자이체프와 독일 저격수 사이의 대결은 분명히 있었다.[* 실제로 저격수를 잡는데는 저격수가 투입되었기에 독일군 역시 자이체프를 위시한 소련군 저격수들을 잡기 위해 많은 저격수를 투입했다. 물론 자이체프는 끝까지 살아남았고 그 동안 여러 독일군 저격수들이 그의 킬카운트 중 일부가 되었다.] == 사후 == [[파일:external/ec66324eb42d4e13529e354937c97cdf2c085a3765736dfc94605e17a7493c3e.jpg]] 2011년 자이체프의 아내 지나이다 자이체바가 사망하자, 두명의 유해는 스탈린그라드 격전지들중 하나였던 마마이 언덕의 참전용사 묘지에 합장되었다. 육군 장교로 군생활을 마감했지만, 해군 출신이라는 자부심이 강했는지 [[묘비]]에 해군 [[정복(의복)|정복]] 차림을 한 모습을 새겼다. == 미디어 == 2001년에 개봉한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에서 [[주드 로]]가 이 자이체프 역할을 맡았다. 때문에 주드 로의 자이체프를 먼저 본 사람들은 미남일 것이라 지레짐작했다가 실제 자이체프의 사진을 비교해 보고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SD 세계대전]] 소련군 6번 임무 '저격수'에서 중간중간에 대사 이벤트가 있다. [[분류:1915년 출생]][[분류:1991년 사망]][[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분류:소련의 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