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민족말살정책(民族抹殺政策)은 일제가 [[일제강점기|식민지 조선]]의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고 [[한민족]]의 정신을 말살하고 [[일본인]]에 동화시켜 [[태평양 전쟁]]과 [[중일전쟁]]에 협력하도록 강요한 정책이다. 이 정책은 1930년대에서 일제 패망까지 시행되었다. [[간이학교]]가 이 시기에 생겼다. == 상세 == 어감이 어감인지라 마치 한반도에서 시행된 [[제노사이드]] 대량학살처럼 느껴지지만, 여기서 민족은 '''한국인으로서의 민족적 정체성'''을 의미한다. === [[내선일체]] === 일본은 내선일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조선인]]을 [[일본인]]에 동화시키려 하였다. 때문에 [[일본어]] 교육을 강화하는 등,[* 일제강점기 총독부의 언어정책은 일관성이 없었고,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일본어 강습 강화와 조선어 교육 사이를 오락가락하였다. 1930년대 말에서야 농촌 소학교, 일본어 강습회 및 야학을 통한 본격적인 일본어 교육책을 펼쳤지만, 낮은 교육 인프라와 고작 270시간 짜리의 강습회 시간, 총독부의 의지 부족 등으로 수업 효율은 바닥을 기었다.(참고: Tsuzuki Tsuguo, 〈일제 시대 야학 및 학술강습회에서 실시된 일본어 강습〉) 근본적으로 말해서, 교육 인프라는 낮은데 신민 의식은 심어놓고 싶다는 발상부터가 놀부심보였다(...) 학교가 많아야 민족주의이든 내선일체이든 뭘 배우는 법이다.] 적극적으로 신민화 정책을 펼쳤다. 각급 학교의 ‘국어상용패’가 이 때 생겨난 것이다. === [[식민사학]] === 일제가 식민지 조선을 정신적으로 굴복시키고 일본의 일부로 완전히 동화하게 만들기 위해 식민지 조선의 주민들에게 역사를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가르쳐서 세뇌 목적으로 만든 [[사이비 역사]] 관점이다. === [[일선동조론]] === 일선 동조론을 내세워 조선인과 일본인의 조상은 같다고 주장하였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인류차원에서 조상은 같다. ~~[[위 아 더 월드]]~~ 현재 학설을 따르면 한반도에 오기전에는 남조 문화권 장강유역에 있었을 가능성이 있는 [[야요이]]인이 한반도 남부에 적어도 수백년간 머무르다가 [[일본 열도]]로 건너갔고 소수의 한국어족 사용자도 같이 일본에 건너가면서 당시 [[원주민]]이던 [[조몬인]]을 압도하면서 혼혈되어 일본인이 탄생했고, 한반도에 남은 야요이인은 한민족에 흡수됐다는 것이 현 학설. 다만 당시 일제가 정말 이런 의미로 조상이 같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조선인들의 민족성을 말살시켜 보다 쉽게 통치하기 위한 의도로 주장한 것이다.] === [[창씨개명]] === 일본어로 된 이름으로 강제 개명 해야 했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큰 불이익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아이는 학교를 다닐 수 없었다고 한다. === [[황국신민]] === [[황민화 정책|황국 신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황국신민서사]]라는 맹세문을 외우게 하였다. === [[궁성요배]] ===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강제했다. === [[신사 참배]] === [[신사]] 참배도 강요하였다. === 징용과 [[위안부]] === 일제는 조선 남자를 일본군이나 노무자로 징병 징용하였으며 조선 여인은 위안부로 끌고 갔다. [[분류:일제강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