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사건사고)] [[파일:external/www.registeredevil.com/USS-Cole.jpg]] [[영어]] : USS Cole Bombing [목차] == 개요 == 2000년 10월 12일, [[예멘]]의 수도 아덴 항에 정박하고 있던 [[미합중국 해군]]의 [[알레이 버크급]] [[이지스 시스템|이지스]] [[구축함]], DDG-67 USS 콜(Cole) 함에 가해진, [[보트]]를 이용한 기습적인 [[자살]][[폭탄]][[테러]] 공격. == 내용 == 10월 12일, 아덴 만 해역에서 통상적 작전을 수행하던 콜 함은 연료 보급을 목적으로 아덴항에 입항하여 연료 보급 작업 및 통상 정비, 승조원의 휴식 등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현지시각 11시 18분 소형 모터보트 1척이 저돌적인 돌격으로 콜 함의 좌현 중앙 부분과 충돌함과 동시에 폭발했다. 이 모터보트에는 두 명의 선원(테러범)이 타고 있었고, 이들을 목격한 승조원들의 경계심을 최대한 낮추기 위해 충돌 직전까지 웃으며 손까지 흔드는 등의 행동을 했다. [[파일:external/thinkprogress.org/USS_Cole2.jpg|width=1000]] [[파일:external/aamdispatch.org/uss_cole_hole.jpg|width=1000]] 미 해군 함정이 외부 공격으로 피해를 입은 것은, 1987년 [[올리버 해저드 페리급]] [[프리깃]] USS 스타크 함이 [[페르시아 만]]에서 [[이라크]] [[공군]]의 오인 공격[* 의도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으로 [[엑조세]] [[대함 미사일]]에 피격당한 이후 13년만의 일이었다. 이 공격으로 19명이 전사하고 39명이 부상을 입었다. 피격 부위가 콜 함의 승조원 식당[* 해군 함정의 식당은 보통 [[장교]]와 [[준사관]]들의 사관식당, [[상사(계급)|상사]] 이상의 [[부사관]]들을 위한 [[CPO]] 식당, 그 이하 부사관 및 [[수병]]들을 위한 승조원 식당으로 나뉜다.] 부근으로, 조리 직별 인원들 및 이른 점심 식사를 준비하던 승조원들이 주 희생자였다. 이후 [[미군]] 및 [[미국 중앙 정보국|CIA]]의 조사 결과, 공격의 배후는 [[알 카에다]]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명확한 물증이 없었던 데다, 시기적으로 대선이 불과 1달 앞이라 [[빌 클린턴]] 행정부가 무리한 보복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때문에 1998년 [[케냐 미 대사관 폭탄 테러|케냐 및 탄자니아 미국 대사관 동시 자살폭탄테러]] 때와 달리 미국은 아무런 보복 공격을 가하지 않았다. 그리고 1년 뒤, 알 카에다는 [[9.11 테러]]를 감행했다. == 사건의 여파 == 케냐-탄자니아 미국 대사관 동시 자살폭탄테러로 테러 조직의 떠오르는 신성(…)으로 등장한 [[알 카에다]]가 미국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으며, 이들의 조직규모나 능력이 지금까지의 테러 조직들과는 수준이 다르다는 것 또한 증명되었다. 아울러, 이 사건으로 세계 해군은 자살공격에 대한 대비책 마련에 나섰다. 실제 이후 [[스리랑카 내전]]에서 타밀 반군이 정부군 [[고속정]]을 소형 보트를 이용한 자살공격으로 격침시키기도 하는 등, 이러한 방식의 공격이 해상력이 없다시피한 반군 세력이나 테러 조직들에게 널리 각광받았던 것이다. 이에, 보통 20~30㎜ 선이던 [[CIWS]]의 무장에 40~50㎜ 이상의 구경 화기가 도입되었고, 그 임무도 대공표적 요격과 동시에 고속으로 항행하는 대수상표적 저지까지 확대되었다. 또한 탑재수량도 많이 늘어나게 되었다. 거기에 덧붙여 [[M2 브라우닝 중기관총|M2HB]] [[중기관총]]을 선체 외곽에 거치할 수 있도록 개조를 가했다. 미 해군 구축함에는 소형 화기(배의 체급에 비해)를 다량으로 비치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소형보트에 대한 대책으로 인해 증설을 시작, 일부 함정에는 [[M134 미니건|미니건]]을 거치하기도 했다. 그 후에는 아예 전 미 해군의 구축함 현측에 25㎜ [[체인건]]을 설치하고, 우방국 항구에 입항하더라도 해당 국가의 공용어 및 영어로 된 "일정 거리 이상 접근시 발포한다."는 문구의 대형 [[현수막]]을 설치하며, [[저격수]]를 포함한 견시들이 실탄을 장전한 [[소총]]을 메고 경계를 서도록 방침이 정해졌다. 당시 [[함장]]이었던 [[항해]][[중령]] [[https://en.wikipedia.org/wiki/Kirk_Lippold|커크 립폴드]]는 [[인디애나폴리스 침몰사건]]으로 얻은 미 해군의 교훈이 반영되어, 그가 승조원들에게 규정된 수준의 당직을 세우는 등 경계를 태만히 하지 않았고, 또 위와 같은 자살 테러는 예측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음을 감안해 처벌을 받지 않았다. 립폴드 중령은 사건 6년 뒤인 2007년에 예편했다. [[천안함 피격사건]] 당시 함장 최원일 항해중령을 처벌하지 않는 것을 뭣모르는 대중들 일부가 비난했을 때, 인디애나폴리스 침몰사건과 함께 이 사건이 이들의 억지에 대항하는 근거로 내세워졌다. 그러나 정작 대한민국 해군 내에서는 장비의 문제가 아니라 승무원들의 안이한 근무 태도가 원인이었다고 교육자료에 명시해버렸고 생존 승무원들 또한 불이익을 받아왔다는 생존 장병의 인터뷰가 있다.[* [[http://v.media.daum.net/v/20160607162538180|[人터뷰+] "넌 천안함이니까 싫어. 가까이 오지 마"]],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612028&plink=SHARE&cooper=SBSNEWSMOBEND|천안함 영웅? 뒤에선 "패잔병"…두 얼굴의 軍]]] 또한 함장이었던 최원일 중령은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을 다시 현장에 보낼 수 없다는 이유로 후방지원부대에서만 근무하고 있었다.[* [[http://www.hankookilbo.com/v/dcb3f8feb8154e68bbba8b8e849beb2d|천안함 함장 "진실을 믿지 않는 건 자유지만…"]]] == 후일담 == 한편, 콜 함은 이후 2년여에 걸친 수리 끝에 2003년 11월 29일 현역에 재복귀했고, 2006년에는 사고가 난 아덴 만 해역으로 재배치되었다. [[2009년]] [[4월 22일]]. 6년 동안의 법정 투쟁 끝에 이 사건으로 희생된 승조원들의 유가족들에게 최소 $200,000 이상의 보상금이 지급된다는 기사가 송출되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2621470|#]]--우리나라의 100배다-- 영화 [[제로 다크 서티]]에서도 해당 사건에 관한 언급이 등장한다. CIA 중견 간부가 "우리는 지금 육-해-공 전방위에서 적의 공격을 받고 있다. 1998년에는 지상(1998년 [[케냐 미 대사관 폭탄 테러]])에서, 2000년에는 바다(USS 콜 테러사건)에서, 그리고 2001년에는 하늘(말할 필요도 없이 [[9.11 테러]])에서"라고 말한 것이다. [[2019년]] [[1월 1일]], 19년 만에 미 국방부는 이 사건의 주범 중 하나이자 [[알 카에다]] 간부인 자말 아흐마드 무하마드 알리 알 바다위를 공습을 통한 정밀 타격으로 사살했다고 밝혔다. == 관련 항목 == * [[신요]] * [[알레이 버크급]] * [[알 카에다]] * [[미합중국 해군]] * [[테러와의 전쟁]] * [[9.11 테러]] [[분류:2000년 테러]][[분류:클린턴 행정부/사건사고]][[분류:미군/사건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