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제트전투기/러시아)] [include(틀:현대전/북한 항공병기)] [[파일:SU-7.2.jpg]] [[파일:SU-7.jpg]] [[NATO 코드명]] <Fitter-A>. ||<-5> 수호이 설계국 전투기 계보 || || [[Su-9(1946)]] || → || [[Su-7]] || → || [[Su-9]] || |||| 운용과 퇴역 || || 초도비행 ||[[1955년]] [[9월 7일]] || || 도입 ||[[1961년]] || || 퇴역 ||전량 퇴역 || || 생산 ||1,847기 || [목차] == 제원 == Су-7, Су-7Б ||'''Su-7BKL''' '''제원''' 분류 : 단발단좌 [[터보제트]] 전투기 전장 : 16.80m 전폭 : 9.31m 전고 : 4.99m 주익면적 : 34m² 공허중량 : 8937kg 최대이륙중량 : 13,570kg 엔진 : 률카 AL-7F-1 후연소기 장착 터보제트 1기, 후연소기 작동 시 추력 94.1kN '''성능''' 최대속도 : 2,150km/h (1,160 kn, 1,335 mph) 항속거리 : 1,650 km (890 nmi, 1,025 mi) 실용상승한도 : 17,600 m (57,740 ft) 상승률 : 160 m/s (31,500 ft/min) 익면하중 : 434.8 kg/m² (89.05 lb/ft²) 추력대 중량비 : 0.71 '''무장''' 기총 : 30mm [[NR-30]] [[기관포]] 2문 (주익 내측 2문(1문당 탄약 80발)) 하드포인트 : 주익 하면 4개소, 동체 하면 2개소 최대 2,000kg 폭장 가능(S-5 무유도 로켓, 8U69 5킬로톤 [[핵폭탄]], 600리터 혹은 950리터 보조연료탱크, 250kg 혹은 500kg 통상폭탄 등)|| == 소개 == Su-7은 [[수호이]] 설계국(Sukhoi OKB)이 재건된 이후 설계 및 실전 배치한 최초의 [[전투기]]이다. Su-7은 60도에 달하는 급격한 후퇴각을 자랑하는 후퇴익과 쇼크콘을 탑재한 [[초음속]] 전투기로 당초 최전선의 저공에서 도그파이팅을 위하여 설계되었으나 성능상의 문제가 발견되어 소폭 개량을 거쳐 [[전투폭격기]]로 전용되어 개발 및 실전 배치되었다. Su-7은 소련 공군이 [[IL-2]]의 후속기로 개발해서 사용하였던 IL-10을 대체하고 [[1960년대]] 초반 소련 공군의 주력 전투폭격기로 사용되었으나 적은 무장탑재량, 짧은 항속거리 등의 문제로 인하여 운용상의 문제가 있었다. == 개발 및 성능 == [[1953년]] [[스탈린]] 사후 그 해 여름 [[수호이]] 설계국이 재건되었다[* [[수호이]] 설계국은 원래 2차대전 이전부터 있었던 [[설계국]]이었다. 그러나 Su-2 등 실패작들만을 내놓으면서 설계국이 폐쇄되고 설계국 직원들은 [[굴라그]]로 끌려갔던 [[흑역사]]가 있다. ]. 수호이 설계국은 최전선에서 사용할 후퇴익 [[전투기]]를 설계했고 사내 번호 S-1이라 명명되었다[* [[수호이]] 설계국에서 설계한 [[프로토타입]]의 경우 후퇴익을 적용한 모델은 S, 델타익을 적용한 모델은 T로 시작하는 일련 번호를 붙이는 전통이 있다. 그 예로 [[Su-47]]의 사내 번호는 S-47이었으며 [[Su-27]]의 사내 번호는 T-10이었다. ]. S-1은 60도의 급한 후퇴각이 적용된 후퇴익과 쇼크콘에 강력한 률카 AL-7을 탑재한 전투기로 소련 최초의 전체 가동식 수평미익, 가동식 쇼크콘을 탑재한 본격적인 [[초음속]] 전투기가 될 예정이었다. S-1은 [[1955년]] 9월 1일에 최초로 비행했으며 [[1956년]] 4월 소련의 항공기 속도 기록을 갱신하게 되었다. 당시 기록은 2,170 km/h (1,170 kn, 1,350 mph, Mach 2.04)였다. [[프로토타입]]은 [[N-37]] 37mm [[기관포]] 3문을 기본으로 장착하고 동체 하면의 하드포인트에 S-5 무유도 로켓을 장착할 예정이었다. 뒤이어 공력적인 측면을 개선한 두 번째 프로토타입 S-2를 만들었다. 그러나 첫 번째 프로토타입인 S-1은 엔진 문제로 1956년 9월 1일 추락하였고 탑승하고 있던 시험 조종사마저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일련의 문제로 인하여 첫 번째 양산형인 Su-7은 [[1957년]]부터 [[1960년]]까지 132기만이 생산되었고 [[1959년]]에 실전 배치되었다. 하지만 소련 공군은 Su-7이 [[전투기]]로서의 성능에 미달한다고 판단하고 [[1958년]] 7월 31일부로 Su-7에 지상공격 임무를 부여하기로 결정하였고 그에 맞는 개량형을 준비하도록 명령하였다. 지상공격에 맞는 개량형은 퇴역 중이던 IL-10을 대체할 예정이었다. 이에 따라 수호이 설계국이 재설계한 프로토타입인 S-22는 기존의 전투기형과 비교해 고속 비행을 위하여 동체를 강화하고 저공 비행 능력 강화에 중점을 두었다. 본 프로토타입은 1959년 3월에 초도비행을 마쳤고 [[1961년]] Su-7B라는 이름으로 배치된 후 생산된 대부분의 기체가 지상 공격기로 운용되었다. 상술하였다시피 Su-7은 급한 후퇴각을 갖춘 얇은 주익을 가지고 있었다. 이로 인하여 착륙 속도는 매우 빨랐으며 착륙시 받음각이 큰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조종사의 시야를 제한해 이착륙 시 지면에 충돌할 가능성이 높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게다가 불량한 전면시야와 ILS의 부재는 이착륙 난이도를 더욱 키우기에 충분하였다. 이로 인하여 날씨가 불량하거나 비행장의 노면 상태가 좋지 못할 경우 임무에 나서기 어려운 결점이 있었다. 수호이 설계국은 이런 문제점들을 보완하기 위하여 고양력 장치를 주익에 추가하는 등의 실험을 하였으나 성과는 미진하였고 결국 JATO 기능을 추가시켜 보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 파생형 ==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Su-7은 사실상 실패작에 가까운 항공기라고 할 수 있었으나 수호이 설계국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Su-7의 기본 설계를 이용해 두 종류의 전술 항공기를 만들었다. 1959년에는 Su-7의 구조에 [[MiG-21]]의 [[델타익]]+꼬리날개 조합의 개량을 가하여 [[Su-9]] [[요격기]]를 만들어내어 소련 방공군에 1,100기를 배치하는데 성공했고, [[1966년]]에는 Su-7에 [[가변익]]을 장착하고 지상공격능력을 강화한 [[Su-17]] 지상[[공격기]]를 만들어 2,800기 가량을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 운용국 == [[소련]], [[체코슬로바키아]], [[아프가니스탄]], [[인도]], [[이라크]], [[이집트]], [[시리아]], [[폴란드]], [[북한]] 등에서 1,800기 가량을 운용했으나 [[1980년대]]부터 퇴역이 시작되어 현재는 북한을 제외하고는 전량 퇴역 상태이다. [[분류:공격기]] [[분류:전투기]] [[분류:항공 병기/현대전]] [[분류:소련군/장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