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현대전/일본 항공병기)] ||<-2><table width=350><table align=right><table bordercolor=#dddddd,#010101><bgcolor=#dddddd,#010101><table bgcolor=#ffffff,#2d2f34><table color=#373a3c,#dddddd> {{{#373a3c,#dddddd '''{{{+1 YS-11}}}'''}}} || ||<-2><bgcolor=#ffffff>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namc_ys_11_02.jpg|width=100%]]}}} || ||<-2> [[전일본공수|ANA]] 소속 YS-11 || ||<bgcolor=#dddddd,#010101> {{{#373a3c,#dddddd 용도}}} ||[[수송기]] || ||<bgcolor=#dddddd,#010101> {{{#373a3c,#dddddd 제작사}}} ||<|2>[[파일:일본 국기.svg|width=20]] 일본 항공기 제조 주식회사|| ||<bgcolor=#dddddd,#010101> {{{#373a3c,#dddddd 공급사}}} || ||<bgcolor=#dddddd,#010101> {{{#373a3c,#dddddd 개발}}} ||1956년 ~ 1962년 08월 || ||<bgcolor=#dddddd,#010101> {{{#373a3c,#dddddd 생산}}} ||1962년 10월 ~ 1973년 05월 || ||<bgcolor=#dddddd,#010101> {{{#373a3c,#dddddd 운용}}} ||1965년 03월 ~ 운용 중[* 2020년 12월 25일 기준] || ||<bgcolor=#dddddd,#010101> {{{#373a3c,#dddddd 가격}}} ||약 3억 5,000만엔 (1960년 당시) [br]약 200만 달러 (1972년 당시) || ||<bgcolor=#dddddd,#010101> {{{#373a3c,#dddddd 납품}}} ||182대 || [목차] [clearfix] == 개요 == ||<tablewidth=100%><width=50%> [[파일:namc-ys-11-01.jpg|width=100%]] ||<width=50%> [[파일:namc_ys_11_03.jpg|width=100%]] || || [[일본 에어 커뮤터|JAC]] 소속 YS-11 || YS-11의 콕핏 || NAMC YS-11은 일본항공기제작('''NAMC''')[* Nihon Aircraft Manufacturing Corporation. 전후 1957년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 그룹|미쓰비시 중공업]]을 필두로 [[후지중공업]], [[신메이와|신메이와 공업]], 일본비행기, 쇼와비행기, [[카와사키 중공업]] 등 항공기 제작사 외에 [[도시바]], [[스미토모 그룹|스미토모금속]]등 기계, 전자 산업체가 참가하여 결성된 기업이다. NAMC는 설계 및 판매, 서비스 기능을 맡았고 실제 생산은 회원사가 분담하였다. YS-11의 생산이 종료된 이후인 1983년 폐업하였다.]의 [[터보프롭]] 여객기이며 수송기이다. "YS"는 일본어로 수송기(Yusōki)와 설계(Sekkei)에서 딴 것이며, 11은 각각 엔진 형식과 기체 스펙의 일련번호이다. 그러나 YS-11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해서 11 이외의 일련번호가 가시화되지는 못했다. == 개발 == || [youtube(SkgYck0V9oA)] || || 1963년 YS-11 기록영화 || 1950년대 중후반, 전전 일본에서 카피 생산한 [[DC-3]]가 노후화됨에 따라 이를 대체하여 국내선에 굴리기 [[적절한]] 여객기 개발 요구가 일본 정부에서 제기되었다. 1956년에는 운수성이 [[신메이와|신메이와공업]]에 기초 연구를 발주하였으며, 이 결과로 이듬해 운수성의 주도로 수송기설계연구협회가 창설되었다. 1959년에는 본격적인 개발을 위하여 특수법인인 NAMC로 재편되었다. 이 때 민간에서 주도권을 쥔 것이 [[미쓰비시그룹|미쓰비시중공업]]으로, 항공기의 최종 조립 또한 미쓰비시의 [[나고야 비행장|고마키 공장]][* 오늘날 [[미쓰비시 스페이스젯]]의 생산 거점이기도 하다.]에서 제조하기로 결정되었다. NAMC는 신형 수송기를 '''저익기[* 저익기라 다른 터보프롭기와는 달리 엔진이 중간에 배치되어 있는 게 아니라 프로펠러는 위로 돌출되어 있고 흡기구만 아래로 내려와 있다.], 쌍발 [[터보프롭]], 60석 규모'''로 설계하였는데, 초기 구상에는 [[제로센]]의 디자이너인 [[호리코시 지로]]를 위시한 전간기 엔지니어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NAMC에는 합류하지 않아서 이들의 밑에서 2차대전시 군용기 설계에 참가했던 엔지니어들이 그 뒤를 이었다.[* [[MXY-7 오카|오카]] 디자이너가 [[신칸센]] 제작에 참여하는등 전후에 대전기 기술자를 쓰는 사례도 많았다.] 엔진은 [[롤스로이스]]의 3050마력의 [[https://blog.naver.com/naljava69/220375047498|다트 엔진]]을 장비하였다.[* 예외적으로 [[제너럴 일렉트릭]]의 엔진을 장비한 경우도 있었다.] 고출력 엔진 장착으로 수송력이 같은 쌍발기였던 [[포커 27]] 시리즈에 비하여 50% 정도 높고, 4발기인 영국제 [[비커스]] 바이카운트(Vickers Viscount)에 비해서도 그다지 밀리지 않는다고 홍보되었다.[* 다만 수송력에 대한 서술은 어디까지나 NAMC 측의 주장이며 실제로는 그다지 우세하지 않다. 최대 적재량은 YS-11이 6.6톤이며 F27는 Mark 100이 5.6톤, Mark 500이 6.5톤, 바이카운트는 Type 700이 6.3톤, Type 810이 7.6톤이다. 최대 적재시 항속거리는 YS-11이 590nmi, F27 Mark 100이 600nmi이며 바이카운트가 1,500nmi였다. 이들 기체는 모두 롤스로이스 다트 계열 엔진을 장착하였으며 어디까지나 YS-11이 채택한 엔진이 개별 추력이 큰 것이다.] 이외의 특징으로는 다른 경쟁 기종과 달리 민항기에 어울리는 합리화가 되지 않은 점이 있다. 이 때문에 소음, 진동 등 거주성이 떨어지고 중량이 늘어 일본의 파일럿들조차 출력 부족을 호소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YS-11을 미국에 유일하게 도입한 피드몬트 항공(Piedmont Airlines)의 경우 YS-11이 고출력이라는 이유로 산악 도시 노선에 배치했다는 것이다.] 또한 전후 여객기에 일반화된 [[유압]]을 적용하지 않고 케이블로 조종면을 조종하는 구식 장치를 채택하여 조종이 힘이 드는 데다 오토파일럿도 불가능했다. 그리고 현재 이 체급으로 현역인 대표적인 프롭 커뮤터기종들은 연비와 함께 단거리 이착륙성능을 중시한 고익기며 YS-11과 같은 저익기는 드물다. 프로토타입은 1962년 8월 30일, [[나고야 비행장|나고야 공항]]에서 성공적인 초도 비행을 마쳤고, 그 해 12월 28일에는 두 번째 프로토타입이 비행을 마쳤다. 1964년 8월 25일에는 일본 정부의 승인이, 이듬해 9월 9일에는 [[FAA]]의 인증을 받았다. == 상업 운항 == 인증 취득 후 1965년 4월 1일에 양산 1호기(생산 3호기)가 [[JAS|일본국내항공]](일본에어시스템의 전신 중 하나)에서 상업 취항을 시작하였다.[* 특이한 것은 양산 1호기가 납품된 곳은 정작 운수성이라는 것이다. 양산 2호기는 또다른 JAS의 전신인 일본국내항공으로 납품되었다.] 1973년까지 총 182대가 생산되었으며, 이 중 82대는 15개국으로 수출되었다. 이 중에는 대한항공 또한 포함되어 있으며, 납북 사건에 휘말린 기체다. 자세한 내용은 [[대한항공 YS-11기 납북 사건]] 참조. YS-11은 일본 국내에서는 지방 노선의 주력으로 운용되었으며, 특히 [[일본 에어 커뮤터]](JAC) 등 지선 항공사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민항기 사업 경력이 전무한 일본에 대한 신뢰도도 부족한 데다 YS-11 자체도 중량이 과다하고 소음, 진동 등 승객 서비스 측면의 약점이 지적되었다. 이는 개량형 YS-11A의 도입으로 어느 정도 만회가 되어 판매 자체는 당초 계획했던 150기를 넘어섰으나 여전히 수익이 나지 않았으며, 특히 해외 판매 체제가 지리멸렬했던 탓에 손해를 많이 보았다. 이 때문에 YS-11의 사업 결손은 1971년에 '''당시 가치'''로 145억엔에 달했으며,[* 2019년 가치로는 440억엔에 달한다. 덧붙여 납입자본이 총 78억엔이었다. 먼 옛날에 자본이 잠식되었다는 뜻이다.] 결국 채권단의 주도로 1973년 생산 종료로 이어졌다. 1981년 말에는 정부 각료회의에서 정식으로 청산이 결정되어 1982년에는 서비스 업무를 미쓰비시에 이관하고 1983년에 최종 청산되었다. 청산 당시의 누적 결손은 360억엔에 달한다.[* 원래 YS-11의 취항 이후 탄력을 받은 일본 정부와 NAMC는 제트기 개발 구상에 들어가서 1970년 즈음에는 3발 제트기로서 150석 이내의 소형기 YS-33과 150석 이상 중형기인 YX의 컨셉트를 잡고 있었다. 이는 1973년에 YS-11이 생산 종료되면서 현실화되지 않았으나, 중형기 개발의 리스크를 낮추려던 [[보잉]]과의 합작이 성사되어 [[보잉 767]] 이후의 보잉 기종은 일본 항공업계가 공동개발자로서 일정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보잉 787]]에서는 그 비율이 35%에 달한다. 그러나 50여년 뒤 일본이 여객기 자체개발 프로젝트에서 큰 손실을 보는 것이 다시 반복되는데... 자세한 내용은 [[미쓰비시 스페이스젯]] 참조.] YS-11은 일본 국내선에서 2006년까지 활약하였다. 마지막 운항 노선은 2006년 9월 30일 JAC의 오키노에라부(沖永良部)-[[가고시마 공항]] 노선으로, 의도적으로 JAC가 첫 편을 띄웠던 노선이라고 한다. 은퇴가 가까워져서는 아래 -500형의 사진과 같이 '고마워요 일본의 날개 YS-11' 문구가 적힌 특별 도색이 적용되었다. 마지막 상업운항을 수행한 기체는 필리핀 등으로 매각되었으며, 일본 국내에서는 자위대나 항공 교육기관 외에 양산 1호기(JA8610)가 일본 국립과학박물관에서, 구 JA8709가 중소 정비회사에서 동태보존되어 있다.[* 정작 일본의 법규에 맞지 않아 미국으로 등록 국적을 옮긴 게 아이러니하다.] == 종류 == === YS-11-100 === [[파일:namc_ys_11_04.jpg]] YS-11의 표준형. 이륙 최대 중량은 23,500kg. 48대 생산. === YS-11A-200 === [[파일:namc_ys_11_05.jpg]] YS-11의 이륙 중량이 24,500kg로 늘어난 모델. === YS-11A-300 === [[파일:namc_ys_11_06.jpg]] -200형의 콤비형. 커다란 화물칸 도어가 장비되어 있으며 승객/화물 둘 다 적재가 가능.[* 사진은 화물기로 추정.] === YS-11A-400 === -200형의 화물형으로, 일본 자위대에서만 사용되었다. === YS-11A-500 === [[파일:namc-ys-11-07.jpg]] 이륙 중량이 25,000kg로 늘어났으며, 1970년부터 생산 시작. --근데 뒤에 B747-- === YS-11A-600 === -500형의 콤비형. === YS-11E === [[파일:namc-ys-11-08.jpg]] 일본 [[항공자위대]]에서 [[전자전]]기로 개조되어 신형 제너럴 일렉트릭의 T64-IHI-10E 터보프롭엔진으로 교체하고 항속거리를 2,670㎞로 늘리며, 전자전 장비[* [[전자전#s-2.1|J/ALR-2 신호정보시스템]], [[ECM|J/ALQ-7 전자방해 시스템]]등이 탑재되었다.]를 탑재하는 등 여러 개조가 적용된 최신형 모델이다.[* 4엽에서 3엽으로 프로펠러 날개 개수가 줄어든 듯 하다.] 공자대 전자전 지원대 등에서 90년대 말~2000년대 초쯤해서 운용을 시작하였으며 현재 EA형과 EB형 총 10기를 운용 중이다. == 참고 링크 == * [[https://en.wikipedia.org/wiki/NAMC_YS-11|영문 위키백과 YS-11]] [[분류:항공기]][[분류:수송기]][[분류:항공 병기/현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