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일:Meunier+A6+mle+1916.png|width=700]] || || 원형 || || [[파일:9RcmM3E.png|width=700]] || || 카빈형 || A6 Meunier rifle == 제원 == ||<-2><table bordercolor=#353535><table align=right><bgcolor=#353535><table bgcolor=white> {{{#white '''A6 Meunier'''[br]''A6 뫼니에''}}} || || {{{#353535 '''종류'''}}} ||[[반자동소총]] || || {{{#353535 '''국가'''}}} ||[[프랑스]] || ||<-2><bgcolor=#353535> {{{#white '''역사'''}}} || || {{{#353535 '''개발'''}}} ||에티엔 뫼니에 || || {{{#353535 '''개발 년도'''}}} ||[[1890년]]~[[1910년]] || || {{{#353535 '''생산'''}}} ||툴레 군수공장 || || {{{#353535 '''생산 년도'''}}} ||[[1914년]]~[[1916년]] || || {{{#353535 '''생산 수'''}}} ||1,013정 || || {{{#353535 '''사용 년도'''}}} ||[[1914년]]~[[1916년]] || || {{{#353535 '''사용 국가'''}}} ||[[프랑스]] || || {{{#353535 '''사용된 전쟁'''}}} ||[[제1차 세계 대전]] || ||<-2><bgcolor=#353535> {{{#white '''제원'''}}} || || {{{#353535 '''구경'''}}} ||7mm || || {{{#353535 '''탄약'''}}} ||7×57mm 뫼니에 || || {{{#353535 '''급탄'''}}} ||5, 10, 15발 짜리 박스탄창[* 5발짜리 [[탄 클립|스트리퍼 클립]]으로 장전] || || {{{#353535 '''작동 방식'''}}} ||롱 리코일 || || {{{#353535 '''중량'''}}} ||4.03kg || || {{{#353535 '''전장'''}}} ||1,295mm [*A A6 뫼니에 원형][br]1,096mm [*B A6 뫼니에 카빈형] || || {{{#353535 '''총열 길이'''}}} ||715mm [*A A6 뫼니에 원형], 516mm [*B A6 뫼니에 카빈형] || || {{{#353535 '''총구 탄속'''}}} ||800m/s || == 개요 == [youtube(0t3Zjbt-HrE, width=600)] [[Forgotten Weapons]]의 리뷰 영상 [[프랑스군]]이 사용했던 [[반자동소총]]이다. STA No. 8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 상세 == 프랑스군은 1886년 [[르벨 M1886]]소총을 제식소총으로 채택했고 짧은 시간동안 기존의 [[그라 소총]]을 대체했지만 얼마 안가 독일에서 [[게베어 1888|위원회 소총]]이 채택되자 르벨 소총의 [[8 mm#s-1.1|8×50mmR]] 탄이 [[마우저]]사의 [[7.92 mm#s-2.1| 7.92×57mm]] 탄 보다 약하다고 판단하여 새로운 소총탄과 그 소총탄을 사용 할 소총을 개발할 계획을 세운다. [[1890년]]부터 나케-라로크 장군의 지휘로 개발이 시작되었으며 프랑스 정부 소속 연구기관 4곳[* 포병 기술지원국 (STA), 국제 사격 훈련소 (ENT), 베르사유 기술위원회 (CTV), 퓌토 기술지원국 (APX)]이 달려들어 7개의 신형 탄약과 22개의 시제형을 만들어 냈다. === 탄약 개발 === 6×58mm 뫼니에 1897 6×60mm ENT, 1900 6.5×60mm CAP 1905 6.5×61mm STA 1910 6.5×55.5mm 베르티에 1910 7×59mm STA 1912 7×57mm 뫼니에1912 이 중에서 채택된 탄환은 7×59mm STA 1912이다. === 소총 개발 === [[1894년]]부터 [[1913년]]까지, 수 많은 소총이 개발되었고 시험을 제식 채택을 위한 경쟁을 치뤘다. '''포병 기술지원국 (STA)''' Rifle A 1 later redesigned as Rifle A 4 Rifle A 2 STA 5 Rifle A 3 STA 6 Carbine A 4 Rifle A 5 STA 7 Rifle A 6 STA 8 '''국제 사격 훈련소 (ENT)''' Rifle B 1, ENT 1901 Rifle B 2 Rifle B 3 Rifle B 4 Rifle B 5 Rifle B 6 Rifle B 7 Rifle B 8 '''베르사유 기술위원회 (CTV)와 퓌토 기술지원국 (APX)이 공동 개발''' Rifle C 1 CTV 1 Rifle C 2 CTV Rifle C 3 APX 3 Rifle C 4 APX 4 Rifle C 5 Rifle C 6 Rifle C 7 Rifle C 8[* 짧은 길이 덕분에 인도차이나의 원주민 군사들에게 보급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인도차이나 소총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 중에 가장 뛰어난 성능을 보인 소총이 A6 STA 8이었고 약 3,000발을 잔고장 없이 사격했다고 한다. == 채택 == 소총의 채택 자체는 [[1910년]]에 이미 끝났지만 탄환은 아직 결정이 나지 않았고 탄피의 길이와 탄환의 발사속도를 두고 생산공장 간의 의견이 좁혀지지 않았다고 하며, 결국 기나긴 싸움 끝에 [[1913년]] 7×57mm 탄을 채택하는 것으로 끝났다. 이 병림픽스러운 논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프랑스군은 [[1차대전]]이 시작했을 즈음인 [[1914년]] 8월 정도에는 전체 병력의 절반에 다다르는 군사들에게 뫼니에 소총을 보급했을 것이고 프랑스군의 피해도 크게 줄었을 거란 시각도 있다. [[https://www.thefirearmblog.com/blog/2016/05/12/the-most-advanced-gun-in-the-world-in-1916-the-meunier-carbine/|카빈형]] 관련 설명 == 실전 == 생-테티엔 군수공장은 1914년 봄부터 매달 약 5,000정의 뫼니에 소총을 생산 할 거라는 계획을 세웠으나 전운이 도는 시기에 독일에게 최신기술의 소총이 보여지면 큰 문제가 일어날 거라는 군부의 생각때문에 대량생산은 무산되었고 결국 툴레 군수공장에서 1,013정 정도의 뫼니에 소총이 생산되었다. 툴레 공장에서 생산된 수량중 843정이 최전선으로 보내졌으나 총 자체가 복잡했고 과열이 자주된다거나 하는 잔고장이 있었고 무엇보다 독일의 압도적인 공세때문에 대부분 전장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결국 군부는 뫼니에 소총의 한계를 실감했고 뫼니에 소총을 대체할 반자동 소총을 다시 개발하기 위해 세 명의 총기 개발자[* 폴 리베롤, 샤를 쉬테르, 루이 쇼샤]에게 의뢰했고 그렇게 나온 소총이 [[RSC 소총]]이다. 뫼니에 소총보다 생산률도 더 높고[* 약 '''86,000정'''으로 1차대전에서의 반자동 소총 중에서는 가장 많은 생산량이다.] 총 자체도 르벨 소총을 재활용 한 것에 불과했기 때문에 내구성도 준수한데다가 야전에서도 다루기 쉬우며 무엇보다 신형 탄약이 아닌 르벨 소총에서도 쓰이던 [[8 mm#s-1.1|8×51mmR 르벨]]탄을 사용하기 때문에 뫼니에 소총은 아주 빠르게 RSC 소총으로 대체되어갔다. == 둘러보기 == [include(틀:1차 세계대전/연합군 보병장비)] [include(틀:보병장비 둘러보기)] [[분류:반자동 소총]][[분류:보병 무기/세계 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