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일:1919 Egypt Revolution.jpg|width=350]] || || 혁명을 위해 모인 군중들 || [목차] == 개요 == 1919년에 발발한 [[영국]]의 자국 통치에 발발한 [[이집트]]인들이 일으킨 [[독립]][[혁명]]이다. == 배경 == [[프랑스 제1제국]]이 이집트 점령지에서 물러난 이후, [[오스만 제국]]은 이집트에 대한 영유권을 명목상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805년 이후 [[무하마드 알리]]가 이집트 [[태수]]로 부임한 이후에 이집트에 대한 종주권이 약해졌다. 이집트는 이후 [[수에즈 운하]]를 건설하면서 대규모 [[토목]] 공사를 하게 되었고, 1869년 수에즈 운하를 완성한다. 그러나 이집트 경제는 막장이 되어 있었다. 이에 이집트는 수에즈 운하의 [[주식]]을 영국에 팔아치우기 시작하는데, 이 때문에 영국이 이 운하를 사실상 소유하게 된다. 이후 영국의 영향력이 강해지게 되자, 이집트의 [[민족주의자]]들은 분노하였고 [[아라비 파샤]]를 중심으로 반영봉기를 일으켰다. 그러나 영국은 이를 빌미로 자국의 [[영국군|군대]]를 파견해 봉기를 진압하고 1882년부터 비공식적인 [[보호국]]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후 이집트는 영국에서 기계로 뽑아온 [[면화]]가 많이 들어와 이집트의 주요 산업인 면화 산업을 파탄시켰고,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이집트는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영국의 공식적인 보호국인 이집트 술탄국이 설립되었다.[* 사실 영국은 이집트를 [[식민지]]로 병합시키려 했으나, 이집트인들이 [[독일 제국]]에 가담할까봐 두려워 공식적인 보호국 설립에 그쳤다.] 영국은 1차 대전 이후 이집트를 독립시켜주겠다고 한뒤, 이집트인들을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 강제 징병하였다. 그러나 영국은 전쟁 이후에도 이집트를 독립시켜주지 않았다. == 전개 == [[독일 제국]]이 패망하고 1차 대전이 종결되자, 자글룰 파샤가 [[파리 강화 회의]]에 이집트인 대표단을 참석시킬 것을 요구하였지만 거절당했다. 이후 독립운동가들은 [[와프드당]]을 창당하며 영국에 저항하려고 했으나, 영국은 독립운동가들이 이집트 대중들에게 영향을 줄까봐 1919년 3월 8일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해 [[몰타]]로 추방시켜 버린다. 분노한 이집트인들은 3월 15일경부터 반영 봉기를 일으켰다. 그 결과 3월 31일까지 800여명의 이집트인들이 영국군에 의해 사망했고, 마을과 철도 등의 시설이 파괴되었다. 4월부터는 학생, 지식인, 공무원, 농민 등까지 합세하고 영국군 부대를 공격하면서 더욱 과격해져 이집트 전역이 7월까지 마비되었다. 그해 12월 [[영국 총리]]인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가 조사단을 파견하고 1921년 2월 "이집트인들은 영국의 보호를 만족스럽지 못하게 여기고 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당연한 거 아니냐~~ 그런 결론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자, 1922년 2월 22일 대규모 봉기가 다시 한번 일어나려 했다. 영국은 이집트 술탄국을 [[이집트 왕국]]으로 독립시킬 것을 승인하였다. 이집트는 [[입헌군주제]] [[왕국]]으로 독립했고, 1923년 [[헌법]]을 제정했다. 몰타에 추방된 이집트 독립운동가들은 돌아왔고, 그중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인 자글룰 파샤는 이후 이집트의 [[총리]]가 된다. == 평가 == 이집트의 [[독립]]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이집트인들에게는 [[한국]]의 [[3.1 운동]]과 같이 취급되고 있다. 그러나 [[영국 치하 이집트|영국의 지배]]는 그 이후에도 사실상 계속되었기에 의미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근데 그 논리대로면 3.1 운동도 별 의미가 없다. 이집트는 그후 3년 내에 독립하기라도 했지-- [[분류:이집트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