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興天寺''' [[서울특별시]] [[성북구]] [[돈암동]]에 위치한 조선 시대의 사찰이다. 행정구역상 주소는 서울 성북구 흥천사길29(돈암2동 595). [[대한불교조계종]] 제1교구 [[조계사]]의 말사이다. == 연혁 == 흥천사는 원래 [[한양도성]]내에 있었다고 한다. [[조선]] [[태조(조선)|태조]] 5년([[1396년]]) 태조의 정비였던 [[신덕왕후]] [[강씨]]가 죽자 태조는 강씨의 능원인 [[정릉(서울 성북)|정릉]]을 도성내에 조성하고, 강씨의 원찰로써 정릉 동쪽에 흥천사를 지었다. 흥천사를 지은 후 태조 7년([[1398년]]) 7월에 열린 우란분재(盂蘭盆齋)를 직접 참여하거나, 8월에는 신덕왕후의 천도회(薦度會)에 사찰 승려들을 몸소 만나 시주하고 천도회를 주도하는 등 관심을 보였지만, 계모 신덕왕후를 거의 증오하다시피 했던[* 정확히는 신덕왕후처럼 왕실의 권위를 등에 업고 정치를 좌지우지하려는 외척들에 대한 경계였다.] [[태종(조선)|태종]]이 즉위한 뒤인 태종 3년([[1403년]])에 사찰에 딸린 전답과 노비의 수를 줄이고, 태종 8년([[1408년]])에는 절의 건물 170칸을 뜯어서 명 사신들의 객사인 태평관(太平館)을 짓는데 사용했다. 그나마 사찰 자체를 없앤 것은 아니어서 태종 10년([[1410년]]) 태조의 유지(遺旨)를 좇아 절을 수리하고 이듬해에는 사리각을 중수하였다. [[세종(조선)|세종]] 6년([[1424년]]) 선교양종 통합 당시 [[교종]]에 속하게 되었다. 세종 19년([[1437년]])부터 세종 23년([[1441년]]) 3월까지 왕명으로 사찰을 중수하였고, 절의 중수공사가 끝나자 5일 동안 경찬회(慶讚會)를 개최하였으며, 세종 25년([[1443년]]) 4월 [[회암사]](檜巖寺)[* 태조가 한때 머무르던 곳이기도 하다.] 주지로 있던 승려 만우(卍雨)를 데려다 이 절에 머무르게 하였다. 또한, 세종 29년([[1447년]]) [[안평대군]](安平大君)을 시켜 사리각에 불골(佛骨)을 봉안하게 하였다. [[세조(조선)|세조]] 8년([[1462년]])에는 범종을 만들어서 이 사찰에 봉안하였으며, 옛 흥천사 부지에 의경세자의 부인이자 며느리인 한씨의 사저를 지어주기도 했다.[* 이 사저는 훗날 [[월산대군]]의 사저로써 임진왜란 이후에는 [[정릉동 행궁|임시 행궁]]으로도 사용되었고 대한제국 시대에는 [[경운궁|황궁]]으로까지 격상된다.] [[예종(조선)|예종]] 1년([[1469년]]) 명의 왕과 왕후가 지어 보낸 불번(佛幡)을 이 절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성종(조선)|성종]] 11년([[1480년]]) 절을 다시 중수하였으며, [[연산군]] 10년([[1504년]]) 대궐 안에 있던 내원당(內願堂)을 이 절로 옮겼는데, 그 해 12월에 화재로 절이 소실되어 사리각만 남았다. [[중종(조선)|중종]] 5년([[1510년]])에는 이 사리각까지 불타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렸고, [[선조(조선)|선조]] 2년([[1569년]])) 사찰이 정릉과 너무 가깝다는 이유로 왕명으로 함취정(含翠亭) 옛 터로 절을 옮겨 지었다. 어찌어찌 명맥은 질기게도 이어져 온 셈이다.~~이런 사찰 [[백담사|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정조(조선)|정조]] 18년([[1794년]]) 이 절의 승려 성민(聖敏) · 경신(敬信) 등의 발원으로 현재의 위치로 옮겨 짓고 절 이름을 신흥사(神興寺)라 하였다. 그 뒤 [[헌종(조선)|헌종]] 12년([[1846년]]) 구봉(九峰)이 칠성각(七星閣)을 지었고, [[철종(조선)|철종]] 1년([[1849년]]) 성혜(性慧)가 적조암(寂照庵)을 창건하였으며, 철종 4년([[1853년]]) 대웅전(지금의 극락전)을, 철종 6년([[1855년]]) 명부전(冥府殿)을, [[고종 황제|고종]] 2년([[1865년]]) 대방(大房)과 요사채를 짓고 이름을 창건 당시의 이름인 흥천사로 되돌렸다. 현존하는 전각으로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多包系) 팔작지붕 건물인 극락보전(極樂寶殿)을 비롯하여 명부전(冥府殿)[* 명부전의 현판은 붉은 바탕에 금자로 쓴 것으로 [[흥선대원군]]의 글씨라고 한다.] · 용화전(龍華殿) · 칠성각 · 독성각(獨聖閣) · 만세루(萬歲樓) · 승방(僧房) · 대방 · 일주문(一柱門) · 종각(鐘閣) 등이 있다. 세조가 봉안했던 범종은 [[흥천사명 동종]]이라는 이름으로 현재는 [[덕수궁]]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의 보물]] 제1460호이다. 사찰 뒤편으로 구립 흥천어린이집과 느티나무어린이집 두 곳의 [[어린이집]]이 있다. 두 곳 모두 [[성북구]]에서 건립한 '''공립유치원'''이고 흥천사에서 어린이집 부지를 제공했으며 서울시에서 최초로 세워진 [[한옥]] 양식의 어린이집 건축물이기도 하다.[[http://weekly.donga.com/3/all/11/1429566/1|#]][[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41441|#]] 일제 시대의 시인 [[이상(작가)|이상]]이 1936년에 이곳에서 화가 김환기의 아내였던 수필가 김향안(본명 변동림)과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결혼식을 올리고 1년만에 이상은 결국 사망했다. [[https://archive.sb.go.kr/isbcc/home/u/story/view/328.do;jsessionid=4F47FAB90C14A842378F0527C924EF4D|#]] == 교통 == 서울 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역]]과 가깝다. 6번 출구로 나와서 천천히 걸어도 1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고, 아니면 [[마을버스(서울)|마을버스]] 22번을 타고 흥천사입구까지 가도 좋다. 다만 올라가는 길이 경사로이고 이 길이 좀 가팔라서 경사로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버거울 수도 있다. 흥천사 입구에는 350년 된 고목과 절까지 나 있는 가교가 놓여 있다. == 능침사찰 목록 == [include(틀:능침사찰)] == 같이보기 == * [[정릉(서울 성북)|정릉]]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흥천사명 동종, version=4)] [[분류:성북구]] [[분류:대한불교조계종 말사]] [[분류: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