黑齒俊 676년 ~ 706년 [목차] == 소개 == [[백제]] 출신의 당나라의 장수. [[흑치상지]]의 아들. 출생시기를 보아, 당나라에서 출생한 듯하다.[* 구 백제지역은 [[나당전쟁]] 이후 웅진도독부가 신라로부터 축출당했고 흑치상치 역시 663년 당나라에 항복했기 때문에, 당나라에서 태어난 백제 유민일 가능성이 크다.] == 생애 == 묘지명에 따르면 장군의 가문(=흑치씨)에서 가르침을 받아 일찍부터 무, 지략을 가졌으며, 어려서 깃발을 펼치거나 군대의 진을 그리면서 놀았고 먼 땅에서 공을 세우려는 계획을 가졌다고 한다. 또한 군대가 나아가는 것과 물러나는 것, 공격하는 것과 수비하는 것을 자유자재로 할 정도로 군사에 능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696년에 특별히 주청해서 이삼사를 따라 [[이진충]]을 토벌하는 것에 종군해 공을 세우면서 유격장군 행난주광무진장상주국에 임명되었으며, 흑치상지의 모반 혐의에 대한 무고함이 밝혀지면서 신원되면서 이전의 공로를 고려해 흑치준은 우표도위익부좌랑장상주국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복권된 아버지의 무덤을 699년 북망산으로 옮겼다. 이후에도 [[낙양]]에서 관직생활을 하다가 706년 5월 23일 3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8월 13일에 북망산에 언덕에 장례가 치러졌고 흑치상지의 옆에 묻히게 된다. == 기타 == 흑치준의 여동생 낙랑군부인(樂浪郡夫人) 흑치씨는 [[백제]]부흥군 관련 인사로 추정되는 [[물부순]](勿部珣)과 결혼했다. 중국 측에도 기록이 남아있지만, 대중에게는 1929년 흑치상지와 함께 무덤이 발굴되면서 알려졌다. 묘지명의 기록에 따르면 흑치준은 흑치상지의 장자로 기록되어 있는데, 흑치상지는 당에 투항한 이후 뒤늦게 가정을 꾸렸거나 전란으로 잃었을 가능성이 크다. == 같이보기 == * [[흑치상지]] [[분류: 백제의 인물]] [[분류:수당시대/인물]] [[분류: 백제의 유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