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조선 왕세자빈)] 1410~?[* 1414년생인 [[문종(조선)|문종]]보다 4살 더 많았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의 [[왕세자빈]]. [[세종대왕]]의 첫 번째 큰며느리이고, [[왕세자]] 시절 [[문종(조선)|문종]]의 첫 정실부인이다. [[안동 김씨]][* [[세도정치]]로 유명한 신안동이 아니라 구안동이다] 가문 출신으로, 상호군 김오문의 딸이자 [[태종(조선)|태종]]의 [[후궁]]인 [[명빈 김씨]]의 조카이다. [[세종(조선)|세종]]의 누나인 경정공주의 사위가 휘빈의 오빠 김중엄이였으므로 이런 가문의 배경으로 1427년, 세자 향(후일 [[문종(조선)|문종]])의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궁에 들어왔다. 야사에 휘빈이 박색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세자는 휘빈보다는 효동, 덕금이라는 [[궁녀]]들을 더 좋아하였다. 휘빈은 남자에게 사랑받는 술법을 시녀 호초(胡椒)에게 물었다. 호초는 세자의 수발을 드는 궁녀의 신발 앞코를 잘라 그것을 태워 재로 만든 다음 세자의 술에 넣어 마시게 하면 세자가 궁녀들을 잊고 세자빈만 찾게 될 것이라는 내용과, 암수 뱀이 교미할 때 나오는 기운을 손수건에 묻혀서 가지고 있으면 세자를 혹하게 할 수 있다는 내용을 이야기하였다. >'남자가 좋아하는 부인의 신을 베어다가 불태워서 가루를 만들어 가지고 술에 타서 남자에게 마시게 하면 내가 사랑을 받게 되고 저쪽 여자는 멀어져서 배척을 받는다' 하오니, '효동, 덕금 두 시녀의 신을 가지고 시험해 보는것이 좋겠습니다.' 했다. 효동과 덕금 두 여인은 김씨가 시기하는 자이다. 김씨는 즉시 그 두 여인의 신을 자기 손으로 베어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이나 하여 그 술법을 써보고자 하였으나 그러한 틈을 얻지 못하였다고 한다. 호초가 또 말하기를, '그 뒤에 주빈께서 다시 묻기를, 그 밖에 또 무슨 술법이 있느냐' 고 하기에 제가 또 가르쳐 말하기를, '두 뱀이 교접할때 흘린 정기를 수건으로 닦아서 차고 있으면, 반드시 남자의 사랑을 받는다.' 하였습니다. >---- ><<세종실록>> 11년 7월 20일 이상한 술법을 행했다는 흔적이 나오자 [[소헌왕후]]가 세자빈의 시녀 이호초를 국문해 세자빈이 술법을 행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소헌왕후가 이를 세자빈에게 추궁하자 김씨는 이를 순순히 인정하였고, 중전으로부터 이 사실을 전해들은 세종대왕은 격노하여 시녀 호초를 [[참수]]하고[* [[연좌제]]로 이어질 수 있었는데 호초의 아버지인 원주목사 이반을 파직하는 선에서 끝냈다. 호초의 오빠인 호조좌랑 이종인은 관직을 유지하였다.] 휘빈 김씨를 폐서인하여 궁에서 내쫓았다. [[성종(조선)|성종]] 때 [[폐비 윤씨]]를 폐하려하자 [[임사홍]]이 반대하였는데, 이때 근거 중 하나가 "[[세종대왕]]께서도 휘빈을 쫓아내고 나중에 후회하셨습니다."였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세종은 성급히 휘빈을 쫓아낸 걸 후회했다. 두 번째 세자빈인 [[순빈 봉씨]]가 궁녀와 동침하는 황당한 사건을 일으켰기 이렇게 생각했을 수 있다. [[분류:조선의 왕세자빈]] [[분류:안동 김씨(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