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조선 추존 왕비)]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94153E>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94153E 0%, #94153E 20%, #94153E 80%, #94153E)" '''{{{#ffd400 조선 효순왕후 조씨 관련 틀}}}'''}}}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F7F7F7 0%, #FFF 20%, #FFF 80%, #F7F7F7)"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color:#555555; margin: -6px -1px" ---- [include(틀:역대 조선 왕세자빈)] ---- [include(틀:대한제국의 황후)]}}}}}}}}} || ----- ||<-2><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bf1400><tablebgcolor=#fff,#1f202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c19c22, #e3ba62 20%, #e3ba62 80%, #c19c22)" {{{#b22222 '''대한제국 추존 황후'''[br]{{{+1 '''孝純昭皇后 | 효순소황후'''}}}}}}}}}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972000, #bf1400 20%, #bf1400 80%, #972000)" {{{#ffd400 '''조선 추존 왕비'''[br]{{{+1 '''孝純王后 | 효순왕후'''}}}}}}}}} || ||<-2>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존호 · 휘호 · 시호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5px -11px" ||<-2><tablewidth=100%><tablebgcolor=#fff,#1f2023> 휘정현숙효순왕후[br](徽貞賢淑孝純王后) || ||<width=50><colbgcolor=#bf1400> '''[[휘호|{{{#ffd400 휘호}}}]]''' ||휘정현숙(徽貞賢淑) || || '''[[시호|{{{#ffd400 시호}}}]]''' ||효순왕후(孝純王后) ||}}}}}}}}} || ||<width=50><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출생''' ||[[1715년]] || || '''사망''' ||[[1751년]] || || '''[[능묘|{{{#ffd400 능묘}}}]]''' ||[[영릉]](永陵) || [목차] [clearfix] == 개요 == [[영조]]의 장남 [[효장세자]]의 아내. 세자가 요절하였으나 이후 [[정조(조선)|정조]]가 남편 [[진종(조선)|진종]]의 양아들이 되어 추존되었기 때문에 그녀 역시 사후 왕후로 추존되었다. == 생애 == 1715년 [[풍양 조씨]] 조문명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 조문명과 삼촌 조현명은 왕세제 시절 영조를 보호한 인물로, 완론탕평을 주도한 영조의 측근이다.] 1727년 [[영조]]의 장남 [[효장세자]]의 빈으로 간택되었으나, 바로 이듬해 세자가 요절하면서 14살에 과부가 되었다. 1735년 [[사도세자]]가 태어나자 영조로부터 현빈(賢嬪)이라는 빈호(嬪號)를 받았다. > 이날 임금이 명하여 시임 대신·원임 대신과 양관(兩館)·정부(政府)·육조 참판 이상을 불러 빈청(賓廳)에서 회의하게 하였는데, 효빈(孝嬪)·철빈(哲嬪)·소빈(昭嬪)이라는 삼망(三望)을 갖추어 올리니, 의망(擬望)을 더하라고 명하였다. 또 장빈(莊嬪)·단빈(端嬪)·사빈(思嬪)으로써 의망을 더하였으나, 임금이 여러 글자의 음과 뜻이 모두 아름답지 못하다고 하여 손수 ‘현(賢)’자를 써서 내렸다. 영조가 정쟁에 휘말려 목숨을 위협받을 때 주변의 남자들은 혈육도 못 믿을 지경이어서인지 남자에게는 까다로웠다. 대신 그 와중에 자신에게 호의적이던 사람들이 주로 궁중의 여성들이었던 탓에, 유난히 주변 여성들에 대해서는 관대한 면이 있었다. 실제로 영조의 불같고도 깐깐한 성격을 달래서 가정의 화목을 지키는 데 여성들의 역할이 컸다. 정비인 [[정성왕후]] 서씨, 며느리였던 현빈 조씨, 딸 [[화평옹주]], [[숙종(조선)|숙종]]의 계비이자 영조의 법적 어머니인 [[인원왕후]] 등이 영조에게 치이는 사도세자를 그나마 감싸주었는데, 이 여성들이 줄줄이 죽은 후 사도세자에 대한 영조의 히스테리도 심해졌다. 이 점은 마더 컴플렉스로 여성에 대한 스트레스가 쌓여서 유난히 여성에게 적대적이던 [[성종(조선)|성종]]과 비교된다. 그러나 현빈 본인도 남편처럼 병을 얻어서 3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시호는 효순빈(孝純嬪). 영조는 현빈을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두 자식[* 다른 한명은 [[화평옹주]].] 중 한 명이라고 했으며, 현빈의 사망 후에도 생일을 챙겼다. 또 영조는 현빈이 삶아주는 밤을 좋아해서 자주 며느리의 처소에 찾아가 밤을 얻어먹었고, 현빈의 죽음을 추모하는 시에도 '나를 위해 준비한 밤이 아직 소반 위에 있다'는 대목이 나온다. 사후 남편 [[효장세자]]의 묘에 합장되었으며, 영조가 [[정조(조선)|정조]]를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시켰으므로 정조 즉위 후 효장세자가 진종(眞宗)으로 추존됨에 따라 함께 효순왕후로 추존되었다. 이후 [[1908년]] [[대한제국]] [[순종황제]]에 의해 다시 황후로 추존되면서 효순소황후(孝純昭皇后)로 불리게 되었다. == 그 외 == [[이별가:효장세자빈 이야기]]의 여주인공. 아라라는 이름으로 나오며,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되었다는 점을 반영해 남녀관계에 무지했다가 유진한과의 만남으로 점차 사랑에 눈을 뜬다. [[분류:조선의 왕비]] [[분류:풍양 조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