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조선의 왕자군]][[분류:서출]][[분류:1481년 출생]][[분류:1512년 사망]][[분류:전주 이씨 회산군파]] [include(틀:조선의 왕자/목조 ~ 연산군)] ||<-3><tablealign=right><table width=400><tablebordercolor=#94153E><#94153E> {{{#gold '''조선 성종의 왕자'''[br]{{{+1 '''회산군[br] 檜山君'''}}}}}} || ||<-2><width=30%><#94153E> '''[[군호|{{{#gold 군호}}}]]''' ||<(> 회산군(檜山君)[* 군호는 [[경상남도]] [[창원시|창원]]의 별호였던 ‘회산(檜山)’에서 유래했다.] || ||||<:><#94153E> '''[[시호|{{{#gold 시호}}}]]''' ||<(> 정간(貞簡) || ||||<:><#94153E> '''[[품계|{{{#gold 품계}}}]]''' ||<(> 현록대부(顯祿大夫) || ||||<:><#94153E> '''[[본관|{{{#gold 본관}}}]]''' ||<(> [[전주 이씨|전주]](全州) || ||||<:><#94153E> '''[[이름|{{{#gold 이름}}}]]''' ||<(> 염(恬) || ||||<:><#94153E> '''[[아호|{{{#gold 호}}}]]''' ||<(> 보익당(輔翼堂) || ||||<:><#94153E> '''{{{#gold 부왕}}}''' ||<(> [[성종(조선)|조선 성종]] || ||||<:><#94153E> '''{{{#gold 생모}}}''' ||<(> 숙의 홍씨(淑儀 洪氏)|| ||||<:><#94153E> '''{{{#gold 부인}}}''' ||<(> 영원군부인 죽산 안씨(竹山 安氏) || ||||<:><#94153E> '''{{{#gold 자녀}}}''' ||<(> 1남 1녀[* 후술하겠지만 1남은 [[양자(가족)|양자]]이다.] || ||||<:><#94153E> '''{{{#gold 묘소}}}'''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 ||<|2><:><#94153E> '''{{{#gold 생몰[br]기간}}}''' ||<:><#94153E> '''[[음력|{{{#gold 음력}}}]]''' ||[[1481년]] [[미상]] ~ [[1512년]] [[미상]] || ||<:><#94153E> '''[[태양력|{{{#gold 양력}}}]]''' ||[[1481년]] [[미상]] ~ [[1512년]] [[미상]] || [목차] [clearfix] == 개요 == 조선 중기의 왕족. [[성종(조선)|성종]]의 5남이자 서4남으로, 어머니는 [[숙의 홍씨]]이다.[* 서삼촌이 실존인물 [[홍길동#s-2]]이다.] 친남매로는 누나 혜숙옹주와 형 [[완원군]] 및 남동생 [[견성군]], [[익양군]], [[경명군]], [[운천군]], [[양원군]], 그리고 여동생 정순옹주와 정숙옹주가 있다. [[전주 이씨]] 회산군파의 파시조이다.[* 전주이씨 회산군파 후손들은 종통으로는 회산군파이지만 실제 혈통으로는 친동생 견성군의 차남 계산군의 직계 후손들이다.] == 생애 == 평소에 원칙과 예를 중요시하여 자손들에게 왕을 섬김에 충성을 다하고 백성을 다스림에 공정하며 형제간에 우애하라는 가르침을 남겼다고 한다. 그리고 강직한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큰형 [[연산군]]에게 간언하다 사약을 받을 뻔했지만 [[인수대비]]의 배려로 [[궁궐]] 밖으로 쫓겨나는 선에서 그친 일도 있었고, 연산군의 폭정이 극에 달하자 1506년(연산군 12년)에는 [[이복동생]] [[영산군]] 및 중신들과 함께 [[쿠데타|반정]]을 계획하기도 했으나 [[중종반정]]으로 무위에 그친 일도 있었다.[* 그래도 형은 형이라고, 연산군이 폐위된 후 몇 달 뒤에 죽자 중종에게 고하여 [[교동도|강화 교동]](연산군 유배지)에 예를 갖추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또한 [[중종(조선)|중종]] 때 [[김안로]]가 왕에게 간교한 말을 하는 걸 보고 면전에서 대놓고 크게 꾸짖기도 했다고 한다.[[http://www.rfo.co.kr/view_party.php?refnum=070|#]] == 사망 == 1512년([[중종(조선)|중종]] 7년)에[* 음력 10월 26일.] 사망했다. 향년 31세[* [[세는나이]] 32세.] [[무덤|묘]]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다. == 여담 == * 1505년([[연산군]] 11년) 6월에, [[궁궐]]과 가까운 회산군과 [[견성군]]의 집을 빼앗아 그곳에 가흥청을 두게 하고 대신 견성군과 회산군에게는 다른 집을 마련해주었다고 한다. 가흥청(假興淸)은 [[연산군]]이 [[전국]]에서 소집한 [[기생]] 중 아직 궁궐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을 이르던 말이다.[* 가흥청 중에서 다시 선별된 기생들을 흥청(興淸)이라 불렀는데, 바로 우리가 아는 그 흥청망청의 [[어원]]이다.] * 평소에 연산군은 동생 [[영산군]]의 용맹함과 청렴하고 강직한 성품을 시기했다. 그래서 [[숭례문]] 앞부터 [[말(동물)|말]]을 타고 달려서 연산군 자신보다 먼저 입궐하면 살고, 늦으면 죽는다는 내기를 강제로 걸었다. 이에 영산군이 괴로워하던 중 회산군이 영산군에게 빠른 말을 구해줘 화를 피하게 했다.[[http://www.rfo.co.kr/view_party.php?refnum=070|#]] 회산군의 우애심을 드러내는 일화이다. == 가족과 후손 == 영원군부인 죽산 안씨와 혼인하여 슬하에 1녀를 두었다. 딸은 [[동래 정씨]] 정수후와 혼인하였다. 슬하에 아들이 없어 동생 견성군의 차남 계산군 이수계(桂山君 李壽誡)가 [[양자(가족)|양자]]로 입적했다. 계산군은 4남 3녀를 낳았고 이들의 후손이 번성하여 오늘날의 [[전주 이씨]] 회산군파를 이루고 있다. 제61대 법무부 장관을 역임했던 [[이귀남]]이 회산군의 후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