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華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주천군 사람으로 220년에 군사를 일으켜 스스로 장군이라 칭하면서 안준, 화란, [[국연#s-2|국연]] 등과 서로 싸웠으며, [[조조]]가 죽고 [[조비]]가 즉위하면서 장진이 장액에서 군수를 체포하고 군사를 일으키자 이에 호응해 태수 신기의 통치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를 잡아두면서 반란을 일으켰다. 장취가 주천으로 오자 억류해 날붙아로 위협했으며, [[소칙]]이 국연을 유인해 죽이고 그 군대를 격파하자 황화는 두려워 잡아 두었던 사람을 석방시키고 항복했다. 251년에 오군이 여수를 막는 것을 기회로 [[왕릉(삼국지)|왕릉]]이 군사를 일으키려고 했는데, 왕릉이 오군의 토벌을 상주했다가 조서에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답장을 받았다. 왕릉이 양홍을 파견해 [[조방#s-1|조방]]을 폐위하는 일을 알리자 황화는 양홍과 함께 이 일을 [[사마의]]에게 알렸으며, 황화 이전에는 왕릉과 함께 일을 꾸미던 [[영호우]]였지만, 질병으로 사망했기에 황화가 후임으로 연주자사가 된 것이다. 왕릉은 군사를 일으키기도 전에 일이 발각되어 사마의에게 추궁받았으며, 결국 왕릉은 수도에 도착하기 전에 독약으로 자살했다. [[태평광기]]에서는 동신(董莘)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 창작물에서 == [[진삼국무쌍 8]]에서는 제12장인 조위 정변의 왕릉의 난에서 반역자 설득이라는 임무로 양강과 함께 격파해야 할 대상이며,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무장과 만나면 왕릉을 따라가도 되냐면서 어떻게 할 지 고민하다가 격파하면 강함에 놀라면서 사마 일족에게 거스를 수 없다면서 투항하는 걸로 나온다. 수춘으로 이동해서 왕릉의 계획이 성공할 리 없다면서 사마 일족에게 붙었고 문을 열라고 해서 수춘성의 병사들의 동요를 이끌어낸다. [[분류:위나라의 인물]] [[분류:삼국시대(중국)의 반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