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tablebordercolor=#ae1932><bgcolor=#ae1932><table align=center><tablewidth=100%><width=100%>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width=30&height=30]]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ffffff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 ||<width=30%> --24호-- ||<|2> ← ||<width=30%> '''25호''' ||<|2> → ||<width=30%> 26호 || || --석불좌상[* 2018년 4월 20일, 보물 제1977호로 승격되며 해지.]-- || '''황학정''' || 석파정 || [[파일:external/tong.visitkorea.or.kr/1568123_image2_1.jpg]] 黃鶴亭 [목차] == 개괄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 [[인왕산]] 아래에 위치해 있는 [[대한제국]] 때 세워진 누각 및 정자. [[조선]]왕조 시절부터 오랫동안 이어져온 유일한 국궁(國弓) 터이며 원래는 [[경희궁]] 내(內)에 있었지만 1922년 [[일본 제국|일제]]가 사직단(社稷壇)을 [[사직공원(서울)|사직공원]]으로 변모시키면서 지금의 인왕산 아래로 자리를 옮겼다. 현재 사단법인 황학정이 관리운영하고 있다. [[대한제국]] 때인 1898년 [[고종(대한제국)|고종]]의 명령에 의거하여 [[경희궁]] 내(內) '[[경희궁 회상전|회상전(會祥殿)]] 담장에 있던 궁술 연습장으로 사용되었던 사정(射亭)으로 한때 [[고종(대한제국)|고종]]이 이곳에서 직접 활쏘기를 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때문에 황학정에서는 고종 황제를 초대 사두(射頭)로 친다. 사두는 활터의 우두머리로 활터를 대표하는 수장이다.] 그러나 1922년 일제가 이곳에 학교를 짓는다는 이유로 [[경희궁]]을 철거하고 [[경희궁]] 건물이 일반에게 불하될 때 이를 받아 지금의 [[서울특별시]] [[사직공원(서울)|사직공원]](사직단) 북쪽 [[인왕산]] 아래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는데 이곳은 그 전까지는 국궁 터로 있었던 '등과정(登科亭)' 의 옛 터가 있었던 곳이었다. [[조선]]왕조 때 궁술 연습을 목적으로 한 국궁터 역할을 한 사정이 5개가 있었으나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고 1894년 [[갑오개혁]] 등으로 인하여 활쏘기 무예가 쇠퇴하게 되어 활터가 폐지되었고 [[일제강점기]] 때는 [[조선총독부]]가 활쏘기 금지령을 내리기도 하였지만 유일하게 황학정만이 그 명맥을 잇게 되었다. 1950년 [[6.25 전쟁]] 때 일부 파괴 및 훼손이 되어 활쏘기가 중단되기도 했지만 이후 보수공사 등을 통해 활쏘기가 재개되기도 하였다. 1974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25호로 지정되었다. == 특징 == 주변에는 인왕산 절경이 바로 있으며 정자 앞에 활쏘기터가 있었고 동남향을 기준으로 만든 한옥풍 정자로 되어있다. 정자 벽면에는 [[태극기]]와 [[고종(대한제국)|고종]]의 영정사진이 내걸려 있으며 정자 앞에는 '黃鶴亭' 이라는 간판이 내걸려 있고 멀리 국궁 화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지금도 국궁인들이 이 곳에서 활쏘기를 하고 있으며 황학정 궁사(弓射)들의 활쏘기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황학정 옆에는 '한천각(閑天閣)' 이라는 팔각정 정자가 있으며 정자 옆에 인왕산 등산로 입구가 있다. [[분류: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분류:경희궁]][[분류:서울특별시의 건축물]][[분류:종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