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5 黃初/皇初}}}''' 중국의 연호 중 하나이다. == 중국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위(삼국시대)|조위]]의 초대 황제 [[조비]]가 사용한 연호 (黃初) == ||<-2><tablewidth=100%><:><#AA1111> '''[[후한|{{{#ece5b6 후한}}}]]{{{#ece5b6 의}}} [[연호|{{{#ece5b6 연호}}}]]''' ||<-3><:><#00008B> '''[[위(삼국시대)|{{{#ece5b6 조위}}}]]{{{#ece5b6 의}}} [[연호|{{{#ece5b6 연호}}}]]''' || ||<width=30%><:> [[헌제]][br]연강(延康)[br],,([[220년]]),, ||<:> {{{+1 ←}}} ||<width=30%><:><bgcolor=#00008B> '''{{{#ece5b6 [[조비|{{{#ece5b6 문제}}}]][br]황초(黃初)[br],,([[220년|{{{#ece5b6 220년}}}]] ~ [[226년|{{{#ece5b6 226년}}}]]),,}}}''' ||<:> {{{+1 →}}} ||<:><width=30%> [[조예|명제]][br]태화(太和)[br],,([[227년]] ~ [[233년]]),, || 220년 [[조조]]의 뒤를 이은 [[조비]]가 [[후한]]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 유협으로부터 선양을 받아 [[위(삼국시대)|위나라]]를 건국한 이후 선포한 연호로, 위나라의 첫 번째 연호이다. 사용 기간은 220년부터 226년까지이다. 황초 연호는 오행설에서 비롯된 것으로, 음양오행설의 원리에 따라 화덕의 나라 다음은 토덕의 나라가 들어선다는 원리로, 조비는 위나라의 건국을 정당화하며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였다. 또한 황초 연간에는 위나라에서 조비가 3차례의 남정을 주도하였지만 모두 실패하기도 하였다. === 주요 사건 === * 황초 원년(220년): 조비가 헌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위나라를 건국하고 황초 연호를 선포함. * 황초 7년(226년): 조비가 사망하고 태자 [[조예]]가 위나라의 제2대 황제로 즉위함. * '''[[조비의 남정]]''' == [[오호십육국시대]] [[후진(오호십육국시대)|후진]] 제2대 황제 요흥이 사용한 연호 == ||<-5><tablewidth=100%><:><bgcolor=#9966CC> '''[[후진(오호십육국시대)|{{{#1B1B1B 후진}}}]]{{{#1B1B1B 의}}} [[연호|{{{#1B1B1B 연호}}}]]''' || ||<width=30%><:> [[요장|무소제]][br]건초(建初)[br],,([[386년]] ~ [[394년]]),, ||<:> {{{+1 →}}} ||<width=30%><:><bgcolor=#9966CC> '''{{{#1B1B1B 문환제[br]황초(皇初)[br],,([[394년|{{{#1B1B1B 394년}}}]] ~ [[399년|{{{#1B1B1B 399년}}}]]),,}}}''' ||<:> {{{+1 →}}} ||<:><width=30%> 문환제[br]홍시(弘始)[br],,([[399년]] ~ [[416년]]),, || 394년 [[오호십육국시대]] [[후진(오호십육국시대)|후진]]의 제2대 황제인 문환제 요흥이 사용한 연호로 394년부터 399년까지 사용되었다. [[분류:연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