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건국훈장 애족장]][[분류:영천 황보씨]][[분류:영천시 출신 인물]][[분류:1882년 출생]][[분류:1963년 사망]] || 성명 ||<(> 황보근(皇甫覲) || || 초명 ||<(> 황보용(皇甫瑢) || || 자 ||<(> 원직(元直) || || 본관 ||<(> [[황보|영천 황보씨]] || || 생몰 ||<(> [[1882년]] [[11월 17일]] ~ [[1963년]] [[5월 3일]] || || [[출생지]] ||<(> 경상도 신녕현 지곡면 구전동[br](현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구전리)[* [[황보|영천 황보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황보선]]도 이 마을 출신이다.] ||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황보근은 1882년 11월 17일 경상도 신녕현 지곡면 구전동(현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구전리)에서 [[계유정난]] 때 참살된 [[영의정]] [[황보인]]의 17세손으로 태어났다. 그는 1906년 3월 [[고종황제]]의 밀명을 받은 [[정환직]]과 그의 아들 [[정용기(독립운동가)|정용기]]가 [[http://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mngNo=8935|이한구]](李韓久)·[[http://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mngNo=3734|정순기]](鄭純基)·[[손영각]] 등과 함께 산남의진(山南義陣)을 결성하자 이에 가담하여 [[권규섭]]·성낙희(成樂熙)·성낙호(成樂皥)·이하수(李河秀)·양석용(楊錫溶) 등과 함께 신녕 지역의 연락 책임자를 맡아 활동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 24세이었으므로 군중 내에서 그를 24장(將)이라 하였다. 그후 선봉장이 되어 [[영덕군|영덕]]·영덕군 강구면·[[흥해읍|흥해]] 등지에서 수차례 일본군과의 교전에 참전하여 그들을 격퇴시켰으며 곧 포장(砲將)으로 임명되어 맹활약하던 그는 1907년 8월 정용기를 비롯한 산남의진 본진 100여 명과 함께 [[죽장면|죽장]]의 매현리로 들어가 9월 초 [[강릉시|강릉]]으로 북상을 준비했다. 그러나 일본군 영천수비대의 역습을 받고 입암(立巖)[* 현 [[포항시]] [[북구(포항)|북구]] [[죽장면]] 입암리.] 전투에서 적과 치열한 접전을 벌이다가 의병장 정용기는 순국하고, 황보근은 부상을 입고 귀향하여 치료하던 중 체포당했다. 체포되었을 당시 17번이나 형틀에 포승줄로 묶였는데도 불구하고 조금도 굴복하지 않았고, 이후 석방되자 은거하다가 [[8.15 광복]]을 맞았다. 이후 1963년 5월 3일 별세하였다. 사후 198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