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건국포장]][[분류:장수 황씨]][[분류:상주시 출신 인물]][[분류:1913년 출생]][[분류:1954년 사망]] ||||<table align=right><bgcolor=white><:>[[파일:황계주.jpg|width=300px]] || || 성명 ||<(> 황계주(黃啓周) || || 본관 ||<(> [[황(성씨)|장수 황씨]][* 21세 주(周) 항렬.] || || 생몰 ||<(> [[1913년]] [[11월 16일]] ~ [[1954년]] [[3월 20일]] || || [[출생지]] ||<(> [[경상북도]] [[상주시|상주군]] 모동면 신천리[* 인근의 덕곡리·용호리와 함께 [[황(성씨)|장수 황씨]] 집성촌이다.] || || 추서 ||<(> 건국포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5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황계주는 1913년 11월 16일 경상북도 상주군(현 상주시) 모동면 신천리에서 황재걸(黃在傑)의 5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일찍이 [[일본]]으로 유학하였으며, 1939년 2월 일본 [[야마구치대학|야마구치고등상업학교]] 재학 중 [[내선일체]] 반대, 조선어 폐지, [[창씨개명]] 및 [[학도 특별지원병 제도]] 반대 등을 목적으로 비밀결사 여우회(麗友會)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한국 민족이 처해 있는 생활 환경을 비판하고, 억압과 착취의 이중고로부터 해방은 조국 독립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고 판단하고, ① 여우회를 단순한 친목회에 초탈하여 민족주의 단체로 만들 것, ② 신입생에 대해 민족의식 계몽에 노력할 것, ③ 동지의 결집을 확대하고 강고히 할 것, ④ 조선 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여 독립 쟁취를 확신시킬 것, ⑤ [[중일전쟁]]으로 일본이 국제적 고립을 면치 못하여 결국 패전할 것, ⑥ 해외 독립운동세력과 연계할 것, ⑦ 민족 지도자가 되기 위해 힘쓸 것 등을 투쟁 방침으로 정하였다. 그는 졸업식 송별회 및 신입생 환영회 등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신명을 다할 것을 맹세하며 활동하다가, 이 사실이 발각되면서 1939년 7월 10일 체포되어 1940년 3월 12일 검사국으로 송국되었다. 그해 10월 한국으로 추방되었다.[[http://www.kiho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794557|#]] [[경성부]] 사직정(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서울)|사직동]])에 거주하면서 동지들과 조선 독립운동의 실행 방법 등을 모색하다가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1944년 10월 22일 동대문경찰서에 구금되기도 했다. 이후 [[8.15 광복]]을 맞았으며, 1954년 3월 20일 별세하였다. 200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