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동음의어로 쓰이는 수원행궁, rd1=수원행궁(동음이의어))] [include(틀:조선의 별궁과 궁가)] [include(틀:조선의 행궁)] ||<-5><tablewidth=100%><bgcolor=#c0c0c0> '''종로 종주''' || ||<width=30%> [[장안문]] || {{{+1 ↔ }}} ||<width=30%> [[종로(수원)|종로]]/'''화성행궁''' || {{{+1 ↔ }}} ||<width=30%> [[팔달문]] || ||<tablewidth=360><tablealign=right><bgcolor=#fff><tablebordercolor=#315288> [[파일:정부상징.svg|width=28]] '''[[대한민국의 사적|{{{#f39100 대한민국의 사적}}}]]''' '''{{{#f39100 제478호}}}''' || ||<bgcolor=#315288> {{{+1 {{{#fff '''수원 화성행궁'''}}}}}} {{{-1 {{{#fff 水原 華城行宮}}}}}} || ||<bgcolor=#fff> {{{#!wiki style="margin: 0 -12px; border-right: 2px solid transparent; border-left: 2px solid transparent"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1px; margin-top: -6px; margin-bottom: -5px" ||<tablewidth=100%><tablebgcolor=#315288><width=22%> '''{{{#fff 소재지}}}''' ||<bgcolor=#fff>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6-2번지 || || '''{{{#fff 분류}}}''' ||<bgcolor=#fff>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궁궐·관아 / 궁궐 || || '''{{{#fff 면적}}}''' ||<bgcolor=#fff> 81,351㎡ || || '''{{{#fff 지정연도}}}''' ||<bgcolor=#fff> 2007년 6월 8일 || || '''{{{#fff 제작시기}}}''' ||<bgcolor=#fff> [[조선시대]] || ||<-2> '''{{{#fff 위치}}}''' || [include(틀:지도, 장소=경기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6-2번지, 너비=360)]}}}}}}}}} || [[파일:attachment/hwa12.jpg|width=550]] [[파일:external/file.dailian.co.kr/news1204187293_102985_1_m.jpg]] 정문인 신풍루와 뒤로 바라보이는 화성 행궁. [목차] == 개요 == 水原 華城行宮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25 ([[남창동(수원)|남창동]])에 위치해 있는 행궁으로, [[대한민국의 사적|사적]] 제478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22대 임금 [[정조(조선)|정조]]가 세운 [[수원화성]] 내부에 건립된 행궁으로, 건립 당시는 21개의 건물 576칸 규모로 지어졌다. == 용도 == 주로 조선의 국왕이 머물던 임시 처소로서, 정조 이외에도 [[순조]], [[헌종(조선)|헌종]], [[고종(대한제국)|고종]] 등 역대 왕들이 화성 행궁을 찾아 이곳에 머물렀다. 평소에는 [[수원시|수원]] 부사 또는 유수가 집무하던 관아로서도 활용되던 곳이다. 화성 행궁은 조선 시대에 건립된 행궁 중 규모가 가장 크며, 수원 화성과 함께 정치적, 군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건축물이다. 화성 행궁은 조선 후기 정치와 군사 및 사회 문화의 변화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산이며 발굴 조사 및 복원 정비 사업을 통해 조선 시대 행궁의 모습을 재현할 수 있게 된 중요한 문화 유적으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크다. == 역사 == [[파일:external/b7d2b643f0873aaf4947e6f3197e78a45709c01a8d49dc85e6609f0774222b0b.jpg]] 화성 행궁은 처음부터 별도의 독립된 건물로 일시에 건축된 것이 아니라 행궁과 수원부 신읍치의 관아 건물을 확장·증측하는 가운데 조성되었다. 주로 [[수원화성]]을 건설하는데 관심을 기울이던 [[정조(조선)|정조]] 시기에 많이 증축되었다. 이 때문에 각 건물마다 지어진 시기가 다른데, 그 과정이 [[화성성역의궤]]에 잘 기록되어 있다. 정조 사망 직후인 순조 1년(1801년)에는 행궁 옆에 화령전을 건립하여 정조의 진영을 봉안했다. [[일제강점기]] 동안 행궁의 건물들은 무참히 헐려나갔으며[* 다만 낙남헌은 헐리지 않고 [[일제강점기]] 동안 계속 수원[[군청]]으로 쓰였다.], 그 부지에는 신풍초등학교를 비롯한 많은 근대 건물들이 자리잡게 되었다. 1997년에 [[수원화성]]이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된 이후로는 수원시에서 1999년부터 복원 사업을 펼쳤고, 꾸준하게 화성 행궁지의 건물들을 매입하여 철거한 뒤 행궁 건물들을 복원해 나갔다. 이미 1차적으로 복원이 완료되어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관람료는 1,500원 정도다. 2007년 6월 8일에 사적 제478호로 지정되었다. == 훼손 및 복원 ==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엄청난 훼손을 당했지만 지금은 복원 사업을 통해 옛 모습을 상당 부분 되찾았다. 현재도 복원이 진행 중이며 2003년 7월 말 봉수당, 득중정, 궁녀와 군인들의 숙소 등 482칸의 복원을 완료한 1단계 공사가 끝났다. 수원시나 해당 지역구 국회 의원의 복원 지원도 적극적인 편이라 조만간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복원 논란 === 수원시와 수원교육지원청은 행궁 복원 2단계 사업을 2014년까지 완료하려고 계획을 잡았다. 이를 위해 신풍초등학교를 2013년까지 [[광교신도시]]로 ~~폐교 후 재신설~~ 이전하겠다고 한 것.[* [[일제강점기]] 때에 관아지, 객사지, 향교지를 학교로 전용하거나 면사무소를 올려버리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국유지인데다가 대다수의 관아, 객사, 향교는 마을의 중심지에 소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풍초등학교 역시 2014년 기준 117년이나 이어진 학교인데다 사실상 학교 이전이라기보다는 폐교나 다름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학교 관계자 및 동문들은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이전 명분에는 [[도심 공동화]]로 인해 이 학교 및 주변 학교들이 텅텅 비어간다는 이유도 포함된다. 실제로 행궁동, 장안동 일대의 학령 인구가 줄어들고 있기도 하다.] 그러다가 2012년 12월 28일 수원시와 신풍초등학교 간의 합의가 이루어져 수원교육지원청에서 171억원 가량의 신풍 초등학교 분할 납부 방식의 토지 매매 계약을 체결하고, 올 5월까지 계약금과 매매 대금 86억 7,200만원을 지급하면서 늦게나마 2차 복원을 잡았고, 2013년 3월부로 신풍초등학교는 [[광교신도시]]로 이전, 기존 교사(校舍)는 더 이상 신입생을 받지 않고 임시로 분교장 형식으로 운영하다가 폐지되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6442246|# 기사참조]] 한편 화성 행궁 2단계 복원 사업은 2020년 12월 우화관 복원과 함께 끝난다. == 기타 == [[무예24기 보존회]]의 공연이 이루어지는 장소이기도 하며 [[대장금]] 등의 사극 촬영지로서 자주 쓰이고 있다. 화령전의 정문은 닫아놓은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닫혀있더라도 화성 행궁을 통해 화령전까지 갈 수 있다. 화성 행궁에 큰 행사[* 제야 타종행사, 화성문화제]가 있어 [[종로(수원)|종로]]의 도로가 통제되면 심각한 교통 체증이 생긴다.[* 주로 수원KT위즈파크~팔달문 구간] 장안동 정류장에서 팔달문 정류장까지 30분 가까이 걸릴 수도 있다. 멀리 산 위에는 거대한 불상이 보이는데 대승원이라는 절이다. 하지만 절은 의외로 작다. 여담이지만 [[오산시]]에서 진행하는 오산 시티투어의 코스 중 [[융건릉]]과 함께 둘 뿐인 오산시외 탐방코스다. 대부분의 시티투어 코스가 시내 구간을 도는 것을 감안할 때 특이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홍상수의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장면 일부가 화성행궁에서 촬영됐다. == 바깥고리 == * [[http://www.swcf.or.kr/?goPage=12|화성 행궁 웹사이트]]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350122&cid=58249&categoryId=58249|수원화성 테마관 : 화성행궁]] * [[https://ko.wikipedia.org/wiki/수원_화성행궁|한국어 위키백과 : 수원 화성행궁]]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28943&cid=46656&categoryId=46656|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수원 화성행궁]]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029703&cid=42856&categoryId=42856|대한민국 구석구석 : 화성행궁]]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92989&cid=40942&categoryId=33539|두산백과 : 수원 화성행궁]] == 사적 제478호 ==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3,04780000,31&pageNo=1_1_1_0|문화재청 홈페이지 : 수원 화성행궁 (水原 華城行宮)]] >1789년(정조13) 수원읍을 화성시 안녕면 일대에서 팔달산 아래로 옮겨 오면서 관청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왕이 수원에 내려오면 잠시 머무는 행궁으로도 사용되었다. > >조선시대 행궁은 남한산성 행궁이나 북한산성 행궁, 온양 온천 행궁 등 여러 곳에 있었지만, 전국의 행궁 가운데 화성행궁은 규모에서나 격식에서 가장 돋보이는 곳이었다. > >정조는 1789년 10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옛 수원부 읍치자리로 옮기고, 이듬해 2월부터 1800년 1월까지 모두 13차례 현륭원을 방문하였는데 이때마다 화성행궁에 머물렀다. 특히 1795년(정조19) 어머니인 헤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화성행궁에서 치르면서 이름도 고치고 건물도 새롭게 지었다. > >화성행궁은 1909년부터 수원 주민들을 위한 병원으로 쓰이면서 건물이 철거되어 낙남헌만 남아 있었다. 화성축성 200주년인 1996년부터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2003년에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 >※(화성행궁 → 수원 화성행궁)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 같이보기 == * [[원행을묘정리의궤]] == 둘러보기 == [include(틀:수원화성의 구조)] [include(틀:수원시의 관광)] [include(틀:표절, version=73~75 source=경인일보)] [[분류:조선의 별궁과 궁가]][[분류:대한민국의 사적]][[분류:수원화성]][[분류:행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