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순천시(평안남도) 출신 인물]][[분류:1903년 출생]][[분류:1953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족장]][[분류:국립서울현충원 안장자]] ||<-2><tablealign=right><tablewidth=410><tablebordercolor=#0047a0><tablebgcolor=#ffffff,#1f202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독립운동가|{{{#ffffff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br] {{{#ffffff '''{{{+1 홍진근}}}'''[br]'''洪鎭瑾'''}}}}}} || ||<|2><width=80><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1903년]] [[12월 7일]] || ||[[평안남도]] [[순천시(북한)|순천군]] 순천면 관상리 || ||<|2><color=#fff> '''사망''' ||[[1953년]] [[1월 1일]] || ||[[중국]] || ||<color=#fff> '''묘소''' ||[[국립서울현충원]] 320실 113호 || ||<color=#fff>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홍진근은 1903년 12월 7일 [[평안남도 순천군]] 순천면 관상리에서 태어났다. [[3.1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 그는 10월 1일 일제의 소위 시정기념일(始政紀念日)에 [[평안남도]] 지방계량반의 환등회(幻燈會) 행사가 있는 것을 이용해 만세시위운동을 일으키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리하여 임충호, 현창형 등의 동지들과 함께 거사를 준비하던 중 사전에 발각됨으로써 뜻을 이루지 못하고 체포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들의 만세시위 거사계획은 지방민들의 항일의식을 자극하여 이 지역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촉발케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이 일로 인하여 1920년 [[평양]]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制令) 7호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는 출옥 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였으나 동맹휴학을 주도하다가 다시 체포되어 징역 6월을 받았으며,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산동성]](山東省)에서 최단봉 등과 함께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고 한다. 1953년 1월 1일 중국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홍진근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8년 그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여 [[국립서울현충원]] 320실 113호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