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弘濟川 / Hongjecheon }}} [목차] == 개요 == [[북한산]]에서 발원하여 [[서울특별시]] [[종로구]]-[[서대문구]]-[[마포구]]를 거쳐 [[성산대교]] 북단에서 한강에 합류하는 하천이다. == 유래 == 조선시대에 중국의 사신이 묵어 가던 홍제원(弘濟院)이 있던 점에서 유래한다. [* 이는 [[수도권 전철 3호선]]의 [[홍제역]]의 역명 유래와 같다.][* 여담으로, 중국 사신이 홍제원을 떠나 지금의 통일로를 따라가 한양에 도착하면 그들을 맞았던 것이 [[영은문]]이었다. 영은문을 헐고 [[독립문]]을 세운 목적이 중국과의 사대관계를 청산하자는 것을 떠올리면 현 통일로의 길목이 중국과의 교류하는 통로였음을 알 수 있다.] == 이명과 지명 == 모래가 많은 하천이라고 해서 '''모래내''' 혹은 이를 한자로 바꾼 '''사천(沙川)'''으로 불린다.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위치한 '''[[모래내시장]]'''과 이 하천을 건너가는 [[수색로]]상의 교량 명칭인 '''사천교'''에 이 명칭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하천을 통과하는 행정구역은 [[북가좌동]]과 [[남가좌동]]으로, 가좌라는 이름은 '''가재울'''이라는 마을 이름을 한자로 음차한 것이다. 가재울은 가재가 많이 잡히는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이라는 뜻으로, 당연히 가재가 많이 잡히는 곳은 이 홍제천을 말한다. 한편으로는 위의 유래에서 '''홍제원천''', 상류 근처에 세검정이 있다는 점에서 '''세검천'''이라고도 불린다.. == 개발 == 일제강점기 당시 직강화공사를 한 적이 있다. 기존의 성산1동과 망원동으로 굽이굽이 지나던 홍제천을 성산과 새터산 사이를 통과하도록 하였다. 직강화된 홍제천은 성산1동과 성산2동의 경계선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 뚝방길로 현재의 모래내길과 [[성산로(서울)|성산로]]가 탄생한다. 1995년에는 [[내부순환로]]가 홍제천을 따라 개통하였다. === 옛 홍제천의 흔적 === (아래 내용은 옛 미군정기 지도와 도보탐사를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정확한 사료가 있는 경우 수정해주십시오.) 사천교에서 옛 홍제천의 북쪽 경계는 월드컵북로12길-월드컵북로9길-[[성미산로]]-월드컵북로 23길로 이어지는 선형이며, 남쪽 경계는 성미산로15길-[[성미산로]]19길-월드컵북로7길-[[월드컵로]]16길-[[월드컵로]]15길-월드컵로11길-회우정로로 이어지는 선형이다. 즉, 성산1동을 통과하여 [[망원역]] 북쪽을 지나 [[망리단길]] 인근에서 한강에 합류하던 하천이었다. 현재는 매립되어 주택가가 형성되었다. 다만 직강화공사와 별개로 '''사천'''이라는 동명의 개천[* 한강의 샛강과 유사]으로 구.홍제천에서 분리된 개천이 존재하였는데, [[경성고등학교]] 인근에서 갈라져서 [[동교로]]27길-월드컵북로4길-동교로22길-월드컵로8길로 이어지는 지천이 존재하였다. 한편, '''세교천'''이라는 하천도 존재하였는데, [[안산]]에서 발원하여 동교동과 서교동 일대를 따라 옛 홍제천에 합류하였다. 현 연희로25길-동교로의 선형과 완벽히 일치한다.세교라는 이름은 [[홍대거리]] 주변의 '''잔다리'''와 홍대거리를 뚫고 지나가던 철도인 [[당인리선]]의 [[세교리역]]에 반영되어 있다. == 기타 == [[1.21 사태]] 당시 [[김신조]]가 자하문을 통화하려다가 세검천에서의 검문으로 발각되었는데, 여기서 세검천이 바로 홍제천이다. 홍제견인차량보관소-홍제교 구간은 복개되어 있다. 홍제천의 직강화공사로 인해 한강의 제1지류였던 [[불광천]]은 홍제천에 합류하므로써 한강의 제2지류가 되었다. 이 밖에도 [[난지천]]이 홍제천의 제2지류이다. [[인공폭포]]는 겨울이 되면 인공 빙벽으로 변한다. == 관련 문서 == * [[망리단길]] [[분류:서울특별시의 하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