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진보신당 대표)] ---- [include(틀:노동당(대한민국) 대표)] ---- ||<-2><tablebordercolor=#ff0000><tablebgcolor=#ffffff,#1f2023><tablealign=right><tablewidth=400><bgcolor=#ff0000> '''{{{#fff 노동당 제4대 대표[br]{{{+1 홍세화}}}[br]洪世和 | Hong Se-hwa}}}'''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HSHJB.jpg|width=100%]]}}} || ||<|2><colbgcolor=#ff0000><colcolor=#fff><width=90> '''출생''' ||[[1947년]] [[12월 10일]] ([age(1947-12-10)]세)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이화동]] || || '''학력''' ||서울창경초등학교[br][[경기고등학교]][br][[서울대학교]] {{{-1 (외교학 / [[학사]])}}} || || '''가족''' ||배우자, 슬하 1남 1녀 || || '''소속 정당''' ||[include(틀:노동당)] || || '''현직''' ||[[장발장은행]] 은행장[br][[노동당(대한민국)|노동당]] 후원회장[br][[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편집국장 || || '''외부 링크''' ||[[https://mobile.twitter.com/hongshenx|[[파일:트위터 아이콘.svg|width=24]]]] || [목차] [clearfix] == 개요 == >'''나는 살아서 즐거운 '아웃사이더'이고 싶다. 시어질 때까지 수염 풀풀 날리는 척탄병이고 싶다.''' [[한국]]의 [[정치인]], [[언론인]]이다. 2018년 기준 [[노동당(한국)|노동당]] 소속. 김규항, [[박노자]]. 오세철 등과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좌파 계열 지식인 중 한명으로 손꼽힌다. 한국 사회에서 서슴없이 '''나는 사회주의자'''라고 이야기하는 몇 안 되는 인물. 2000년 [[민주노동당]]이 창당할 때 지나치게 온건하다면서 참여하지 않은 인물이다. 공공연히 사회주의를 강령으로 내걸고 활동하는 정당을 원한다고. == 생애 == 1947년에 태어났다. 1966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과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1967년 10월 자퇴하였다. 그 뒤, 다시 입시 재수하여 1969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외교학과에 입학하였고, 이후 문리대에서 연극반 활동을 하였다. 1972년에 '민주수호선언문' 사건으로 제적되었다가, 다시 복학하였으며, 1977년에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외교학과를 나왔다. [[서울대학교/학부/사회과학대학/정치외교학부|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 후 무역회사에 재직하던 중 1979년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파리 지사 근무[* 이전 편집본에 파리출장 중이라 되어있으나, 파리 지사 근무 중이 맞다. 대붕실업이라는 무역회사였다.]중 [[프랑스]]에 [[망명]]을 신청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져 프랑스에서 20년간 망명 생활을 하였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보면, 처음 발급받은 망명자 신분증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한다. '갈 수 있는 나라 : 모든 나라, 갈 수 없는 나라 : Corea']. 이 당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인지도가 그다지 높지 않았던 시절이기 때문에, 프랑스 이민국의 망명 담당자가 했던 질문이란 게 "당신은 그저 당신의 정치적 의견을 표명한 것뿐인데 왜 이게 문제가 되느냐?" 물론 이에 대한 홍세화의 대답은 '''"그렇게 하면 [[코렁탕|잡혀가니까...]](...)"''' 이후 한동안 파리에서 택시기사 생활을 했다. 그러나 저건 홍세화의 주장일 뿐이고 남민전은 그냥 단순한 정치 견해 표명하는 단체가 아니라 북한을 추종하는 국가전복세력이었다. 애초에 남민전이라는 이름부터가 '''남조선민족해방전선'''이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한겨레신문]]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 글을 기고하기 시작했고, 당시엔 인터넷도 없고 해외여행 자유화도 막 되던 시기라 아직 해외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프랑스와 유럽 상황을 신속히 전달하는 언론인 역할도 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의 택시기사 생활 경험과 프랑스 사회에 대한 소개, 본인의 성장기와 한국 사회의 과제를 담은 1995년작[* 2006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가 국내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이름을 날렸다. 그 후 1999년에 귀국하고 2002년 1월에는 영구귀국했다.[* 단, 아주 어려서부터 프랑스에서 살아온 그의 딸과 아들은 프랑스 국적을 취득해 그곳에 남았고, 아내는 한국과 프랑스를 왔다갔다한다고. 한국 국적의 홍세화가 한국에 오지 못하는 동안, 프랑스 국적의 딸은 한국학을 전공한 뒤 한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귀국과 동시에 [[한겨레]]에 입사했다. [[http://www.journalist.or.kr/news/article.html?no=3671|#]] 그 후 한국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지의 초대 편집장을 지냈다. 2002년 3월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 2002년 12월 5일 [[민주노동당]] 측 패널로 MBC 100분토론에 출연했다가 한겨레로부터 징계를 먹었다. 이 사건으로 언론인들의 중립성과 개개인의 양심과 관련한 여러 논의가 일었다.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42259?no=42259|당시 기사]] 2008년 2월 5일 [[민주노동당]]을 탈당했다. 탈당 사유로 '오늘의 민주노동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라는 점을 들었다. [[http://www.redian.org/archive/16242|기사]] [[http://www.redian.org/archive/19869|탈당의 변]] 2011년 11월 25일 [[진보신당]]의 대표로 선출되기도 했다. [[http://www.laborparty.kr/index.php?mid=bd_notice&page=96&document_srl=439864|#]]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진보신당 비례대표 2번으로 출마했지만, 당의 득표율이 3%를 넘지 못해 낙선했다. 2012년 10월 27일 [[진보신당]]의 상임대표 직에서 사퇴했다.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68065|기사]] 이후엔 벌금형을 선고받고 돈을 내지 못해 옥살이를 해야 하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사회단체 '장발장 은행'의 은행장으로 재직 중이다. 2018년 [[김길오]] 등이 연루된 '[[노동당(대한민국)|노동당]] 언더조직 폭로 사건'과 관련해서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http://www.laborparty.kr/bd_member/1756873|#]] [[2020년]] 2월 14일 [[더불어민주당]]의 임미리 교수 비판 칼럼 고발 사건에 관해 "민주당은 [[자유한국당]]보다 배타적이며 비관용적"이라며 비판했다. [[http://redpill.kr/index.php?document_srl=1603&fbclid=IwAR171Nut3uxhIjadRpfltPLSRqvcfQ5gh1RKXalghFbcUSN2vxtlezkTRRk%E2%88%A3%3Dcolumn&mid=column|#]] 2021년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를 "내용은 없고 수사(꾸미고 다음어진 말)만 있는 정부", "남은 임기 동안에도 임금님이 아닌 대통령으로 돌아오길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210288|#]] == 논란 == === 대통령 기자회견 횟수 날조 논란 === 2020년 11월 19일 [[한겨레신문]] 칼럼을 통해 '기자협회보' 자료를 인용하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70693.html|역대 대통령의 직접 브리핑과 기자간담회를 합친 횟수는 김대중 150회, 노무현 150회, 이명박 20회, 박근혜 5회, 문재인 6회]]라는 수치를 제시하며 [[문재인]] 현 대통령의 소통 부족을 비판했다. [[국민의힘]]을 비롯한 야권과 정부 비판 세력에서는 이 수치를 꾸준히 인용하며 비판의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홍세화가 출처로 제시한 '기자협회보'를 발간하는 기자협회에서는 [[https://www.ytn.co.kr/_ln/0101_202101230430013397|대통령 기자회견 횟수를 조사한 적은 없다. 어떤 경로로 우리를 출처로 제시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더군다나 기자회견 횟수를 어떤 기준으로 집계하더라도 홍세화가 제시했단 수치는 나올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즉 홍세화는 근거 없이 날조된 수치를 기반으로 하여 칼럼을 썼고, 이것이 팩트체크도 되지 않은 채 수도 없이 인용되어 왔던 것이다.[* [[YTN]]의 팩트와이 기사가 나온 것은 한겨레 칼럼 게재 후 2개월이 지난 후였다.] 글을 업으로 삼는 사람에게 치명적인 윤리위반 행위인 데이터 날조를 저지른 홍세화는 물론, 단 한 번의 검증도 없이 이를 인용한 타 언론 및 국민의힘 역시 비판을 받았다. == 선거 이력 == ||<tablebordercolor=#FF0000><tablealign=center><rowcolor=#FF0000><rowbgcolor=#FF0000><tablebgcolor=#ffffff,#FF0000> {{{#ffffff 연도}}} || {{{#ffffff 선거 종류}}} || {{{#ffffff 선거구}}} || {{{#ffffff 소속 정당}}} || {{{#ffffff 득표수 (득표율)}}} || {{{#ffffff 당선 여부}}} || {{{#ffffff 비고}}} || || 2012 ||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 비례대표 || [include(틀:진보신당)] || 242,995 (1.13%) || 낙선 (2번) || || == 여담 == * 영남패권주의라는 말을 처음으로 쓴 사람이다. [[박정희]] 정권 이래로 성장한 영남 출신 보수 정치 세력이 기득권층으로 빠르게 성장했고 패권화되었다는 뜻이다. 물론 이건 2010년대 후반 이후로는 이미 과거의 얘기다. * 2018년 이후 가발을 쓰는 모양이다. * 2020년 들어 더불어민주당에 민주적인 사람이 없다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 [[무키무키만만수]]가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는 곡을 쓰기도 했다. [[분류:1947년 출생]][[분류:한국의 사회주의자]][[분류:진보신당 대표]][[분류:당 대표/대한민국]][[분류:대한민국의 진보주의자]][[분류:종로구 출신 인물]][[분류:노동당 소속]][[분류:진보신당 출신]][[분류:민주노동당 출신]][[분류:경기고등학교 출신]][[분류:서울대학교 출신]][[분류:한겨레신문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