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정주시 출신 인물]][[분류:1882년 출생]][[분류:1920년 사망]][[분류:건국훈장 독립장]] ||<-2><tablealign=right><tablewidth=410><tablebordercolor=#0047a0><tablebgcolor=#ffffff,#1f202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독립운동가|{{{#ffffff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br] {{{#ffffff '''{{{+1 홍성익}}}[br]洪成益'''}}}}}} || ||<|2><width=80><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1882년]] [[12월 27일]] || ||[[평안북도]] [[정주시|정주군]] 곽산면 염호동 || ||<|2><color=#fff> '''사망''' ||[[1920년]] [[1월 24일]] || ||신의주형무소 || ||<color=#fff> '''직업''' ||독립운동가 || ||<color=#fff> '''상훈''' ||건국훈장 독립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홍성익은 1882년 12월 27일 평안북도 정주군 곽산면 염호동에서 태어났다. 1907년 [[신간회]]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1911년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경찰에 체포된 뒤 1913년 3월 2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을 때까지 수년간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1 운동]]이 발발하자 선천군에서 만세시위를 주동한 뒤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했으며, 1919년 9월 25일 교통부 안동사무국장(安東事務局長)에 취임하였다. 또한 같은 해 11월에는 김승만(金承萬) [[오동진]] 등과 함께 안동군 임시의사회를 조직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 1920년 1월 24일 오후 4시에 신병으로 안동소재 태성당병원(泰誠堂病院)에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일경의 밀정인 김극전(金克田)의 밀고로 안동국 서기인 황대벽(黃大闢), [[장재순]], 김기준(金基濬) 등과 함께 체포되어 신의주형무소(新義州刑務所)에서 옥고를 치르다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홍성익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