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table align=center> [[파일:external/res.heraldm.com/restmb_jhidxmake.php?idx=5&simg=201509102318141862028_20150911002738_01.jpg]] || || '''이름''' || 홍사붕(洪思鵬) || || '''생년월일''' || [[1971년]] [[7월 1일]] ([age(1971-07-01)]세) || || '''국적''' || [[대한민국]] || || '''출신 학교''' || 인천 송림초등학교 - [[송도중학교]] - [[송도고등학교]] - [[중앙대학교]] || || '''포지션''' || [[포인트 가드]], [[슈팅 가드]] || || '''신체 조건''' || 185cm || || '''프로 입단''' || 1994년 [[안양 KGC 인삼공사|서울방송 농구단]] || || '''소속팀''' || [[안양 KGC 인삼공사|서울방송]] (1994~1995) [br] [[국군체육부대|[[파일:attachment/sangmu.png|width=25]]상무]] (군복무) (1995~1997) [br] '''[[안양 KGC인삼공사|[[파일:external/heyto25.files.wordpress.com/lo3.jpg|width=40]][[파일:external/heyto25.files.wordpress.com/lo2.jpg|width=40]]안양 SBS 스타즈/KT&G 카이츠]] (1997~2001,2004~2006)''' [br]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파일:인천 신세기 빅스.jpg|width=30]][[파일:external/sportsmuseum.co.kr/skbigs03.gif|width=30]]인천 신세기 빅스/SK 빅스]] (2000~2003) [br] [[전주 KCC 이지스|[[파일:attachment/kcclogo.png|width=25]]전주 KCC 이지스]] (2003~2004) [br] [[서울 SK 나이츠|[[파일:서울 SK 나이츠의 초창기 로고.png|width=30]]서울 SK 나이츠]] (2003~2004) || || '''지도자 경력''' || 안양 벌말초등학교 농구부 코치 (2006~현재) || [목차] == 개요 == [[포인트 가드|1]], [[슈팅 가드|2번]]을 겸할 수 있었던 '''원조 [[듀얼 가드]]'''로 리딩, 돌파력, 슛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KBL에서 총 9시즌을 뛰었으며 같은 송도고등학교 동문인 ~~[[강동희]]~~, [[신기성]], [[김승현(농구)|김승현]] 정도의 초특급 가드는 아니었으나 1, 2번을 넘나들며 여러 팀에서 꾸준히 주전급으로 뛰었던 선수였다. == 선수 시절 == === 고교-대학 시절 === [[전규삼]] 옹으로 대표되는 가드 사관학교 송도중-고 출신으로 190cm만 넘으면 빅맨으로 뛰던 당시로선 꽤나 장신(185cm) 가드였다. 고 2때 한두살 위인 [[오성식(농구)|오성식]](부산중앙고 3학년), [[이상범(농구)|이상범]](연세대 1학년) 등과 함께 청소년 대표팀 가드로 뽑히기도 했다. 중앙대 입학 후 저학년 때에는 주로 식스맨으로 뛰다가, 3학년 때 당시 최연소 감독(28세)이던 강정수 감독이 부임하면서부터 중용되기 시작했는데, [[표필상]]-[[정경호(농구)|정경호]] 더블포스트 체제가 전략의 중심이던 팀컬러에서 강정수 감독 특유의 체력을 강조하는 런앤건 팀 체제로 변모하면서 운동능력이 좋고 경기운영도 뛰어났던 홍사붕이 [[김승기]]와 함께 주전 가드로 낙점받았다. 이전까지 대학팀들간의 경기에선 잘나가다가도 [[농구대잔치]]에서 실업팀은 물론 금융팀들에게도 고꾸라지던 중앙대였지만, 홍사붕-[[김승기]]-[[김영만(농구)|김영만]]을 주축으로 연신 달리는 청룡군단으로 변신한 뒤 [[1992-93 농구대잔치]]에서는 마침내 금융팀들을 제치고 6강에 오른다. [[파일:홍사붕_중앙대.jpg]] 4학년이 된 [[1993 대학농구연맹전|1993 시즌]] 대학무대에서 홍사붕의 중앙대는 각각 [[서장훈]], [[양희승]]이 가세한 연세대, 고려대와 치열한 3파전을 벌였고, 시즌 2관왕에 오른다. 대망의 [[1993-94 농구대잔치]]에서 중앙대는 정규리그에선 12개팀중 7위에 그치며 겨우 8강에 올랐지만, 8강에서 만난 전대회 우승팀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기아자동차]]를 2승 1패로 격파하는 사상 최대 이변을 연출하게 된다. 중앙대 동생들은 동문 선배들이 주축인 기아자동차를 상대로 엄청난 체력전을 펼치며 연신 강압수비 & 속공을 펼쳤고, 전반까지는 [[허재|허]]-[[강동희|동]]-[[김유택|택]] 트리오의 노련미로 우세한 경기를 펼치던 기아차는 후반들어 체력이 다 떨어진듯 걸어다니는 듯한 모습까지 보여주며 역전당하는 공식으로 무너져 버렸다.[* 현대, 삼성은 물론 신생팀 SBS와의 스카웃에서도 밀리며 수년간 벤치멤버를 스카웃하지 못한 탓에, 허동택+[[한기범]]이 빠지면 믿고 내보낼 만한 선수가 없었던 게 기아차의 딜레마였다. 이걸 잘 아는 기아차 출신 강정수 감독이 체력전으로 정면승부를 펼쳤던것.] 유일하게 체력이 남아있는듯 했던 [[허재]]를 상대로 홍사붕은 후배 [[김희선(농구)|김희선]]과 번갈아가며 찰거머리 수비를 펼쳤고, 승부처인 3차전에서 허재를 17점으로 묶으며 홍사붕 본인은 무려 30득점(3점 6개)을 몰아쳤다.[* 홍사붕은 정규리그 마지막 기아차 전에서도 37점을 올리며 기아를 거의 잡을뻔했었다.] 이후 4강에서 만난 [[국군체육부대|상무]]를 상대로도 1차전을 먼저 잡는 듯 돌풍을 이어나가나 했지만, 국가대표 콤비 [[정재근(농구)|정재근]]-[[오성식(농구)|오성식]]의 노련미에 밀리며 청룡군단의 질주는 4강에서 멈췄고, 홍사붕의 대학 시절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 실업-프로 시절 === [[1993-94 농구대잔치|졸업 무대]]를 화려하게 마친 홍사붕은, 신생팀 창단버프가 끝나고 신인선수 수급에 어려움을 겪던 실업팀 [[안양 KGC인삼공사|SBS]]에 1994년도 유일한 신인선수로 스카웃되었다. 입단 하자마자 열린 4월 코리안리그에서 홍사붕은 [[정재근(농구)|정재근]], [[오성식(농구)|오성식]] 등 주축멤버가 아직 제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약 팀의 에이스로 우뚝 서며 팀을 4강에 올리는 기염을 토한다. 특히 문필호, 전경배 등 지난 농대 전패 멤버들을 고스란히 이끌며 지난 농대 8강팀 [[전주 KCC 이지스|현대전자]], [[부산 kt 소닉붐|기업은행]]을 연파한 바람에, 홍사붕은 [[문경은]], [[김승기]]를 제치고 대회 내내 가장 주목받는 신인으로 꼽혔다. 가을에 [[정재근(농구)|정재근]], [[표필상]], 남경원이 제대하며 전력을 보강한 SBS에서 홍사붕은 주전 [[포인트 가드]]로서 팀을 이끌었고, [[1994-95 농구대잔치]]에서 전대회 꼴찌팀 SBS를 정규리그 4위 및 플레이오프 4강까지 올려놓았다. 4강전에서 [[서울 삼성 썬더스|삼성전자]]의 [[김현준(농구)|김현준]]-[[문경은]] 쌍포를 막지 못하면서 SBS는 아쉽게 탈락했고, 홍사붕은 대회 종료 후 상무 입대를 택한다. 1995년도 상무 농구단은 사상 최고의 멤버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가드진에 [[이상민(농구)|이상민]], [[김승기]], 홍사붕, [[봉하민]], 포워드에 [[문경은]], [[조성원]], 김도명, 센터에 [[조동기]], [[김재훈(농구)|김재훈]] 등 기량이 절정이던 20대 중반의 선수들을 올스타급으로 모아놓으면서 국가대표 못지 않은 라인업을 갖췄다. 이 때문에 농구대잔치에서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였지만, 홍사붕 개인적으로는 이 두터운 선수층 탓에 상무 시절 대부분을 식스맨이나 수비전문 선수로 나서야만 했다.[* 결국 이 때 상무는 농구대잔치에서 2대회 연속 준우승에 그치고 만다.] [[파일:홍사붕 sbs.jpg]] 1997년 7월 제대 후, 원소식팀이던 [[안양 KGC 인삼공사|안양 SBS 스타즈]]에 합류한 홍사붕은 1997-98 시즌 팀의 주전 [[포인트 가드]]로 낙점받아 11.4득점-3.7리바-3.2어시-1.7스틸의 준수한 성적을 거두지만, 팀은 리그 8위로 플레이오프에 나서지 못했다. 다음 시즌인 98-99 시즌 [[안양 KGC인삼공사|안양 SBS]]는 외인 드래프트에서 포인트 가드 [[제럴드 워커]]를 뽑으면서 [[제럴드 워커]]-[[김상식(농구)|김상식]][* [[부산 kt 소닉붐|광주 나산]]으로부터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했다.]으로 백코트를 구성했고, 홍사붕은 1, 2번 자리를 오가는 키 식스맨으로서 활약했지만 팀은 또 다시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고, 결국 강정수 감독이 경질되고 만다. 99-00 시즌엔 [[서울 SK 나이츠|청주 SK]] 단장으로 물러나 있던 원로 농구인 김인건 감독이 새로 부임하는데, 일선에서 너무 오래 물러났던 탓인지 김인건 감독은 시즌 초부터 "우리 팀에는 제대로 된 [[포인트 가드]]가 없다"는 선언을 하며 홍사붕을 "경험 부족"을 이유로 벤치로 보내고 슈터 [[김상식(농구)|김상식]]과 포워드 조신영(193cm)을 번갈아가며 1번으로 내세우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선수 기용을 하곤 했다. 다행히 시즌 초반이 지나기 전에 홍사붕이 다시 주전 [[포인트 가드]]를 차지하며 팀을 이끌었는데, 이번에는 두 외국인 콤비 [[클리프 리드]]-데이먼드 포니가 말썽을 부리며 팀 분위기를 해치다 동반 퇴출되고, 거기에 팀의 중심 [[정재근(농구)|정재근]]마저 부상으로 쓰러지는 위기를 맞는다. 이후 대체 외국인 선수로 득점원 퀸시 브루어(192cm)와 수비형 센터 데릴 프루(200cm)가 합류하고, 신인 [[김성철]]과 2년차 토종 빅맨 [[윤영필]]로 주전멤버가 대거 바뀌는 상황속에서도 홍사붕은 특유의 부지런한 활동량과 안정적인 리딩을 보이며 팀을 금세 안정시켰고, 안양 SBS는 시즌 막판 5연승을 달리며 극적으로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하게 된다. [[원주 DB 프로미|원주 삼보]]와의 6강 플레이오프에서 홍사붕은 1차전에서 7어시스트를 배달하는 등 안정적인 경기운영을 펼치며 팀을 3년만에 4강으로 이끈다. 이 시즌 홍사붕은 '''12.5득점-2.9리바-3.4어시-1.4스틸'''을 올리며 득점과 어시스트에서 커리어 하이 시즌을 기록한다. [[파일:홍사붕 빅스.jpg]] 00-01 시즌 루키 포인트 가드 [[은희석]]이 합류하면서 백업으로 밀린 홍사붕은, 포인트 가드 부재로 고심하던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인천 신세기 빅스]]의 [[유재학]] 감독의 부름을 받아 공익근무 중인 [[김훈(농구)|김훈]]과 1:1 트레이드를 통해 인천 신세기로 이적, 곧바로 주전 1번으로 낙점받았고 [[우지원]], 켄드릭 브룩스, [[이은호]], [[조동현(농구)|조동현]] 등의 멤버를 잘 이끌며 팀을 6강 플레이오프에 올려놓는다. 하지만 다음 시즌 최명도가 영입되면서 또다시 백업으로 밀려났고, 1-2번 자리를 오가며 최명도-[[조동현(농구)|조동현]]의 로테이션 멤버로서 자리잡으며 01-02 시즌 새로 합류한 멤버들([[문경은]]-[[조니 맥도웰]])과 함께 인천 SK[* 신세기통신이 [[SK텔레콤|SK]]에 매각되었다.]를 플레이오프 4강까지 올려놓는다. 02-03 시즌엔 부상으로 골골대던 [[조동현(농구)|조동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홍사붕은 무릎부상에도 불구하고 한 시즌 동안 주전 슈팅 가드로 나서며 노장투혼을 보여주지만, 최명도-[[문경은]]-[[조니 맥도웰]] 등 주전 멤버들이 한 시즌만에 다들 노쇠화 기미를 보이는 바람에 7위로 아쉽게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다. 03-04 시즌을 앞두고 홍사붕은 [[이상민(농구)|이상민]]의 백업 포인트 가드가 필요했던 [[전주 KCC 이지스]]로 트레이드[* 백업센터 김동언(195cm)과 1:1 트레이드] 되지만, 전주 KCC에는 이미 훌륭한 후보 가드 [[표명일]]이 있었던 탓에 출장기회를 잡지 못했고, 시즌 도중 성사된 빅트레이드([[전희철]](전주 KCC) ↔ [[조성원]](서울 SK))의 반대급부로 끼어[* 서울 SK get: [[전희철]], 홍사붕(임대) ↔ 전주 KCC get: [[조성원]], 강준구(임대)] 서울 SK로 한 시즌 간 임대 트레이드된다. [[파일:홍사붕 sk.jpg]] 서울 SK에서도 [[황성인]]-[[황진원]]의 백업으로 평범한 활약을 펼치고 시즌 종료 후 전주 KCC로 복귀한 홍사붕은, 비시즌에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인천 전자랜드]]로 이적했다가 04-05 시즌 개막 직전 다시 친정팀 [[안양 KGC 인삼공사|안양 SBS 스타즈]]로 복귀하게 된다.[* 상무에서 제대하는 오광택(185cm,F)와 1:1 트레이드] 33세의 노장이 되어 친정팀에 복귀한 홍사붕은 04-05 시즌 [[단테 존스]] 신드롬을 일으킨 [[안양 KGC인삼공사|안양 SBS]]에서 평균 8분 남짓 출장하면서 [[은희석]], [[이정석]] 등 젊은 가드들의 백업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고, 이후 KT&G로 바뀐 안양에서 한 시즌을 더 보낸 뒤 은퇴했다. == 은퇴 후 == [[파일:external/res.heraldm.com/restmb_allidxmake.php?idx=5&simg=201509102318141862028_20150911002702_01.jpg]] [[2006년]] 은퇴 후 [[2020년]] 현재까지 '''무려 15년째''' [[경기도]] [[안양시]]의 벌말초등학교에서 어린 유망주들을 지도하고 있다. [[http://www.basketkorea.com/news/articleView.html?idxno=170887|기사]] ~~드라마 [[마지막 승부]] 결말에서 [[장동건]]이 초등학교 농구 코치가 된 것 같은...?~~ == 시즌별 성적 == ||<-11><table align=center><bgcolor=#000000> {{{#ffffff 역대 기록}}} || ||<rowbgcolor=#2a52be> {{{#ffa700 시즌}}} || {{{#ffa700 소속팀}}} || {{{#ffa700 경기수}}} || {{{#ffa700 2점슛}}} || {{{#ffa700 3점슛}}} || {{{#ffa700 자유투}}} || {{{#ffa700 득점}}} || {{{#ffa700 리바운드}}} || {{{#ffa700 어시스트}}} || {{{#ffa700 스틸}}} || {{{#ffa700 블록슛}}} || || 1997 ||<|4> [[안양 KGC인삼공사|SBS]] ||<-9> 군복무([[상무 농구단]]) || || 1997-98 || 44 || 132/241 [br] (54.77%) || 44/138 [br] (31.88%) || 104/139 [br] (74.82%) || 500 || 162 || 141 || 74 || 2 || || 1998-99 || 41 || 83/136 [br] (61.03%) || 34/85 [br] (40.00%) || 63/87 [br] (72.41%) || 331 || 72 || 59 || 32 || 3 || || 1999-00 || 38 || 122/194 [br] (62.89%) || 42/108 [br] (38.89%) || 105/131 [br] (80.15%) || 475 || 110 || 145 || 55 || 3 || ||<rowbgcolor=#cc3300> {{{#ffffff 시즌}}} || {{{#ffffff 소속팀}}} || {{{#ffffff 경기수}}} || {{{#ffffff 2점슛}}} || {{{#ffffff 3점슛}}} || {{{#ffffff 자유투}}} || {{{#ffffff 득점}}} || {{{#ffffff 리바운드}}} || {{{#ffffff 어시스트}}} || {{{#ffffff 스틸}}} || {{{#ffffff 블록슛}}} || || 2000-01 || [[안양 KGC인삼공사|SBS]] /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SK빅스]] || 40 || 68/126 [br] (53.97%) || 26/104 [br] (25.00%) || 63/92 [br] (68.48%) || 277 || 94 || 102 || 25 || 2 || || 2001-02 ||<|2>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SK빅스]] || 33 || 30/61 [br] (49.18%) || 17/54 [br] (31.48%) || 8/12 [br] (66.67%) || 119 || 42 || 48 || 10 || 1 || || 2002-03 || 42 || 90/174 [br] (51.72%) || 50/134 [br] (37.31%) || 32/48 [br] (66.67%) || 362 || 77 || 100 || 36 || 8 || ||<rowbgcolor=#1e3466> {{{#ffffff 시즌}}} || {{{#ffffff 소속팀}}} || {{{#ffffff 경기수}}} || {{{#ffffff 2점슛}}} || {{{#ffffff 3점슛}}} || {{{#ffffff 자유투}}} || {{{#ffffff 득점}}} || {{{#ffffff 리바운드}}} || {{{#ffffff 어시스트}}} || {{{#ffffff 스틸}}} || {{{#ffffff 블록슛}}} || || 2003-04 || [[전주 KCC 이지스|KCC]] / [[서울 SK 나이츠|SK나이츠]] || 22 || 19/44 [br] (43.18%) || 4/24 [br] (16.67%) || 13/17 [br] (76.47%) || 63 || 17 || 33 || 5 || 0 || ||<rowbgcolor=#2a52be> {{{#ffa700 시즌}}} || {{{#ffa700 소속팀}}} || {{{#ffa700 경기수}}} || {{{#ffa700 2점슛}}} || {{{#ffa700 3점슛}}} || {{{#ffa700 자유투}}} || {{{#ffa700 득점}}} || {{{#ffa700 리바운드}}} || {{{#ffa700 어시스트}}} || {{{#ffa700 스틸}}} || {{{#ffa700 블록슛}}} || || 2004-05 ||<|2> [[안양 KGC인삼공사|SBS]] || 11 || 10/23 [br] (43.48%) || 3/7 [br] (42.86%) || 5/9 [br] (55.56%) || 34 || 7 || 12 || 3 || 0 || ||<rowbgcolor=#062a78> {{{#ed9121 시즌}}} || {{{#ed9121 경기수}}} || {{{#ed9121 2점슛}}} || {{{#ed9121 3점슛}}} || {{{#ed9121 자유투}}} || {{{#ed9121 득점}}} || {{{#ed9121 리바운드}}} || {{{#ed9121 어시스트}}} || {{{#ed9121 스틸}}} || {{{#ed9121 블록슛}}} || || 2005-06 || [[안양 KGC인삼공사|KT&G]] || 15 || 13/25 [br] (52.00%) || 7/13 [br] (53.85%) || 13/18 [br] (72.22%) || 60 || 12 || 8 || 5 || 0 || ||<-2><bgcolor=#ffff88><color=#373a3c> '''[[한국프로농구|KBL]] 통산''' [br] (9시즌) ||<rowbgcolor=#ffffff,#191919> 286 || 567/1024 [br] (55.37%) || 227/667 [br] (34.03%) || 406/553 [br] (73.42%) || 2221 || 593 || 648 || 245 || 19 || == 여담 == 선수 시절 주당으로 유명했다. [[안양 KGC인삼공사|안양 SBS]] 시절 '''[[김동광]] 감독과 대작이 가능한 유일한 선수'''였다고 한다. == 관련 문서 == * [[농구 관련 인물(한국)]] * [[안양 KGC인삼공사/선수단]] *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선수단]] * [[전주 KCC 이지스/선수단]] * [[서울 SK 나이츠/선수단]] [각주] [[분류:대한민국의 농구 선수]][[분류:1971년 출생]][[분류:1994년 데뷔]][[분류:2004년 은퇴]][[분류:포인트 가드]][[분류:슈팅 가드]][[분류:안양 KGC인삼공사/은퇴, 이적]][[분류: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은퇴, 이적]][[분류:전주 KCC 이지스/은퇴, 이적]][[분류:서울 SK 나이츠/은퇴, 이적]][[분류:송도고등학교 출신]][[분류:중앙대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