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명사)] [[파일:external/www.qulishi.com/20131122142545.jpg]] == 개요 == 胡惟庸 (? ~ 1380). [[원나라]]말 [[명나라]]초의 인물. 나름 수완 좋은 정치가로써 명나라 개국 초기에 [[권신]]이 되어 최고의 권력을 누리다가 결국 역모죄로 [[숙청]]당했다. == 생애 == 안휘성 출신으로 젊었을 적 행보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당시 [[주원장]]의 내정 참모였던 [[이선장]]과도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이 인연으로 이선장의 추천을 받았고 1363년 당시 진우량과 전쟁중이던 주원장에게 합류했다. 이 때 주원장은 수군 강화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호유용은 전선 몇 척을 자비로 건조하여 주원장에게 진상하면서 합류했다고 한다. 주원장 역시 젊고 재주있는 호유용을 높이 평가하면서 옆에 두고 이선장을 보좌하여 내정업무를 맡겼다. 이후 명의 건국에도 공을 세웠고 정부조직 개편과 함께 [[중서성]]의 관리로 임명되었다. 이후 개국초기 [[승상]]을 맡고 있던 이선장을 도와 많은 공을 세웠고 빠른 속도로 승진했다. 그리고 이선장, [[서달]] 등 1세대 공신들이 일선에서 하나 둘 물러나자 홍무 3년 정1품 좌승상의 지위에까지 올랐으며 우승상에 제수되었던 왕광양이 축출당한 이후로는 [[재상|명 조정의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에서 홍무제를 보좌했다. 홍무제는 호유용의 뛰어난 능력을 좋아했어도 그가 자신의 능력과 황제의 총애를 등에 업고 교만한 행동을 하는 것은 싫어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실제 호유용을 경계하게 된 계기는 명확히 나오지 않지만 야사의 기록을 보면 [[삼국지연의]]의 [[양수]]의 일화와 비슷한 형태로 해석하고 있다. 요컨데 홍무제가 어떤 말을 했는데,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호유용이 그에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고 어떤 일을 꾸미고, 얼마 후 이 사실을 점검하던 홍무제가 잘 풀린 것을 다행히 여기면서도 "아니 이 새끼가?"란 반응을 보이는 패턴이다.[* 드라마 주원장에서는 주원장의 형식 상의 주군이자 향후 가장 큰 걸림돌이 될 한림아를 수장시킨 것도, 주원장의 뜻을 미리 간파한 호유용이 호위 군사에게 넌지시 암시하는 걸로 나오며, 그걸 알게 된 주원장은 호유용의 독단을 경계한다.] 실제 명사나 야사 기록을 참고하면 호유용이 뒤에서 더러운 짓을 참 많이하긴 했다. 개국공신 중에서 위협이 될만한 인물들을 몰아내는 일에 주력했는데, 이에 대해서 공식적인 기록은 호유용의 교만함과 권력욕으로 쓰고 있지만 홍무제가 은밀히 뒤에서 호유용을 움직였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대표적인 예로 개국공신인 [[서달]]을 몰락시키고자 그 밑에 있는 사람을 매수하여 거짓고변을 시켰는데 오히려 그 사람이 "호유용 나빠요!"라 고변하는 바람에 궁지에 몰릴 뻔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홍무제와 서달이 시큰둥한 태도로 나와서 무사히 넘어갔다. 또한 [[유기(명나라)|유기]]의 사례에서도 호유용이 보낸 의사가 다녀가고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어 사망했다. [[중국]]사람들이나 역사가들도 호유용이 의도적으로 독살한 것이라 해석하고 있으며 당시에도 그런 견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홍무제는 호유용이 개국공신들을 공격하거나 공격하려 했다는 증거가 있어 이를 공론화시킬 수 있음에도 그냥 덮었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홍무제가 밀령을 내렸거나, 공신 파벌을 박살내기 위해 일부러 묵인해주는 식의 커넥션을 유추하고 있다. == 호유용의 옥 == 그렇게 명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호유용은 그야말로 한큐에 제거당했다. 홍무 12년, 호유용은 노비를 멋대로 죽이고,[* 정확히는 자신의 마부가 아들을 태우고 마차를 몰다가 교통사고를 내는 바람에 아들이 죽어버렸다.] 반역자의 여인을 다른 사람의 첩으로 내린 혐의를 물어 체포되었다. 그리고 호유용의 뒤를 캐자 황제를 기만하고 속인 것, 각종 인사비리, 행정비리 등이 드러나고 [[북원]]과 [[왜]]와 결탁하여 반역을 도모했다는 정황까지 드러났다. 당연히 홍무제는 대노했고 이에 호유용과 그 일파는 싸그리 숙청당하고 만다.[* 드라마 주원장의 최후는 정말 끔찍한데, 호유용이 범죄 혐의로 인해 수감된 옥에서 이와 벼룩 때문에 간지럽다고 말하자 홍무제는 "그럼 간지러워서 죽는 형을 내리겠다"고 하여 상의 탈의 후 나무에 묶어 놓고선 모기들이 밤낮을 물게 하였다. 물론 모기 물린 것으로 죽는 것이 아니라 아사겠지만... 나중에 죽은 모습을 보면 상체가 벌겋게 되어 있을 정도. 얼마나 가려웠을지는 상상에 맞긴다. 홍무제의 독한 법 집행을 본보기로 만든 듯 하다.] 허나 신성곤&윤혜영의 <한국인을 위한 중국사>에서는 이 호유용의 옥에서 "모반을 위해 북원과 일본에 사신을 보냈다는 것은 입증되지 않은 사실이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반역&매국노라면 사실이 아니더라도 여론몰이 정도는 확실할 테니까. 호유용 사건으로 명사에 기록된 이 사건으로 호유용 파벌은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났다. 파벌에 연루된 관료와 그 일족만 해도 무려 3만 명이 처형당했고 이때 처형당한 고급관료만 해도 20여 명이 넘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호유용 사건은 이대로 끝난 것이 아니라 10년 후 다른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호유용 사건이 다시 한 번 재조명됐고, 그 때 밝혀지지 않은 새로운 증거들이 드러나 겨우 목숨만은 건졌던 연루자들이 또다시 박살났다. 이 때 [[이선장]] 등 주요 공신들도 함께 숙청당했다. 나라를 이끌어나가는 능력은 뛰어났으나 반골의 기질이 강했고 권력을 탐하고 황제에게 모반한 역사에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될 [[간신]]으로 기록됐다. 하지만 옹호론을 펼치는 입장에서는 1세대 개국공신들을 숙청하기 위해 호유용을 기용했고, 1세대 개국공신들이 정리되자 [[토사구팽]]당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독으로 독을 제압하고 그 독을 버려버린 격이다. 이후 홍무제는 승상직과 조정의 성(省)들을 다 날려 버리고 독재 체제를 구축하는데 성공한다. 이 과정에서 황제의 업무를 도와줄 전각대학사(殿閣大學士)를 임명했다. 영락제 시기에는 문연각에 여러명을 입직시키며 자문하도록 하여 내각대학사 제도가 시작되었다. 이후 세월이 지나면서 내각대학사가 과거 [[상국]]이나 [[승상]]의 역할처럼 변질되고 내각의 역할이 이전의 성(省)들처럼 변질되는데 이 내각 제도는 [[청나라]]에도 이어졌고, 영어 cabinet의 번역어로 채택돼 현재까지 쓰이고 있다. 물론 내각대학사라는 직책은 청나라 이후로 사라졌다. [[분류:명나라의 인물]] [[분류:생년 미상]] [[분류:1380년 사망]]